동네 지도 위에 상호가 아니라 지나간 곡의 제목들이 남는 하루였어요. 제 행선지에 어떤 소리들이 남았는지 오늘은 말해볼까 합니다.
제1장. 잊혀진 계절
잃어버렸습니다.
윤동주 시인처럼, 저는 무언갈 잊어버렸습니다. 예전의 위대한 시인처럼 이름을 잃어버린 건 아닙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LP와 카세트테이프에서 나왔던 음악이 실타래처럼 잃어버린 것을 가리킵니다. 저는 짧아져버린 가을의 일수를 좀 잃었고, 테이프가 돌아가면서 음악이 재생된다는 사실을 잃었습니다. 오로지 네모난 상자 속 음악만이 지금도 시월의 마지막 밤을 기억하고 있다며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노래합니다. 저는 잃은 것을 찾기 위해 다음 길을 나섭니다.
제 2장. Don't know why
잃은 것을 찾기 위해 걷는 길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저는 시간이 흘러감을 경험합니다. 어느새 저는 초침의 분주함과 시침의 묵직함이 뭉쳐진 과거를 걷고 있습니다.
' I don't know why I didn't come'. 노래도 과거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제가 과거의 잃어버린 것들을 찾듯 말입니다.
그러나 제가 과거를 걷는 동안, 공간의 조각들은 계절로 둘러싸여 함께 가을을 건너고 있습니다. 만추를 준비하며 익어가는 저 이파리들은 머지않아 낙엽으로 뒹굴겠지요. 저도 잃어버린 것들로 비워진 공간을 새로운 것들로 주워 담아보렵니다.
제 3장. 마을을 줍습니다.
3-1 시를 위한 시(詩)
도시가 키운 어린 나무들이 이젠 어엿이 자라서 도시를 품어줍니다. 바람소리를 듣고 음악을 만들었던 선조들. 그 음악에 춤을 추는 가을의 바람과 가로수는 닮아 있습니다.
'이 생명 이제 저물어요. 언제까지 그대를 생각해요...'
노을 진 구름과 언덕으로, 다음 계절을 건너가는 가로수의 잎들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3-2 Autumn Breeze
떠나가는 자연 속에 살아가는 행인들이 있습니다. 각 삶의 주체들은 겸손하게도 배경처럼 스치며 나타났다 물러납니다.
이들에게 수시로 상쾌함을 건네주는 쾌청한 바람. 거미의 목소리가 거리를 도회적으로 더 짙게 만들고, 같은 길에서 만난 다른 행인들이 길을 새로이 터줍니다.
제 4장. 집으로 가는 길
이 산들바람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했을까요. Lou christie의 saddle the wind가 불어 와요. 가을바람과 기차 기적소리를 차곡차곡 반가운 소식을 전해 줄 것처럼 다가옵니다. 저는 주운 것들을 주머니에 넣고 바람에 실려 집으로 갑니다. 바람이 대신 들어줘서 제 발걸음은 사풀사풀 가볍습니다.
'맨발로 기억을 거닐다 붉게 물든 하늘에 그간 함께 못한 사람들을 올린다...'
바깥세상에 확산된 가을을 만나기 위한 외출이 끝이 났습니다. 시간을 써서 만난 낙엽들은 아주 친절했어요. 잊혀진 것들은 솎고, 친절한 낙엽에게 받은 것들은 쏟아내며 집을 정리합니다. 가을다워지는 집 속에 아직 음악이 살아있습니다. 음악은 스피커를 여리게 진동시키며 두근두근 다음 외출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