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복학 전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나는 어학연수를 떠나기로 했다. 미국 혹은 캐나다로 가고 싶었으나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비용 때문에 공식적으로 일도 할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최소한의 아르바이트 경험과 일정 금액의 통장 잔고가 있어야 가능했고 모든 준비를 마친 후 호주 대사관에 비자 접수를 했다. 한 푼이라도 아끼고 싶은 마음에 가장 저렴한 학생 할인 항공권을 알아봤는데 가격이 싼 만큼 경유지를 거쳐야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비행기 타고 해외 가는 게 뭐 그리 어렵겠어?라는 생각으로 공항에 도착한 나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목적지는 호주 멜버른인데 99년 당시만 해도 IMF 이후 외화유출을 막기 위해 한국-호주 간 직항노선은 국적기 외에는 모두 폐쇄되어 일본에서 갈아탔어야만 했다. 김포공항에서 야심 차게 출발한 비행기는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사뿐히 내려앉았고 나는 호주행 비행기로 갈아타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공항은 열차를 타고 다른 터미널로 이동했어야 했는데 미처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김포공항만을 경험해 본 나는 구분되어 있는 커다란 터미널이 몇 개가 있는 공항의 구조가 너무 낯설었고 시간은 어느덧 밤 11시 즈음이어서 근무하는 직원도 거의 없었다. 아 이러다가 비행기를 놓치겠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둘러보던 중 너무나 낯익은 아시아나 승무복을 입은 여성분이 앞쪽으로 걸어가고 있어서 다가가며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제가 호주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런데 웬 걸 나를 돌아보았던 그 여승무원은 일본인이었고, 영어가 엄청 서툴렀다. 이를 어쩌나? 티켓을 보여주며 어디로 가야 할지 가까스로 알아들었을 무렵 파이널 콜(Final Call)이 공항 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놓치는 것도 걱정이었지만 그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대책이 없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미친 듯이 달렸다. 다행히도 이륙 전엔 탑승할 수 있었다.
처음 타보는 대형 항공기 안에서 두 끼를 먹고 도착한 곳은 최종 목적지가 아닌 호주 브리즈번이었다. 이곳에서 국내선으로 바로 갈아타는 줄 알았는데 입국 심사를 한 이후에 멜버른행 비행기에 올라야 한단다. 짧은 영어로 호주에 온 이유를 설명했다. 다음 비행기까지 시간이 남아있으니 여유를 가지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 그러나 나는 또 미친 듯이 달려야 했다. 이유는 호주의 서머타임 때문. 아니 그럼 갈아탈 시간을 확보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원망과 아무도 이런 내용에 대해 미리 알려주지 않은 서운함을 가득 안고 부리나케 뛰었다.
다행히 탑승. 비행기 안은 처음 맡아보는 낯선 냄새로 가득했고 배는 고팠지만 무언가 먹은 기억은 없다. 그렇게 도착한 멜버른 공항에서 백패커 하우스로 향했다. 정류소 외에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 한국 버스와 다르게 버스기사는 내 목적지 바로 앞에서 나를 내려주며 행운을 빌어줬다. 그렇게 나의 워킹홀리데이는 시작되었고 힘이 들 때마다 1년 오픈티켓을 꺼내며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음에 위안을 받았다.
멜버른에서 그리고 시드니에서 보낸 그 시간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날. 이제 어느 정도 영어도 되는 듯하고 돌아갈 때의 루트를 모두 안다는 착각에 처음 출국 시의 그 황당함은 겪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똑같은 길을 돌아 한국에 도착했는데 두 가지가 달랐다. 하나는 인천 공항으로 입국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거의 23시간 가까운 비행으로 결국 공항에서 코피가 터지고 말았다는 것.
그 이후 수도 없는 비행을 했지만 잃어버릴까 항상 짐가방 가장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던 항공권과 함께 했던 그때보다 더 선명히 남는 기억은 없다. 요즘 같아선 몇 번을 갈아타도 좋으니 어디라도 갈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