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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Jun 21. 2023

병원담벼락에서 오헨리가 읽히고

환(還)




텅 비어버린 집.

할머니가 사라진 집에도 완전한 어둠은 없습니다. 매년 장을 담그던 할머니를 생각하며, 장독대는 매일 밤 달빛을 반사해 할머니집으로 보냈습니다. 달이 없는 날은, 빈 집과 같은 바닥을 잡고선 장독은 머리 위로 빗물 한 사발을 스스로 받아 간절한 기도를 드리곤 했습니다.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았을까요. 아기가 태어난 건 아니지만, 다소 어려진 할머니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겨울을 건너서 가족 앞에 봄으로 서기 위해서... 겨울이 돌아 다시 봄이 온 할머니를 보기 위해 찾아든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웃습니다.



낯익은 성인이 찾아오면 어르신은 환하게 웃습니다. 가족은 할머니가 누워만 있다가, 앉아있는 걸 보고, 끄덕이는 할머니의 고개를 봅니다. 너무 빨리 크는 아이가 내심 아쉬웠던 자식들에게, 할머니는 누구보다 느리게 자라는 아기를 스스로 내어줍니다. 아기 손처럼 퉁퉁 불은 손에도 조금씩 힘이 생겨, 느린 아이와 자식들은 잼잼 놀이를 합니다.



지난해까지 할머니는 자식들이 온다고 하면  텃밭에서 야채를 뽑았습니다. 몇달째 생식은커녕 콧줄로 꿈을 연장해야 했던 할머니는, 이제 자식이 들고 온 부드러운 간식을 조금씩 받아먹습니다. 오른손잡이였던 할머니는, 왼손잡이로 다시 자라며 한 손으로 죽을 떠먹습니다.



엄마, 오늘은 병원 앞에 엄마 닮은 걸 보여줄게.



휠체어 위에 환자복이 펄럭이고, 그 위로 5월의 햇빛이 공평하게 내립니다. 낯선 도심에 붉은 장미 넝쿨이 낯선 만큼 싱그럽게 피어납니다. 겨울을 지나 춘삼월을 건너뛰고 처음으로 세상밖으로 다시 나와 5월을 바라보니 햇살이 너무 빛납니다. 꽃을 좋아하는 할머니가 엷은 미소를 띠곤 그 풍경을 눈으로 한없이 쓰다듬습니다. 담벼락에 갇힌 듯하지만 담벼락이 있어 자라난 장미. 활짝 핀 장미처럼 할머니도 다음 면회 때 저 벽돌 속에서 잘 자라나길... 



할머니를 실은 승강기의 문이 닫히며 막내는 힘껏 손을 흔들며 기도를 합니다. 무심하게 올라가는 승강기의 숫자와, 장미를 반짝이며 조명하는 햇살...

거대한 신은 그런 작은 것들대답을 하며 도시를 스쳐 갑니다.










P.S

이 글은 제 대표적 매거진 '8학년 국민일기' 주인공이신 친정엄마 이야기입니다. 평생 건강하시던 분이 몇 달 전 갑자기 쓰러져 지금은 재활병원에 계십니다.  

여태까지 엄마가 살아온 이야기를 물어보며 국민일기를 작성해 왔는데, 아직 말씀을 못하시기 때문에 지금으로선 어렵게 되었습니다.

국민일기는 엄마의 삶 속에 내재된 문학성으로 글을 써왔습니다. 엄마가 못쓴 일기를 제가 대신 써주고 싶었으니까요.

그러나 엄마의 이야기를 추정할 수밖에 없는 지금, 엄마의 차도를 동화의 형식을 빌려 비정기적으로 연재 중입니다.

엄마가 어서 신과의 계약을 완수하면 좋겠습니다.


신이 '예전처럼'이라는 상을 주시길 바라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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