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 사는 까만별 Apr 16. 2023

풀잎같은 너에게




달라진 건 나의 나이뿐.

여름도, 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나는 홀로 작은 동산에 가곤 했습니다. 나처럼 푸르던 나무에는 서투른 풀잎들이 넘실거렸습니다. 봄은 서서히 시들어가면서 여름을 돌아보고, 느려진 햇살에 점점 더위가 실립니다.

여름의 초입에 밝혀둔 하이얀 램프에서 여름의 향이 물씬 나고, 나도 제법 여름인 것 같습니다. 키도 엄마와 비슷해졌고, 아빠처럼 한자신문을 읽기도 합니다. 도시로 간 오빠처럼 기타를 치기도 합니다.

근데 자꾸만 어른들은 나보고 어리다고 합니다. 괜히 툴툴거리고 싶어 오늘 난 아카시아 나무를 찾아온 겁니다. 잠시 책가방을 풀밭 위에 팽개쳐놓고 난 나무 그늘 아래로 들어갑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나를 좋아할까? 어른들처럼 그냥 나를 어리다고만 여기진 않을까? 아지랑이처럼 복잡한 마음이 들어, 난 고백이 묻은 이파리를 꺾어 잠시 바라보다 어나갑니다.


좋아한다...안좋아한다...좋아한다...안좋아한...


한 잎 겨우 남았을 때 이파리가 괜히 겸연쩍어합니다. 시무룩한 표정을 바라보던 숲은 잠시 눈치를 살피더니 다시금 풀벌레 소리를 냅니다. 나는 또 가지를 꺾어 산뜻하게 마지막 잎을 뜯을 때까지 바닥에 이파리들을 떨어뜨렸습니다.



책가방 대신 이파리들이 쌓인 나무 아래. 연두색으로 빛나던 그곳이 내 청춘의 둔덕이었을까요... 둔덕들은 몇 날 며칠 빛나고, 내 손과 연필에는 오래도록 풀향이 났습니다.



오빠가 치던 기타에 먼지가 끼듯이, 이파리도 손가락도 수분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건 나의 손가락들 뿐. 시간이 지나도, 여름과 나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나는, 소중한 사람들이 나와 같은 마음인 지 궁금할 때 조용히 마음속으로 아카시아를 꺾는걸요.

고향의 숲에는 여전히 봄볕에 꽃들이 낮잠을 자고 있을 겁니다. 자신이 여름인 줄 알고 나뭇가지를 꺾던 작디작은 봄을 올해도 여전히 기다리며...











P.S

아카시아 향기가 들려올 즈음이면,

초원에서 시간을 보내던 사춘기 시절의 제모습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 아이를 생각하며 써본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꽃잎이 떨어져 봄이 올지라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