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카드를 오랜만에 찍으며 차분한 목소리가 통행을 허락하는 소릴 듣는다. 기계 대신 자리에 앉은 기사 아저씨가 직접 인사를 해주시던 그시절을 생각한다. 그러자 기억의 둥근 토큰이 버스 바퀴마냥 빙그르 돌아간다.
“8255”
공중전화가 없으니 상대방의 수신에 답장할 방법은 없다. 글자도 보낼 수 없고 상대가 보낸 숫자만을 바라본다. 말할 수 없어도, 글자를 쓰지 않아도 우리는 통했었다. 그때의 젊은이는 시간이 지나, 바로 온 문자도 천천히읽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추위를 먹으며 매연을 뱉어내던 시내버스는 약속장소에 미리 도착한 친구를 위하여 덜컹 인다. 종일 속도 없이 배회하느라 피로가 결리는 버스 유리창엔 성에꽃이 돋았다. 친구에게 가는 사람들을 지나 종점까지 피로를 버티는 기사님을 빼닮은 꽃이다. 유리 위에 돋아난 차갑고도 투명한 꽃잎 사이로 행인과 건물이 휙휙 스친다. 한 손에 꼭 쥔 삐삐에 비치는 시간의 속도처럼.
주말 늦은 오후, 북적거리는 도심 한가운데서 만나기로 한 시간과 장소가 점점 가까워져 간다. 주말의 나른한 여유와 달리, 도심으로 진입할수록 젊은 초상들은 열기를 찾아 불나방이 되어 모여들고 있었다.
정류장 버스 문을 여는 순간, 캐럴이 여기저기 섞여 허공으로 퍼졌다. 퍼레이드처럼 길게 늘어진 노점상 위에는 알록달록한 테이프들이 뿌연 불빛 아래 빙글빙글 성탄절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고 있었다. 출처 모를 노래에 일몰이 찾아들자, 나는 모르는 사람들에 섞여 붉게 상기되어 갔다.
요란하게 흩어지는 캐럴송을 등 뒤로 풀어헤치다 보니, 작은 서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중전화를 들르지도 못하고 종종걸음으로 향하는 나도, 어여 오라는 신호를 누른 후 서점 안에서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오르내렸을 여러 발자국과같은 것을 남겼다. 지그시 바깥세상을 내려다보며 책나무 아래서 종이 향기를 맡던 사람들 사이 나의 친구가 선명히 비친다.
헐레벌떡 찬 바람을 몰고 온 손을 잠시 부여잡던 반가움이 채 가시지 않는 손으로 우리는 테이프만큼이나 알록달록한 크리스마스카드를 미소로 골랐다. 더 두툼해진 가방을 메고 나와서 노란 조명이 접시를 물들이던 어느 경양식 돈가스 가게로 향했다. 돈가스를 스테이크 썰 듯 호기롭게 칼질을 하였고, 주문한 음료수 파르페에 꽂혀있던 빨간 우산 덕분에 테이블은 해변의 파라솔이 되어 한겨울에 해변의 바람이 불었다.
밥만 먹고 헤어지기는 아쉬워 그날도 음악감상실을 들렀다. 음악보단 심야 DJ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자주 찾던 곳. 매번 앞자리에 앉아 신청곡과 간단한 사연을 적어 보내곤 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사연을 읽어주면서 ‘매번 앞자리에 앉으시네요’ 나의 존재를 언급해 주었다. 잠시 눈을 맞추고도 한참 설익게 붉어져 막차버스 유리창에 잠시 뺨을 식혔다.
내가 회상한 장소들은 광음에 의해 대개 다른 가게가 되었거나 임대로 비어있다.약속장소도, 삐삐를 받기 위한 공중전화도, 도로에 즐비하던 노점도, 약속 장소가 엇갈려 기다려도 화내지 않던 마음도 기술에 발전에 늙어간다. 당시의 가치들이 영원할 줄 알았던 무지 상태였기에, 아니 오히려 영원한 건 없음을 내심 알았기에, 부질없이 맹세하던 영원들을 다시금 꺼내본다. 나만 밀려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 역시 서툴렀던 나를 조금씩 보내주고 있었다.
지극히 편리하고, 합리적인 문명 아래 올해도 연말이 찾아왔다. 내년에는 비효율을 조금씩 찾아가기를. 사라진 길거리의 캐럴 위에서 소원을 빌어본다. 오늘은 변해버린 것들 위에도 이전과 똑같은 눈이 내리니, 상가의 모습을 빛바랜 과거와 겹쳐보게 만든다.습도가 높은 입김 위로, 네온이 번져가니 그날과 같은 웃음소리들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