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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Nov 29. 2023

어릿광대를 보내주오

영화 '조커' 리뷰





'인생은 근경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원경에서 보면 희극이다.'

희극 배우 찰리 채플린이 남긴 말입니다. 채플린은 이 말을 통해 멀리서 보면, 인생은 희극이라고 얘기합니다. 이 말을 통해 사람들은 위로받습니다. 내 인생도 멀리서 보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그런데 이 말과 크게 대조되는 대사가 있습니다.

"난 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염병할 희극이었어."

많은 사람들과 달리, 이 대사를 외치는 인물은 자신의 삶이 희극이라는 사실에 위로받지 못했습니다. 등장인물에게 희극은, 유쾌한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스운 삶을 의미하기 때문일 겁니다. 한 우스운 인생의 웃을 수 없는 이야기. 오늘의 영화는 '조커'입니다.


고담시의 시민 아서 플렉은 극단에 소속된 무명 희극인입니다. 기사 작위를 상징하는 'Arthur'라는 높은 이름과 달리 그의 삶은 비극적으로만 흘러갑니다.


빈민가에 사는 아서는 극단에서 근무하며 생계를 유지합니다. 코미디언이 되겠다고 했을 때는 세상이 그를 비웃었는데, 코미디언으로서 무대에 선 그를 향해 관객들은 아무도 웃어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는 개그에 대한 수많은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정신 상담도 받으며 상황을 극복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런 아서에게 직장동료가 총을 주는 것으로 사건은 시작됩니다. 힘들면 당겨버리라는 일종의 배려였는데, 이 총을 아동병원에서 공연하던 중에 소지 사실을 들켜버립니다. 직장동료는 자신과 관련이 없다며 배신을 했고, 그렇게 그는 전화로 해고를 통보받습니다.

그렇게 귀가를 하다 만난 취객들은 피에로 분장을 하고 있는 아서를 폭행했습니다. 상황을 끝내고자, 그리고 해고로 인한 복잡한 감정으로 인해 아서는 가지고 있던 총의 방아쇠를 당겨버리며 조커가 깨어납니다.


"난 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염병할 희극이었어."

아서라는 이름과 달리 행복하게 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에 아서다운 비극의 고매함조차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 서서 스스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극본에 따라 삶의 행복도와 질이 달라지는데, 배우에게 극본을 건드릴 수 있는 권한이 생각보다 크지가 않습니다. 아서가 받은 대본은 우스운 최악의 희극입니다. 방아쇠를 당겨 버리 전에는 그의 편이 없었고, 당겨버린 후에는 완전히 그에 편에 설 수 없게 되었으니 그의 인생에 외롭지 않은 순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당긴 방아쇠를 돌이킬 수 없듯이 쌓아온 삶의 계단을 내려가는 건 춤추는 찰나처럼 번뜩입니다.


'근경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원경에서 보면 희극이다.'

스크린 너머에서 비춰준 아서의 영상은 아름다웠습니다. 첼로 선율과 적재적소의 구도들이 섞인 영화는 암울한  장면임에도 눈을 깜빡이기 아까울 정도입니다. 아서의 인생은 분명 아름답지 않은데, 스크린을 통해 멀리서 보니 연기와 연출에서 빛이 납니다. 아서가 영화관에서 자신의 삶이 이렇게 아름답게 연출될 수 있음을 봤다면 어땠을까 생각도 듭니다. 언제나 우습게 여겨졌던 자신의 직업과 삶도 장엄한 비극이 될 수 있음을...

영화 조커는 우스운 코미디가 아니라, 한 시민이 조커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비극이었습니다.









https://youtu.be/x60mB0zXZ38?si=BcE1wmiOOF6EDP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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