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스쳐 지나는 타인의 향기에 감흥하여 어떤 향수를 쓰냐고 묻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궁금해도 물어볼 수 없는 노릇이다. 그 향기가 향수 때문인지, 샴푸 혹은 바디로션인지, 섬유 유연제 때문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이기 때문인지 본인도 알지 못할 수 있으며 더 큰 이유는 다른 의도로 접근한다고 생각하여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뛰어난 외모의 이성에 끌려 번호를 물어보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지만 항상 나는 외모보다는 향기가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향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어릴 적 화장대 위에 놓였던 '샤넬 No.5'를 비롯한 다양한 향수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나는 그날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역삼동 개나리 아파트 5층 큰 고모댁 사촌 누나 방에 놓여있던 '디올의 듄'을 무심코 살짝 뿌려보았던 나는, 직후의 강렬함과 시간이 지나며 변해가는 그 향기가 너무나 신기하고 신선했다. 이후 백화점과 향수가게를 지날 때면 럭셔리 브랜드의 새로운 향수병 디자인과 그 향기가 궁금해 시향 하러 가곤 했고 누군가에게 선물해야 할 일이 있으면 큰 고민 없이 향수를 골랐다.
또 하나 잊지 못할 후각과 관련된 일화는 고등학교 화학 시간이었다. 수업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분자의 확산에 대한 내용이었을 텐데 선생님의 설명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분자가 공기 중에 확산하여 콧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이때 냄새를 인지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하필 발냄새를 예로 들며 역겨운 냄새를 만드는 분자가 공기 속을 날아가서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며 선생님은 굉장히 찝찝해했다. 아니 하고많은 사례 중에 굳이 발냄새를 예를 들어 설명할 필요가 있었을까? 아직도 그때 그 수업 시간의 선생님 모습과 분위기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후 향기와 냄새는 다른 감각과는 달리 나와 타인 혹은 물건과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보이진 않지만 누군가의 몸에서 날아와 나에게 직접 닿는 시각, 청각과는 다른 감각. 단아하고 깔끔한 원피스에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당한 높이의 구두를 신은 출근길의 여성이 내 옆을 스쳐갈 때 그리 강렬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향기가 느껴질 때면 누군지도 모르는 그 사람의 삶이 궁금해진다. 꼭 이성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어느 날 비좁은 엘리베이터에서 키가 크고 잘생긴 젊은 남성 옆에 서게 되었는데 그가 입고 있던 코트에서 세련되고 은은한 향기가 코끝에 닿았다. 무언가 사무적인 물건과 서류를 들고 있던 여성과 이야기 중이었던 걸로 보아 아이돌로 추정되었는데 그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왠지 잘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향수는 본연의 향기와 사람의 체취가 어우러져 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향수보다는 다른 요인이 매력에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체감하며 향수에 대한 관점은 달라졌다. 유행하는 값비싼 니치 향수를 뿌렸다 해도 함께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었으며 땀범벅이 되어있어도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다는 진실이 향수에 대한 나의 시각을 바꾸었다. 탑 노트가 시선을 끌어도 미들 노트와 베이스 노트로 이어지는 모든 어울림이 조화롭지 못하면 훌륭한 향수가 되기 어렵듯이 인간적인 매력이 없는 이들의 과장된 향수 사용은 미들과 베이스가 없는 탑 노트처럼 허무했다.
처음 만남에는 유머감각으로 사람을 끌어당기고 시간이 지날수록 진실됨이 느껴지며 볼수록 신뢰감을 주는 사람의 대표적인 매력이 무엇이라 콕 집어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어떤 원료로 만들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계속 함께하고 싶은 향수와 닮았다. 나는 어떤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매력적인 향수를 만날 때마다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