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볕이 녹는 걸 보고 싶어 바다를 찾았습니다. 비린 냄새와 달리 바람의 촉감은 바다 깊은 곳의 포말을 닮아 보드랍고 선선합니다. 저 시원한 곳에 태양이 녹을 수 있다는 것이 이상할 만큼...
바위에는 나와 같은 수많은 발자국들이 지나왔습니다. 오늘도 관광지인 이곳에 인간의 미약한 무게가 지나가면, 마찰열로 뜨거워진 바위를 바다는 자신의 언어로 어루만지며 밤새 식힙니다. 켜켜이 색을 달리하는 절벽의 유구한 세월도 파도 같은 찰나의 진심에 올 풀린 모래로 서서히 함께 녹아갑니다.
지층마다 비밀을 간직한 바위 위를 디딥니다. 태양도 녹이는 저 바다에, 내 사념들을 하나씩 투척합니다. 세월만큼 많은 비밀을 품고 고요히 서있는 저 절벽조차도 파도 앞에서는 거품이 되어 부서져갑니다. 오후와 지층을 녹이는 바다가 이번에는 나를 녹여 내 안의 마음들을 꺼내줄 겁니다.
나는 여태 밀물을 기다리며 간조인 바닷속을 걸어왔습니다. 소녀에게는 활자로 된 바다를 항해하고 싶다는 막연한꿈은 있었으나, 소녀는 바다와 그리 가까이 살진않았습니다. 권태에 의해 말라버린 나의 바다에서 다시금 한 방울씩 물을 받으며, 나의 바다를 채워갑니다. 애써 채운 바다가 다시 말라도, 나는 다시 물을 채우며 언젠가 나의 바다에 만조가 오기를 기다립니다.
언제나 만조인 이곳의 바다. 절벽조차 부수어져 사라지는 이곳은 말라버린 꿈의 바다마저 조금씩 젖게 합니다. 나 역시부단히 활자를 부으면 언제가나의 바다를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절벽사이를 다 걷자, 군데군데 좌판에 해산물을 팔고 있는 어멍들이 보입니다. 손마디 굵은 여인들의 갓 잡은 삶들을 팝니다. 어멍의 강한 주름과 사투리에서, 바다와 살아가기 위한 강한 흔적을 봅니다. 절벽을 녹일 만큼 강한 바다에서 살아온 어멍들... 나의 글은 어멍의 생명력을 동경합니다.
그러나 나는 어멍 같은 글을 쓸 수 없기에, 여전히 어리고 어리석은 중년의 눈은 마침내 바다를 향합니다. 또다시 밀려오는 다음 파도는 반짝이는 사빈의 자국을 말없이 쓰다듬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