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눈부시도록 환했던 벚꽃나무를 다시 만나러 왔습니다. 하이얀 제 치맛자락에 꽃잎을 떨어뜨려주던 우리의 봄이, 머지않아 이파리마저 보내야 하는 가을까지 와버렸네요.
언제나 늠름하고 조용한 저 나무는 벚꽃이 없는 지금도 벚나무라 불립니다. 벚꽃을 잃고도, 이파리의 색을 벚꽃이 닮아가도 조용한 저 나무. 저는 나무 옆에 앉아서 그것의 침묵을 오래도록 바라봅니다.
나무의 함구가 과연 자신의 의지일까. 저는 나무와 함께 입을 다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호흡할 때조차 옅은 숨소리가 납니다. 숨을 쉬는 입으로 소리를 남기고 불평도 할 때, 나무는 아무 말 없이 해야 할 일들을 하며 살아갑니다.
나는 몸을 움직여서, 나무는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세상에 남습니다. 나무의 함구와 나의 걸음은 덩어리 진 삶일 뿐입니다.
이따금 걷기 싫은 날이 있듯이, 나무도 소리치고 싶은 날이 있었을 겁니다. 생각이 여기에 닿자 조금은 마음이 시린듯해서 자리에서 일어섰어요.
제 흔적이 남은 의자에 나뭇가지들 사이로 햇살이 바스락하며 부스럭 소리를 냅니다. 눈을 감고 빛이 내는 소리를 듣습니다. 빛은 눈꺼풀에 닿아 얕은 파도처럼 스르륵 사라집니다. 나와 나무는 살아있기에 오늘 햇살을 맞을 수 있습니다.
작은 빛의 오고 감을 듣기 위해 식물은 침묵하고, 나는 걷는 것...
개체들의 인내를 안아주는 자애로운 오후. 누가 뭐라 해도 살아가는 것은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텅 빈 등굣길을 거슬러 늦은 등교를 합니다.
비록 꽃 피는 봄이 아닌 잎이 지는 가을일지라도, 학생들 옆에서 맞장구 칠 수 없는 나무일지라도, 원치 않아도 집 밖을 나서야 하는 오늘이 있어도, 날씨는 작은 삶들을 맞아줍니다.
어떤 날은 맑음을, 어떤 날은 비구름을, 어떤 날은 강풍을 뿌리는 하늘. 세상의 모두에게 기쁨과 절망을 동시에 주는 하늘은, 다름의 계단으로 치열한 우리에게 놀랍도록 공평합니다. 공평한 상황들을 다른 방식들로 받아내는 우리...
인공적인 이 도시도 지극히 자연스럽습니다.
일말의 자애가 넘치는 자연 아래, 나무와 나는 오늘을 나무스럽고도 저답게 너끈히 살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