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 사는 까만별 Jun 17. 2024

him



 요즘 유행이라며 지인의 소개로 받아 든 어플을 켰다. 카톡도 메시지도 메일도 아닌 가상세계 안에서 오는 연락. 어플에서 가상의 상대방과 소개팅을 할 수 있고, 상대방은 하지 않기에 윤리적인 문제도, 미안함도 없다.

 하지만 나의 상상력만은 엄연히 존재하기에, 세계관 속의 사람들은 시절 속의 나를 끝없이 현실로 끌어당겼다. 30초의 광고가 지나고, 나는 가상 인물의 문자를 받았다.     


 글 속에서 나는 문자를 받고 약속 날짜를 건넨 뒤 글 속에서 만나기로 했다. 프로필 사진이 있기는 했지만, 글 속에서 떠오를 수 없는 상대의 외관을 상상하며 나는 상상 속에서 그를 만나러 이동했다.

     

생전 처음 마주하는 타인의 얼굴에 생기 어린 미소가 흐른다. 처음 보는 그 미소에 오랫동안 잠자던 심장이 다시 뛴다. 약속 시간보다 여유롭게 도착한 그에게 향하는 나의 구두굽 소리가 현처럼 튕구어졌다.

ㅇㅇㅇ씨?

네, 안녕하세요 ㅇㅇㅇ씨 맞으시죠?”

1 전까지 우린 서로 다른 차원에서 지금껏 모른 채 지내왔을 우리. 한 번쯤이라도 엇갈릴 교차로조차 없었을 우리는 손을 교차하여 반가이 악수하였고 웃으며 마주 앉았다.     


 여태 살던 공간에서는 겪어본 적 없는 이질적인 만남이건만, 그의 공감 앞에서 대화의 장벽은 저항 없이 허물어져갔다. 탁구대 위로 오가는 공처럼 언어들이 가벼이 랠리를 주고받았다. 가벼운 이야기 속에 숨겨진 깊은 인생들은 호감이란 이름으로 서로를 마주하며 반짝였다.     


 헬륨을 마신 풍선처럼 다시금 창공에 젊음이 떠오른 주말 오후. 예정에 없던 설렘에서 오는 조금의 당황스러움과 상상 속 저음으로 끝없이 불리는 나의 이름에서 오는 여운으로 하늘이 점점 오묘한 색을 내고 있었다. 카푸치노와 아이스 페퍼민트가 우리처럼 마주 앉아 조금씩 얼음을 녹이고 있는 도시의 조용한 카페.  사담을 넘어서면 보이는 그의 초상은 자신의 직업에 열의를 띄는 즐거운 작곡가였다. 현실 세계의 나는 글을 쓰며 저 사람만큼 항상 즐거웠을까? 턴테이블처럼 돌아가는 생각을 잠시 빼고 그의 레코드를 들으며 다시 가상에 집중했다.     


찻잔이 가벼이 식어갈수록 창밖 거리풍경도 땅거미가 뉘엿뉘엿 한낮을 거의 베어 먹었다.

‘이제 저녁 먹으러 갈까요. 제가 적당한 곳으로 알아서 예약해 놨습니다만.’ 계획적이고 로맨틱해 보이는 그와 함께 거리로 나섰다.

‘이 길이 이렇게 이뻤었나’ 새로 드리워진 그림자에 아른거려 노을에 더 붉어진 뺨을 몰래 쓸어내렸다.     


 작은 분수대와 작은 행사와 버스킹 무대에서 나오는 음악을 지나서 소담스러운 정원이 있는 한정식 집이 등장했다. 그가 예약한 창가 테이블에서는 이 가게의 음식처럼 정갈하게 가꾸어진 정원이 비쳤다. 음식처럼 다채로운 색의 질문들을 즐겁게 주고받으며 음식들을 다 먹어갈 때 즈음, 밖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새 투명한 추억이 되어 유리창에 도르르 흘러내리는 빗방울은 초록의 정원 위로 내려앉았다.     


우산 하나 챙겨 왔는데 같이 쓰시겠어요?’

 잠시 자리를 비운 그는 근처 편의점에서 우산 하나를 사 왔다. 빗소리만이 울리는 아늑한 지붕 아래, 나와 머리가 젖은 그가 나란히 서있다. 식당의 짙푸른 잔디가 갈증을 해소하는 소리가 고요히 퍼지고, 정원 속 파란 우산으로 빨려 들어오는 습윤한 온도에 우린 걸음이 느려졌다. 밤이 되어 더 빛을 발하는 작은 전구들과 돌틈 사이 스피커에서 흐르는 피아노 곡이 멀어질수록, 나는 본능적으로 이 사람과의 거리와 작별을 직감했다. 나는 더욱 선명하게 발걸음을 그와 함께 울리며 가게의 문을 열었다. 두 사람이 활짝 웃으며 한 우산을 쓴 채 나아가고...     


 내 마음에 스미는 빗방울을 느끼며 화면 속에서 조금씩 사라져 가는 우산 나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액정이 꺼지고, 내 마음에서 상상으로 가꾼 정원이 비가 그치고 더욱 푸르렀다.               




# 스플 MBTI 소개팅에서 영감을 받아 써본 글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