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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Apr 04. 2023

프롤로그: 신이 있어 비정한 어느 날

환(還)




어느 시골 주택에 할머니 한 분이 살고 있었어요. 하얀 머리 때문에 더 동그랗게 보이는 할머니는 오늘도 제때 일어나, 밥을 차려먹고, 해 질 녘까지 소일거리를 했습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듯 자식과 연락하던 휴대폰을 내려놓고, 내일을 기다리며 누웠습니다.


새벽에 꿈을 꾸다 할머니는 어렴풋한 환상을 만났습니다. 세상은 이걸 신이라고 부를까요. 신은 할머니를 보이지 않는 밧줄로 묶었습니다.

"제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

신은 그가 만든 세상과 같은 유형의 대답을 했습니다.

"잘못이 있다고 벌을 받는 건 아니다. 그저 그럴 운명이었던 거다. 인간으로 오래 살아봤으니 알지 않는가."

"저는 이렇게 갈 수 없습니다. 자식들에게 슬픔을 줄 수 없습니다."

신은 할머니의 말을 하고 점점 더 몸을 꽁꽁 묶었습니다.

그때, 전화소리가 들렸습니다. 신이 확인해 보니 큰딸입니다. 신은 행동을 멈추고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너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 사실이구나. 정말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나?"

"네, 하겠습니다."

신은 할머니에게 깊은 호수를 보여줬습니다. 동네의 호수와 모습은 같았지만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깊어 보였습니다.

"선산 호수에 가면 너의 과거가 있다. 과거를 보며, 너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찾아와라. 네 잘못을 굳이 찾자면, 너는 인내하느라 자식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자식에게 부담 지우기 싫어서 사랑하는 마음을 참느라 제때 표현하지 못한 너의 실책이다. 묶인 몸으로 호수를 향해 걸어라. 할 수 있겠는가."

"네 하겠습니다."

신은 할머니의 낡은 바지를 환자복으로 바꾸었습니다.

"나의 존재와 너와의 계약이 들키면 안 된다. 이 옷이 밧줄 대신 너를 묶을 것이다. 일어나서, 일어날 수 없으면 꿈에서라도 걸어라."

그렇게 말하고서 신은 할머니가 자신을 만난 기억을 지웠습니다. 할머니에게 남은 건 호수로 가서 기억을 찾아와야 한다는 계약 한 줄 뿐... 



"할머님 괜찮으세요?"

이웃과 구급대원이 할머니를 싣고 선산에서 멀리 떨어진 병원으로 갔습니다. 갑자기 주인을 잃어 멀뚱해진 빈 집에는 신이 남긴 계약서가 조용히 먼지로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P.S

이 글은 제 대표적 매거진 '8학년 국민일기' 주인공이신 친정엄마 이야기입니다. 평생 건강하시던 분이 두 달여 전 갑자기 쓰러져 지금도 병원에 계십니다.  

여태까지 엄마가 살아온 이야기를 물어보며 국민일기를 작성해 왔는데, 아직 말씀을 못하시기 때문에 지금으로선 어렵게 되었습니다.

국민일기는 엄마의 속에 내재된 문학성으로 글을 써왔습니다. 엄마가 못쓴 일기를 제가 대신 써주고 싶었으니까요.

그러나 엄마의 이야기를 추정할 수밖에 없는 지금, 엄마의 차도를 동화의 형식을 빌려 비정기적으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엄마가 어서 신과의 계약을 완수하면 좋겠습니다.


신이 '예전처럼'이라는 상을 주시길 바라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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