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의자는 태어나
지금까지 타인을 견뎠다
자리에 앉은 육체의 무게보다
자리를 다녀간 마음의 무게가
조금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무수한 그리움이 모여들고
무리한 설렘이 가슴 두드리고
무정한 시름이 바닥을 내리치고
무지한 기다림이 남몰래 돌아섰을
누군가의 자리
하늘과 구름만이 마음의 총량을 알아
고요히 담아놓은 호수 위로
말없이 지나가 준다
타인에 의해 빛 바랜 자리와
자연에 의해 빛 서린 호수가
아무 말 없이
서로의 빛을 어루만진다
B.
아 지금 이 의자 주인은 바로 접니다
앉아마자 햇살이 다가와 포근히 안아주네요
바람이 의자에 동승하여 여린 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줍니다.
새소리와 바람소리만이 의자에 오가기에
여기서 가장 시끄러운 건 시를 쓰는 제 머리속 이겠지요.
햇살이 데웠다기에는 지나치게 따스한 온기가 빈자리에 남아있었습니다.
의자란 누군가 앉기 위해 있는 것
여태 의자가 견뎌낸 감정의 무게들이 궁금해집니다.
두 사람의 시작이 주는 설렘과
폭닥한 삶이 내리치는 시름과
남몰래 정처 없이 머무르는 기다림과
나뭇잎에 쌓여가는 그리움과
봄처럼 순환되는 희망이
얼마나 닿이지 못했으며
어느 만큼이나 스쳐 닿았을지.
이번에 의자는 시를 쓰는 저의 감정을 지탱할 차례입니다
서툴게 쓰이는 낱말 위로
장년의 풍경들이 마주합니다.
빛 서린 호수에 비치는
하늘과 구름과
굽어 흐르는 시간 위에 굽이 드리워진 왕버들나무와
어디선가 향기를 보태주고 있을 아카시아 향기가
그리움처럼 피어납니다.
문장은 풍경의 영향으로 그리움을 노래합니다
그리움이란 건 낙엽처럼 쌓이는 건 줄만 알았는데
세상에는 가꾸어 피워내는 그리움도 있는 모양입니다.
아 아카시아에서 그리움의 향이 납니다
몽글몽글 일어나는 마음을 한가득 실어 다음 장소로 일어납니다
꽃신 신고 도착한 곳에는 복사꽃처럼 고운 미소 물들이며 바람처럼 두 손 가득 맞아주는 꽃같은 마음이 있기를, 그래서 이 봄도 너끈히 행복하기를 기대하며
다음이란 이름으로 그리움과 작별해갑니다.
내 자리에 온기를 두고 갑니다.
다음에 앉으실 분도 봄날에
저로 인해 조금의 온기를 얻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