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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Apr 28. 2023

검은 꿈이 아름다운 이유는 호수를 숨겼기 때문이야

환(還)




신이 사라진 꿈속. 신이 사라진 그곳에 어렴풋이 윤슬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반짝임을 향해 묶인 몸으로 조금씩 몸을 움직였습니다.

'우리 엄마는 오늘에서야 낮잠을 자는구나...'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할머니를 보고 자식들은 한동안 말을 잃었습니다. 할머니는 꿈에서 열심히 걸었지만, 자식은 잠만 자는 할머니를 슬퍼하며 병원 밖에서도 밧줄을 잡고 기도를 했습니다.


자식들이 병원에 찾아와 밧줄을 잡아도 신이 묶은 밧줄은 쉬이 풀어지지 않았습니다. 밧줄에는 손때가 묻고 눈물이 묻다, 고요한 병원의 침묵이 배여 갔습니다.

시간이 지나, 자식들은 익숙하게 지쳐갔습니다. 지친 동생들 앞에 큰딸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우리는 여태 잘해왔어. 후회할 것 하나 없이."

그러고선 두 손으로 밧줄을 꼬옥 움켜잡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회하고 싶지 않아."

큰딸은 그새 제법 낡아진 밧줄을 푸는데 자신의 휴가를 반납하기 시작했습니다.


꿈속에서 호수를 향해 한 손으로 휘저으며 덤불을 건너느라 허우적거리는 할머니. 할머니가 지치지 않도록 큰딸은 호수의 감촉을 잊지 않도록 손에 물을 묻혀줍니다. 꿈에서조차 동네 호수를 가는데 애쓰는 할머니를 보느라, 할머니의 물수건에서는 왜인지 짠맛이 났습니다.

조금 짠 빗방울에도, 고독한 병실에도 할머니는 꿈속에서 잠도 안 자고 걸었습니다. 그러느라 일어나지 못하는 건 미안했지만, 할머니가 자식을 만나려면 계약에 따라 호수로 가야만 했습니다.


달 만에 할머니는 호수의 반짝임에 도착했습니다. 어두운 꿈 속에도 아지랑이는 이는지, 호수가 아니라 신기루였습니다. 할머니는 허탈한 마음에 아지랑이 앞에 잠시 주저앉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아지랑이 위로 세 딸이 어리었습니다. 놀란 마음에 두 눈을 번쩍 떴고,

그날 할머니는 처음으로 꿈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눈을 뜨고 자신을 찾아와 내려다보는 자식들에게 엷은 미소를 띄워주었습니다. 다시 돌아온 미소에 자식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잠시 병원의 정숙을 깼습니다.


일주일 뒤 큰딸이 일하러 돌아가고, 할머니는 잔잔히 생각해 봤습니다. 그날 신이 호수로 가라고 말했던 것이, 꿈밖으로 나가게 해 주기 위한 것이었구나... 그럼에도 할머니는 동네 호수 한 걸음 걷기 위해 훨씬 더 긴 길을 재활해야 합니다.


자식에게 전하지 못한 말을 전하기 위해서...

할머니는 자식들이 흘리는 눈물 한 방울을 주체할 수 없어 힘든 길을 걷고자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납니다.








P.S

이 글은 제 대표적 매거진 '8학년 국민일기' 주인공이신 친정엄마 이야기입니다. 평생 건강하시던 분이 갑자기 쓰러져 지금은 재활병원에 계십니다.  

여태까지 엄마가 살아온 이야기를 물어보며 국민일기를 작성해 왔는데, 아직 말씀을 못하시기 때문에 지금으로선 어렵게 되었습니다.

국민일기는 엄마의 삶 속에 내재된 문학성으로 글을 써왔습니다. 엄마가 못쓴 일기를 제가 대신 써주고 싶었으니까요.

그러나 엄마의 이야기를 추정할 수밖에 없는 지금, 엄마의 차도를 동화의 형식을 빌려 비정기적으로 연재중입니다.

엄마가 어서 신과의 계약을 완수하면 좋겠습니다.


신이 '예전처럼'이라는 상을 주시길 바라봅니다.

읽어주셔서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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