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생활비가 보장되는 4개월 동안나는 무엇을 이루었을까
지난 10월부터 2월까지 나는 주거(전셋집)와 생활비(실업급여)가 보장되는 황금기를 보냈다.
황금기 동안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고, 이런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4개월이 지나 이러한 결과를 만들었다!
달성한 목표와 달성하지 못한 목표를 하나씩 살펴보자.
3개월 완성 디제잉 수업을 들었다. 루프나 효과음 같은 고급 기술은 못 배웠지만 CDJ와 믹서 다루는 법, 기본적인 비트매칭과 믹싱을 배웠다. 결과물도 만들 수 있어 더 뿌듯했는데 마지막 수업에 미니 믹스를 만들고 녹음해서 사운드 클라우드에 업로드해보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디제잉의 재미를 느끼기엔 충분하였고, 프로 디제이들이 쓰는 장비까진 아니더라도 집에서 취미용으로 할 수 있는 장비를 하나 구입할까 생각 중이다. 음악 편집 프로그램으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디제이 써니의 음악이 궁금하다면 사운드클라우드에서 한 번 들어보세요! 이제 누군가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자신 있게 디제잉이라고 대답해야지. 히히!
강아지 입양하기는 아니었지만, 임시 보호 + 입양 보내기에 성공했다. 소장님이 이사를 준비하시는 한 달 동안 임시 보호하는 것으로 다비를 집에 데려오게 되었는데, 다비가 우리 집에 한 달하고 2주 넘게 머물게 되었다. 그 새 정이 잔뜩 들어버린 다비를 차마 보호소에 보낼 수가 없어 입양처까지 찾게 되었고, 다행히 다비가 보호소에 들어가기 바로 직전에 다비를 입양하겠다고 하는 좋은 분들을 만나 다비를 입양 보내게 되었다.
다비를 보호소로 다시 보내야 했다면 나의 황금기는 찜찜함과 죄스러움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사실 다비 말고도 보호소에는 가족이 필요한 친구들이 너무 많아 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현실에 좌절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하나씩 해 나가야 한다. 유기견 보호소에 있는 다른 친구들을 돕는 일은 다음 스텝에서 계속 이어 나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타깃 업체는 많았지만, 리서치한 곳은 몇 곳 안되었고, 컨택한 곳은 VSCO 밖에 없었다. 시작은 창대하였지만 끝은 미약하게 끝나버린 이 프로젝트는 앞으로 계속해서 진행해보고 싶다. 조금 더 실력을 키워서 다시 도전해볼 것이다. 내가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자세한 사항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황금기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것! 브런치에 연재(?)한 주간 일기는 외롭고 막막한 백수 생활 속에서도 스스로를 다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성장 기록이 되었다. UX writing 시리즈는 UX writing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다양한 분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하고, 소통할 수 있는 브런치 글을 써보려고 한다.
사실 황금기를 시작할 무렵에 서핑 시즌이 거의 막바지여서 두 번 정도밖에 못 탔지만 어쨌든 서핑을 했으니 완료된 프로젝트로 생각하기로 했다.
친구와 크리스마스 카드를 디자인하고, 판매하였다. 남은 카드로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카드도 보낼 수 있어 즐거운 프로젝트였다. 굿즈 제작과 마케팅, 협업에 대한 여러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코로나 시국에 여행을 가는 것이 조금 조심스럽긴 했지만, 가고 싶었던 진천과 목포(와 순천)를 여행하는 데 성공하였다. 진천에서 귀여운 찰떡이도 만나고 목포에서 엄마의 회갑 파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다. 올해까지도 코로나는 쉬이 사라질 것 같지 않으니 국내 여행을 조금씩 다녀보면 어떨까 한다. 다음은 어디가 좋을까? 생각하고 있는 곳은 제주, 전주, 통영, 양양 등이 있다.
UX writer로 취업에 성공했다. 직무도 마음에 들었지만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조건들(규모가 작지 않은 스타트업, 글로벌 유저를 타깃으로 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곳)을 충족시켰기에 성공적인 이직이었다고 생각한다. 입사한 지 열흘도 채 안되어 아직은 어떤 회사이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가고 있는 단계이지만 아직까진 매우 만족스럽다. UX writer 도전기로 새로운 브런치 시리즈를 써보면 어떨까 생각 중이다.
실업자로서 나라의 녹을 꼬박꼬박 받아먹었습니다. 고용노동부 생큐~ 성실한 근로와 세납으로 보답하겠습니다.
UX writer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만드는 데 시간도 꽤 걸렸고, 현직 디자이너와 원어민 검수도 받았는데, 다시 보니 또 고쳐야 할 점이 많다. 당장 이직이나 취업을 생각하고 있지 않더라도 포트폴리오는 꾸준히 보완을 해두어야 할 것이다.
영어 공부는 "완료"라고 할 수 없는 거대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진행 중으로 남겨두었지만 황금기 동안 영어 공부도 열심히 했다. 영어 아티클 읽기와 영어 단어 공부도 매일 읽으려고 했고, 영작도 많이 했다. 영어는 앞으로도 꾸준히 해나가야 할 인생의 과업일 것이다.
UX 강의를 들어보려고 업체별 리서치를 해두었지만 결국 듣지 못했다. 대신 책이나 아티클을 읽으며 독학을 많이 했다. 업무가 손에 익어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 강의를 들어보려고 한다.
세상에 있는 모든 UX/UI 문구를 모아 볼 수 있는 라이브러리를 만들겠다던 나의 원대한 꿈은 시작도 하지 못했다. 여전히 매력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워낙 큰 프로젝트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 천천히 실행 방법을 연구해보아야겠다.
정기적으로 심리 상담을 받고 싶었으나 결국 한 번밖에 가지 못했다. 심리 상담을 하러 가면 내가 피해자가 된 것 같고, 어딘가 잘못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떨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가는 것 자체가 조금 드라마틱하게 느껴져서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새로 이사한 곳에는 심리 상담을 해주는 곳이 더 많으니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만날 수 있는 상담 선생님을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예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던 목수 선생님께 목공 수업을 받고 싶어 수업 상담을 위한 방문 연락까지 했는데 결국 하지 못한 목공. 언젠가 받고 말 거야..
황금기 동안 생각보다 많은 목표들을 달성하여 매우 뿌듯하다. (어깨 으쓱)
15개의 목표 중 영어 공부까지 포함하여 무려 11개의 목표를 달성하였으니 퍼센티지로 따져보면 황금기의 목표 달성률은 73.33%이다! 짝짝짝
여러 목표를 달성했던 황금기를 보내며 가장 뿌듯했던 것과 아쉬웠던 것을 꼽아 보자면,
황금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취업, 디제잉, 다비 임시보호이다.
취업은 황금기 동안 이룬 가장 큰 성과이고, 디제잉은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었던 즐거운 도전이었고, 다비 임시 보호를 통해 나는 다른 생명체와 함께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절대적인 사랑과 행복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에 따른 고통과 괴로움도 느꼈다.
이 세 가지 과제에 도전하며 나 자신을 그리고 내 삶을 조금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Localization Project가 조금 아쉽다. 나의 캐파를 고려하지 못하고 처음에 계획을 크게 세웠던 것도 문제이지만, 조금 더 많은 기업에 컨택을 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목공도 아쉽다. 목공 같은 취미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할 수 있는데 목공에 도전할 기회가 또 언제 생길지 모르겠다.
그 시작은 권고사직이었으나, 집과 생활비가 보장되는 황금기를 보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어 기뻤고, 그 끝이 코로나 시국에서 이뤄낸 취업이라 뿌듯하다. 우울증, 자기혐오, 좌절감, 무기력함과 싸워야 했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조금씩 달성하며 부정적인 감정 속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완전무결한 성공은 아니었지만, 황금기를 돌이켜보면, 내가 나를 성장시키고 나를 더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갑자기 생겨버린 커리어의 갭을 황금기라는 오그라드는 이름으로 칭하며, 황금기의 목표로 세웠던 것이 바로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이슬아 작가님은 <심신단련>이라는 책에서 이런 글을 썼다.
사랑을 하는 동안에는 나쁜 일이 자신을 온통 뒤덮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나쁜 일이 나쁜 일로 끝나지 않도록 애썼다. 우리가 모든 것으로부터 배우고 어떤 일에서든 고마운 점을 찾아내는 이들임을 기억했다. 사랑은 불행을 막지 못하지만 회복의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사랑은 마음에 탄력을 준다. 심신을 고무줄처럼 늘어나게도 하고 돌아오게 한다.
황금기 동안 내가 배운 것은 불가피한 불행과 고통 속에 나를 방치하지 않는 일이었다.
내가 좋은 일을 만들어낼 수 없는 상황일 때는, 언제 올지 모를 좋은 일을 맞이 하기 위해 준비를 해두는 것. 나쁜 일을 나쁜 일로 끝내지 않고, 그를 통해 성장하는 것, 불행에게 기꺼이 회복의 자리를 내어주는 것.
나는 이것을 배웠다는 것만으로 황금기의 목표를 충분히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황금기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을 두 손에 꼭 쥐고 나는 인생의 새로운 챕터로 힘차게 들어선다.
보잘것없지만 나의 황금기 기록을 지켜봐 준 분들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