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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Nov 07. 2023

목탄으로도 목단을 그려낼 수 있음을

 



누르스름한 한지가 조금씩 펄럭이는 문틈. 그 사이로 시퍼런 새벽이 노란 방안 사이로 조금씩 확산되고 있었다. 푸른빛에 물들어 먹색이 돼 가는 안방 장롱이 군말 없이 나를 내려다보니, 나는 이불을 눈 밑까지 올리고 데굴데굴 눈동자를 굴려본다. 잠결에 마신 낯선 공기가 점점 선명해질수록 벽지의 색깔이 이질적으로 보인다.


그렇다. 이곳은 우리 집 안방이 아니다.

 어제 우리 집을 나와서 길을 걸을 때까지도 신이 났는데, 옻칠한 검은 장롱의 안방에 엄마가 없다는 사실이 갑자기 서러워진다. 하루 소풍을 보내준다고 옆마을에서 나를 데리고 오느라 푸르르 고단함을 몰아내는 낯선 코 고는 소리가 새벽이 온 지도 모르고 진동한다. 나는 다시 눈을 꼭 감고 코골이에 맞춰 양이라도 세었다. 그렇게 한참을 목장에 양을 비워내다 보니 코 고는 소리가 점점 옅어져 갔다.  

   

 ‘우음 지금이 몇 시야...’ 아침 끄트머리 즈음 나는 방에서 덩그러니 다시 눈을 뜬다. 새벽에 엄마를 찾던 아이 손을 기억한다는 듯, 마당 한켠 시커먼 가마솥 위에 내려앉은 서리가 나를 위해 몰래 반짝여주었다.

그때 시커먼 정지*에서 연기를 피우던 이모가 마당으로 나오셨다.

났나?’

새벽에 깬 줄도 모르고 늦잠꾸러기에게 너스레를 털며 웃으신다.

네, 이모.’

나는 눈을 비비며, 엄마보다 더 키가 작은 이모에게 인사를 드렸다.  

   

 옆 동네 사시는 이모가 우리 집을 다녀가실 때면 나는 쫄래쫄래 이모 손을 따라가곤 했다. 안방이 아니면 겁이 나서 눈을 굴리던 꼬마가 선뜻 이모 집을 나선 데는 제법 속내가 있었다.

특식이라곤 밀가루 전과 국수가 한금* 섞인 라면밖에 없는 우리 집과 달리, 이모는 조카가 오면 곤로에다 맛난 걸 담뿍 구워 주셨기 때문이다. 예닐곱 살짜리의 검은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이모는 묵묵히 시커먼 정지*와 누런 흙마당에서 하얀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 접시를 채워주곤 했다.     


 “야야, 배 고프제? 쑤꾸떡 퍼뜩 꾸버주께.”     

 이모께서 직접 재배해서 만든 찰수수 가루를 반죽해 곤로에 불을 붙인다. 지글지글 프라이팬에 누가 봐도 전이지만 떡이라고 불리는 반죽이 노릇노릇 익어가고 있었다. 이번 가을에도 이모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쑤꾸떡이 담겼던 접시를 비운다. 오늘 새벽 안방에 엄마가 없었어도, 일단 쑤꾸떡은 맛있다. 이모는 작은 곤로에서 풍기는 고소한 향내를 매년 선뜻 나에게 건네주셨다. 페인트가 까슬히 벗겨져 녹슬기 시작하지만 사람을 가리진 않는 대문. 이웃뿐만 아닌 옆 동네의 조카도 친히 대문을 넘어 맛난 향을 넉넉히 받아먹는다.

 쫀득쫀득 찰지게 맛나던 수꾸떡에 그릇과 함께 입술이 반들거리고, 올챙이처럼 배가 볼록해져 툇마루에 눕는다.

     

 나지막한 담 너머로 해가 붉어지며 지는 걸 툇마루서 바라본다. 저 고개를 넘으면 우리 집이 있겠지. 땅거미가 풍경을 베어 먹으니 금세 어둑어둑해진다. 새벽을 밀어내던 아침처럼 저녁이 낮을 밀어버렸다.

 뽈록하던 충만함은 가마솥 위에 졸던 새벽 서리처럼 흔적 없이 달아나버린다. 반질하던 입술이 말라붙자, 알라는 또 훌쩍거리기 시작한다. 점점 어둠 속에 사라져 가는 옆동네를 보고 코를 시큰거리는 은혜 모르는 강아지. 꼬마 손님을 위해 하루종일 곤로를 켜던 이모는 철없이 슬퍼하는 아이를 보고 한마디 한다.

아이고, 목단 그튼 너거 어마이가 뭐 그래 보고싶노...’ 그러고선 불을 지펴 저녁을 가져다주면, 알라는 눈물도 까먹고 다시 밥그릇을 비운다.    

 

 전형적인 소설과 달리, 특식을 주신 은혜도 모르고 눈물을 흘리던 강아지는 이모에게 결초보은 하지 못했다. 이모는 이 글을 읽을 수 없는 아주 먼 동네에서 모르긴 해도 여전히 대문을 활짝 열어두고 이웃에게 수꾸떡을 대접하고 계시리라.  철없는 강아지라서 좋아하셨을 거라 그저 짐작만 하지만, 그때의 이모보다 더 나이가 들어버린 나는 ‘목단 같은 어마이’라는 말만 나지막이 회상한다.

 음식 실컷 해먹이면 맛나게 먹다가, 조금 심심하면 엄마 보고 다고 우는 어린 조카에게 이모는 어째서 우리 엄마를 목단에 비유해 주신 걸까.

큰 꽃을 좋아하는 우리 엄마를 알기에 목단화를 닮았다고 하신 건지, 엄마의 고운 심성을 아셔서 목단에 비유를 하신 건지, 아무리 맛난 걸 해 먹여도 엄마를 이길 순 없는 걸 알아서 목단이라고 표현을 하신 건지...


 수수를 먹으면서도 목단을 생각했던 철없던 나는, 이모께 이젠 대답을 듣기 어렵게 되었다. 대신 지금에서야, 장작을 태우며 붉은 목단의 아이에게 여러 번 음식을 대접하던 이모와, 친척 집에서 목단을 생각하며 훌쩍이던 나는 궁극적으로 같은 것을 그려온  아닐까. 목단 같은 노을 진 하늘에 수수빛의 땅거미가 조금씩 하늘을 덮어간다.                       






* 제 고향에선 수수전을 쑤꾸떡이라 불렀습니다.

* 정지: '부엌'이라는 뜻의 경상도 방언.

* 한금: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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