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으레 겨울의 끝에서 학사모를 던지곤 합니다. 이 때문에 봄놀이를 가야 할 시기에 중간고사를 쳐야 한다는 볼멘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겨울의 끝에 학생을 보내고 마침내 비어버리는 학교는 이상하게 모성과도 닮은 듯 합니다.
학교가 비어버린 상급자의 공백을 견뎌내는 동안, 세상에 나온 학생들은 바람처럼 방황하기도 합니다. 학생들의 자취는 결국 바람만 남아 청춘들의 공간에 휘이 불기만 합니다.
음악은 시간으로 이어진 예술이기 때문일까요. 이러한 덧없음과 닮은 바람 같은 음악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학교 앞 꽃집을 바라보며, 이 음악들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꽃이 시들듯, 가수도 젊음을 잃고 시들었지만, 자취 같던 음악은 여전히 살아있으니까요. 오늘의 가수는 Simon and Garfunkel입니다.
영화 '졸업'의 주요한 ost로 사용되었던 Simon and Garfunkel의 곡들은 드러남이 적습니다. 악기의 수가 많은 것도 아니고, 보컬의 샤우팅이 강렬하지도 않습니다. 거의 속삭이고, 반복되는 형식으로 곡이 진행되다 사라집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비틀거려도 멀리서 보면 한 청춘의 전락에 불과한 어느 졸업생의 초상을 닮아 이 음악은 결국 강렬해집니다.
강렬한 음악에는 호소력이 있습니다. 나는 결국 음악이 무엇을 속삭이는지 귀를 기울여 듣기 시작합니다. 가수는 Scarborough fair 라는 시장에서 있었던 사랑을 이야기했습니다. parsley, sage, rosemary, thyme 향이 나는 곳에서 만난 신선한 만남. 보편적인 향신료처럼 보편적인 사랑이겠지만, 그 감각들이 합쳐졌을 때는 더 이상 평범한 것이 아닙니다. 평범함을 추구할 수 없는 전시라면 더더욱...
내 사랑이 사는 그곳에 전하는 심해 같은 안부. 안부의 행방이 그 사람일지, 그리운 시장일지 규정되지 않은 채 파도 앞에 그저 부서질 뿐입니다.
그 사랑이 평화 위에 세워졌을 때도, 사랑은 그 습성 때문에 불안정합니다. 4월에 함께한 연인을 9월에는 회상할 뿐일 거라는 덧없음을. 9월은 4월을 빌려 낡아버린 사랑을 읊조립니다.
그리고 저는 이 유성의 예술을 침묵으로서 존경합니다. 잠이 오지 않는 밤, 네온 불빛의 섬광 대신 휴대폰의 불빛이 21세기의 불면을 위로하곤 합니다. 나 또한 고요한 자판으로 비어버린 학교를 노래합니다. Sound of silence. 잠들지 못한 밤에도 나의 침묵은 졸업을 노래합니다.
꽃다발이 시들고, 향기마저 다 날아가도, 졸업의 기억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Simon and Garfunkel이 나의 마음에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들이 사라짐을 노래하기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