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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Jun 15. 2023

초상화를 걸 곳이 없다 2

낡음의 부재




누가 여름을 바캉스의 계절이라고 했는가. 내가 지나온 여름은 지치도록 녹아가는 검은 아스팔트의 계절이었다. 햇볕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 이미 지친 아스팔트가 진득하게 바퀴와 발자국을 붙잡다 놓치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색색의 옷을 입고 시외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시원한 여름 노래를 부르며 청량한 기분을 뿜어냈다. 자기만한 가방을 들고 짐을 실으면, 더위로 나른한 버스가 땀도 못 흘리고 천천히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버스유리창에 두 개의 하늘이 포말을 이루며 우리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갈매기처럼 바다를 향해 고조되기 시작했다. 탈탈 거리는 낡은 버스가 하나씩 짐을 내리고는, 기사 아저씨와 밥을 먹으러 낡은 길을 따라 다시 사라져 갔다.



한낮의 지글지글 타오르는 태양도 수시로 바다로 뛰어들어 열기를 식혔다. 바다는 하얀 거품을 돌돌 말아가며 외지인을 반겼고, 우린 맨발로 한참 젖은 바다를 거닐었다.



바다가 모래색이 될 무렵, 붉음을 토해내던 노을을 바라보던 푸른 시선들을 나는 기억한다. 일몰에 청춘의 그림자들은 한 치 앞도 모른 채 노을 속에서 끝없이 흐느적거렸다.



영원할 젊음이 다소 지겹기도 했고, 청춘이 아름다운 건 알면서도 늘 좋지는 않았던 시절. 휘영청하고 휘청거려 아프기도 했던 나약한 시곗바늘 속...

각자의 태엽을 쥐고 가볍게 웃음을 날리던 젊은 초상들은 지금 어디서 세월에 익어가고 있을까. 나처럼 떠나버린 고운 모래들을 손바닥에서 한 알씩 주워 담고 있지는 않을까.



헹군 듯 말갛게 빛나는 아침바다가 풍경처럼 말갛던 초상들을 찰박찰박 깨운다. 바다같이 드넓은 햇살은 윤슬처럼 밝은 눈동자들을 향해 발목을 휙휙 휘감아주었다.



낡은 버스는 고물이 되었고, 운전 기사님은 은퇴를 하셨을 것이며, 나의 많던 짐의 행방은 이젠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파도 위를 긁으며 기록된 청춘의 음악들과 당시 티브이에 나오던 바캉스 테이프가, 덜덜 거리던 버스의 열기와 함께 빙글빙글 기억에 꽂힌다.



여름은 아스팔트의 계절.

지글지글 아스팔트에 달걀도 익는 여름이면, 비어버린 나의 청춘 모래시계에 몇 알의 알갱이가 고열에 수정이 되어 한참동안 반짝인다.











https://youtu.be/x28aE-d2c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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