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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Aug 18. 2024

나비의 꿈을 꾼 나방들에게

초상화를 걸 곳이 없다



 달콤함으로 소주의 쓴맛을 가린다고 소주가 아닌 건 아니다. 그러나 청춘이란 술임을 알고도 그 달콤함에 기꺼이 속아주는 존재다. 쓰디쓴 소주는 상큼한 레몬을 먼저 내보내며 교활하게 웃었다. 맥주만 고집하던 나는 레몬과 소주가 섞인 주전자에 넘어가버렸다. 쓰고도 어지러운 맛이 상큼하고도 달콤하게 미화되듯, 일행은 한여름 울창한 아름드리처럼 푸르기도 하면서도 옅게 이는 바람에도 파르르 흔들리길 반복했다. 여름날, 그날도 그들의 밤은 짧았다.     



 오랜만에 흑백 교실 속 벗들이 날아든 도심의 번화가는 루살처럼 네온을 좋아하는 젊은이를 끌어당겼다. 말갛게 헹구어진 한낮보다 휘영청 빛나는 밤. 그 부드러운 어둠 속에 암(暗)의 개체들은 각자의 약한 발톱을 세운 채 고고히 걸어 다니며 제 인연을 찾아다녔다. 무수히 많은 방향이 난무하는 도로 위, 허리춤에서 진동하는 빠알간 삐삐만이 ‘8255’를 밝히며 길을 잃지 않게 도와주었다.     


 드르륵...

 제법 큰 식당에 여러 테이블이 왁자지껄해도, 익숙한 눈빛들에 관성처럼 빈자리를 찾아갔다. 지각자인 나를 위한 환영주가 한 잔 따라졌다.

 “요즘 이 레몬 소주가 유행이잖아. 억수로 맛있데이. 함 마시봐라.”

 소주는 한 방울도 못 넘기는 내 목구멍에 레몬의 상큼함이 타고 흘러 혈관 속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취기가 서서히 차오르는 맥주완 다르게 건배 몇 번에 온몸이 나른해졌다. 나를 비롯한 일행들은 언제든 폭발할 듯 붉어지고, 한동안 침식되었던 나사들이 조금씩 풀어졌다. 모두가 흥건하고 고조된 소리들이 테이블을 넘나들며 술은 알코올램프 마냥 청춘들의 밤을 태워댔다.      


 헤어지기 아쉬워 2차로 찾은 옆 건물. 네온사인 불빛들이 점멸등처럼 깜박이는 벽 너머로 경쾌한 파열음이 들린다. 알록달록 공을 가둬둔 삼각틀을 들어 올리면 게임은 시작된다. 흰 공을 맞혀 자신의 공을 먼저 블랙홀로 넣던, 묵직하면서도 경쾌한 포켓볼 소리는 다양한 목소리와 뒤섞인다. 일행들은 큐대로 다양한 포즈를 취하던 초상들이 되어 네온사인 사이의 실루엣마냥 꺼지다 빛남을 반복하고 있었다.     


 큐대와 공이 부딪히는 소리에 맞추어 하나 둘씩 사라지고, 가게를 나오자 나를 비롯한 세 명만이 조금 휑해진 거리에 남았다. 공교롭게도 세 명은 모두 별리의 상처로 서로의 벗이 되어준 사이였다. 의기투합하여 호기롭게 찾은 3차 포장마차. 북적거리던 사람들을 반짝이는 눈으로 구경하던 불빛은 거의 사라지고, 그나마 남은 사람들도 비닐에 비친 막차버스에 몸을 싣고 있었다. 그리고 그 너덜한 비닐 너머에 술과 퉁퉁 불은 우동과 함께 덩그러니 놓인 우리 세 명이 있었다. 흐릿한 불빛과 무정한 거리가 우리를 에워쌌다.


 그 단맛에 기꺼이 속아 넘어가 주었건만, 우리는 내일에 드리워진 짙은 안개에 원인 모를 갈증을 느끼며 휘청거리는 취객에 불과했다. 갈증에 술을 마셨는데 해갈이 안 된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포장마차를 빠져나와 각자 택시를 잡기 위해, 우린 깔깔거리며 대로변을 향해 걸었다. 가로등도 많지 않은 골목이 우리의 웃음을 비밀로 부쳐주었다. 함께 보던 달밤도, 이유 모를 불안함도, 우스웠던 유행어와 몸짓에도 골목은 침묵하여 주었다.

 CCTV가 가득하고, 블랙박스가 넘쳐나고, 콘크리트에 골목의 입이 틀어막힌 지금.

나는 그 거리가 나의 청춘을 비밀로 지켜준 것인지, 나를 비롯한 과거를 모두 잃어버린 것인지 구별할 수 없다. 바텐더가 쉐이커에 섞어만든 칵테일이, 그날 주전자 속에 소용돌이치던 세상 속 우리를 구현할 수 없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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