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 아래 눈 마주친 선조들

by 지구 사는 까만별




1.


부스스 파르르...

나무 이파리들이 끄는 바람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세속의 경계를 알리는 지나친 고요함. 어떤 양식으로 살아왔어도, 어떤 신을 믿어왔어도 다 받아줄 듯 깊은 연못이 아무 말 없이 나를 비추어 올린다.

반면 세상을 비추어 내리는 하늘 연못에는 초록의 정갈함이 연꽃처럼 피어있다. 짙은 녹음으로 들어가는 길. 저벅저벅 터널을 걸어가는 발걸음에는 시대를 알 수 없는 깨끗한 상념들이 깃든다.


잔잔히 퍼지는 풍경 소리와, 사람들의 기도가 향에 타는 냄새. 발아래 부서지는 돌멩이가 도착을 알리듯, 향은 상념의 해체를 진행해간다. 그리고 마음속 바다처럼, 자연의 고요로 평안함이 도래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저 아래서 시름하던 것이 마음속 파도에 부서져 사라져 간다.



2.


절간에서 대나무 숲을 만났다. 대나무 숲은 과거의 군자이며, 지금도 귀인을 닮았다. 잠시 입을 닫고 귀를 열어두면 귀인에게 바로 빠져든다. 사글사글 넓은 관으로 바람이 드나드는 소리부터 공기의 흐름인 듯 싸아 거리는 소리, 가뭄과 홍수를 감지한 듯 우우 거리는 소리...

죽공은 자신에게 그러하듯, 타인에게도 귀 기울이면 좋다며 듣기 좋게 웃는다. 이전에도 수많은 이들에게 가르침을 주었을 대나무 어르신. 다음의 젊은이에게도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 나와는 헤어진다.


폭신한 흙길로 거대한 시간을 얼기설기 엮은 작고도 깊은 공간도 들여다본다. 지난해의 낙엽은 작은 들꽃들을 틔우고, 우주의 시작 위로는 크고 작은 새들이 창공을 가르며 새로 태어난다.

그러하듯 사찰을 밟는 사람들도 끊임없이 다른 얼굴로 늙어가다 어려진다. 각기 다른 행인들도 결국에는 늙어가기에,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특성은 풍경을 수묵화로 만든다. 인간의 차이가 비어 생긴 여백의 미.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쪼르르 쏟아져내리는 선선함을 닮았다.


하늘 아래 시대를 알 수 없는 속세의 상념들이 만 가지의 물결로 공명하는 풍경. 선조가 그랬듯이 백팔 배를 올리는 나약한 부모의 강한 뒷모습이 수묵화로 남아, 자식을 위한 자비로 남는다.


특별한 공간을 빠져나와 익숙한 공간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사람과 사람의 차이로 살아가는 여백 없이 무거운 유화의 세상으로... 저마다의 고민들을 안고 각자의 양식으로 살아가기 위해.

기도를 끝낸 신자들이 고유의 색을 얻으며 각자의 세계, 저마다의 집으로 돌아간다. 언제나 사람들을 위해 고요함을 유지할 세상만치 깊은 연못을 뒤로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