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 春.
늦가을에 결혼식이 있던 나는 결혼을 준비하며 일을 했었다. 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 지역을 벗어날 여유가 없던 나에게 편지를 주는 여자가 있었다. 혼자 살아도 마음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던 미혼의 그녀. 현재를 숨 쉬는 그녀의 엽서는 미래를 준비하느라 멀리 나가지 못하는 나의 전서구였다. 나는 낯선 창공을 가르는 당당한 비행을 상상하며 그녀의 엽서를 보관해 나갔다.
학창 시절의 친구였던 그녀는 홀로 간직하던 비둘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전서구의 해외배송은 평화의 상징이 어느 도시에 다다랐는지 유추할 수 있게 도왔다. 덴마크 우표 옆 인어공주 동상의 비늘이 반짝이는 듯 생생한 안데르센 동화를 들려주기도 하고, 총탄에 의한 전쟁의 상흔을 노출하는 헝가리의 성벽을 보내주기도 하였다. 책갈피 같은 엽서 한 장의 여백은 빼곡한 편지지보다 많은 이야기를 주었다. 평화의 상징이 전쟁의 성채에 가기까지 세찬 바람이 불기도 했을 것이다. 치즈와 과자 몇 장으로 하루를 보낸 날도 있었을 것이고, 비경에 다다랐으나 하늘이 쭈글쭈글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평화로운 친구의 여행은 사무실의 우편 뭉치에 섞여 직장에서 숨을 돌릴 수 있는 내 작은 하늘이 되어주었다.
늘어진 배낭끈처럼 피로가 내려앉을 때 즈음 다다른 앙코르 와트의 엽서를 끝으로 비둘기는 긴 비행의 꿈을 완주하고 한국으로 귀국하였다.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은 가을, 나는 친구의 자취방에서 여행 앨범을 만날 수 있었다. 쪼그려 앉아 초록빛 미모사와 여유로운 장난을 치며 한낮을 즐기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온전한 평화였다. 페이지를 넘기는 작은 방 밖으로 긴 낮의 끝을 알리는 낙엽이 내리고 있었다. 1998년이 끝나가고 있었다.
1998년이 끝나갈 때 즈음, 나는 결혼을 했고 친구는 복직을 했다. 비행의 추억을 안고 일상을 살던 친구는 조금 늦게 인연을 만나 가족을 꾸렸다. 친구는 세상을 누비던 담대함을 나침반 삼아 지혜롭게 일상을 누볐다.
시간이 흘러 2013년 겨울. 예비 신부였던 나는 어느새 딸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을 맞았다. 딸을 위해 간 여행에서 친구가 남긴 발자국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엽서를 보내는 대신, 친구의 발자취를 발견하면 SNS에 과거의 시간을 공유하였다. 동네 여행에 피곤했을 친구는, 그날 다시 비둘기의 꿈을 꾸었을까. 결혼을 준비하던 내가 작은 하늘을 우편으로 받았을 때처럼...
친구를 중학교 때 만났는데, 내 딸이 이제 중학생이다. 나중에 둘이서 여행을 떠나자는 제안에 아이 엄마들은 다시 중학생이 되어 까르르 웃는다.
1998년의 늦봄과, 2013년의 초봄.
시기와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그녀 앞에서 나는 소녀를 처음 만난 중학생의 봄처럼 언제든 까르르 웃을 수 있다. 내가 가볍게 찾아가서도 별 말없이 앉아있으면 질문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두런두런 반추해 주는 그녀. 이야기를 함께 펴서 두드리다 보면, 집으로 돌아올 즈음 내 기분은 잘 말라져 있었다. 어릴 적 시골마당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바삭한 볕처럼 말라 가던 보송한 옷들처럼...
냉정을 담기엔 너무 따뜻하고, 열정을 담기엔 너무 평온한 그녀. 나는 그녀의 일정한 광량을 햇빛에 비유한다. 하늘에서 내리는 빛과 함께 하늘을 비행할 언젠가를 친구의 엽서에 작게 반송한다. 한 권의 지혜이자, 앨범인 그녀의 동네여행이 오늘도 안녕하기를.
PS. 제 친구의 오래전 싸이월드 배경곡입니다.
두 동양인이 각기 다른 시기에 피렌체를 방문하였네요. 여러 도시에 도래했던 1998년의 春에게 감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