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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Jul 28. 2024

비가(悲歌)




왜 너는 하필 오늘 이런 좋은 곳에 예약을 한 거니...’

결심에 걸맞지 않은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나는 잠시 얼어붙었다. 연인의 이름을 대자 잔뼈가 굵어 보이는 중년의 웨이터가 나를 자리로 안내했다. 잔에 물이 채워지고 얼마 안 있어 그로부터 문자가 한 통 왔다.

나 조금 늦을 거 같아.’

뭐 이런 날조차 늦는대.  물 잔에 가득 맺힌 이슬이 툭 식탁보를 적셨다.     



 달그락달그락...

 아기자기한 그림이 새겨진 접시 위에 놓인 음식들을 포크와 나이프가 부드럽게 공격하며 공간에 어울리는 소리를 냈다. 옆 테이블과 달리 어떤 말도 없이 식사하는 우리를 대신하여 내는 시의적절한 소음이었다. 유리창 너머로 녹음 짙은 정원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풀은 새파란데 하늘이 어두운 게 흡사 우리를 닮았다. 우린 어쩌면 서로의 햇빛을 가리면서 서로를 가로막고 있을지도 몰라. 고기에 소스를 뿌리듯이 나는 툭 내뱉었다.     


우리 그만 헤어지자.”


  순도를 가늠키 힘든 허망한 언어가 허공 속에 흩어지더니 이내 찻잎 마냥 가라앉았다. 속을 알 수 없는 처연한 그의 표정이 웨이터가 밝혀놓은 촛불에 어른거렸다.     

 말 꺼내려고 오늘 예쁘게 하고 온 거니?”

 언어야말로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서 가장 공허할지도 모른다. 나를 향한 그의 칭찬과 기억들은 이 식사를 끝으로 사라질 것이다.     


 먹구름이 끼어든 테이블이 실외보다 더 습윤해질세라 창밖 빗방울도 굵어졌다. 장대비처럼 퍼붓는 유리창 너머로 우리의 실루엣이 겹쳐지다 더욱 일그러져 지면으로 떨어졌다. 뜨거운 물방울이 차디찬 유리창을 또르르 가르며 대지 위에 녹아버렸다.      


 달그락달그락...

 권태로운 평소와 달리 긴장에 의해 기압이 높아진 테이블 위로 식기에 수저가 경쾌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습윤함이 테이블 위로 찰박거리며 그들은 비교적 힘들었던 여태의 만남 중에서도 오늘 가장 힘든 수위를 버티고 있었다. 어느순간부터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행성에 내동댕이 쳐진 우리 두사람은 동시에 외롭다고 각자 생각을 해왔으니까...

 다른 행성에서 온 듯 멀고도 가까운 테이블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행복해 보였다. 내가 아닌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하는 버거운 경험을 지금 우리처럼 상처를 주고받으며 버텼기에 들은 웃을수 있는 걸까. 둥근 테이블에서 쏘아 올리는 침묵의 소리는 답 없이 물음만을 서걱서걱 썰어대었다.      



예전부터 한 번은 같이 오고 싶었어. 오늘이라도 맛있게 먹어.”     


 달그락달그락... 추적추적...

 생의 파편들과 맞물려 비도 합주를 시작한다. 한때 지극히 사랑했던 한 사람을 남으로 돌려보내는 마음도 추억이 되어 유리창에 녹아 흐른다. 이해와 오해의 바퀴로 굴러가는 불협화음이 오늘에 치닫고서야 가동을 멈춘다.     

 디저트까지 모든 서빙이 끝나자 그는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많이 야위였어. 다음엔 나보다 좋은 사람 만나.”

 그 말을 끝으로 그는 계산서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와장창창... 후두두두...

 옆 테이블에서 흐르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낙하하는 빗소리가 교차한다. 정원에 스며들던 빗줄기도 고온다습한 가능성들을 미련스레 바라보느라 유리창에 엉겨 붙는다. 가슴 저변의 자욱한 후회들이 뭉근히 데워져 저마다 물방울이 되어 어느새 텅빈 레스토랑을 정신없이 두드린다.        

       







#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다 영감 얻어 써본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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