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 끝자락이 기운을 다해 소파에서 시들 거리던 주말. 그래도 저녁이면 엄마가 끓여 온 된장찌개나 아빠가 가끔씩 끓이는 짜파게티, 아니면 치킨을 둘러싸고 온 가족이 화면을 응시했다. 여느 가정의 식탁 위에 바보를 연기하는 배우들이 동네에 같은 웃음을 만들어낸다. 잔뜩 흐린 근육들이 이완되며, 다음 평일을 맞기 위한 노을이 붉게 물들었다. 사람들은 동시에 터지던 주말 저녁의 웃음을 21세기의 첫 번째 향수로써 추억한다. 단 한 사람. 내 딸아이를 제외하고.
이 글은 향수를 맡지 못하는, 아이를 위한 의구심으로 시작되었다.
CD에서 스트리밍으로 넘어간 지금도, 불꽃놀이와 함께 터져 나오던 가요제의 음악이 기억 용량의 한 칸을 차지한다. 휴대폰으로 예능의 하이라이트를 보며 몇 년 전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웃고, 조회수는 그런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도 다시는 돌아갈 순 없다. 내가 웃고 있는 곳은 온 가족이 함께하는 TV앞이 아니라 내 방 침대 위이기 때문이다. 결국 영상을 찾아온 관객들이 그리워하는 건 동시다발적으로 웃던 당시의 가족과 마을이었다. 배우들은 더 이상 거실로 찾아올 수 없고, 사람들은 마을의 공감을 잃었다. 무엇인가 상실한 사람들이 오늘도 동영상으로 찾아와 한 마디를 내려놓는다.
‘요즘은 그때보다 마음에 여유가 없는 것 같아요.’
희극배우들이 거실로 올 수 없어 그저그런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딸아이는 항상 너무도 즐거워 보였다.
‘너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니?’ 묻자, 아이는 대답한다.
“엄마 드디어, 내가 무엇을 즐거워하는지 궁금해하는구나!”
딸아이는 나의 손을 잡고, 뉴미디어를 향해 발을 굴렀다.
티브이가 골라주는 것을 보기만 하면 되었던 나에게, 내 취향의 것을 알아가는 것도 엄청난 도전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보는 것이 아니라,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반성(反省)할 수밖에 없었기에...
다양한 세상을 담아 퍼주는 네모난 알을 깨고서야, 나는 내가 대중 밖에서도 한 없이 작은 우주임을 알 수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다른 우주를 만날 준비가 되었다.
출항한 뉴미디어에는 놀라울 만큼 인재가 많았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 낭독을 잘하는 사람, 요리를 잘하고,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
TV는 의도적으로 조명하지 않았을 소수들이 소수를 위한 메시지를 만들어 전파하고 있었다. 감사히 인재를 만나는 날 나는 생각했다.
“아니 어떻게 이런사람들이 무명이었나요?”
사람들은 대답했다. “TV가 그들을 제대로 비추어주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웃음을 책임지던 단역배우들 중에는, 자신을 향해 조명을 재설정하여 보편적인 웃음을 다시금 제공해 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보편의 웃음을 위해, 실직을 이겨내고 넓은 바다에서 자신의 방주를 만들고 항해하는 사람들...
보편적이지 않은 곳에서 보편을 만드는 그들의 땀방울을 보고, 어찌 무한한 도전이 끝났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보편의 웃음을 만들어내는 각기의 사람들에 의해, TV 앞에서 웃지 못했던 누군가는 오늘에야 웃을 수 있을 것이다.
팍팍한 세상살이에 옅어진 파안대소는 부유하다 흩어질 것만 같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세상 속에서, 나는 그저 부유하는 생명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지면에서 우주의 공허함을 느끼는 그 순간이야말로 새로운 것을 향해 길을 떠나야 할 때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향한 모험을 떠난 시청자와, 보편이 사라진 지금에도 여전히 가장 소중한 가치를 찾아주기 위해 떨어지고도 다시금 절벽을 맞이해 온 그들의 날갯짓에 겸허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