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곁에 있는, 늘 나의 시선을 채워주던 모든 것들은
언제까지나 그렇게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내가 지금 착각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제는 그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
언제 가는 빈자리가 생긴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그런 경험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다면 마음 아픈 일도 슬픈 이별의 순간도 조금 덜 느끼고,
덜 슬퍼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아내는 언제나 밝고 건강한 사람이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고 미소를 띠며 밝은 모습으로 사람을 대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아내를 좋아한다. 나 또한 그랬던 것 같다.
나와는 다른 그 모습 때문에. 나의 아픔을, 나의 두려움을, 나의 상처를, 나의 불안을 잊게 해 주는
그 미소가 참 좋았다. 그리고 난 오랜 시간 그 미소에 기대어 살아왔다.
힘들 때도 지칠 때도 괴로울 때에도. 그냥 그렇게 미소로 내게 힘이 되어 주었다.
어린 시절부터 복잡하고 외로운 삶을 살았던 나는 항상 감정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감정의 표현도 서툴렀다.
웃음에 야박했고 슬픔과 두려움은 내게는 다른 사람의 두배로 느껴졌다.
당연히 집안 분위기 또한 그랬다.
항상 힘들게 일하시는 어머니와
가정 외의 일에만 본인의 쾌락에만 집중하신 아버지,
그로 인해 소원해진 두 분의 관계 그 속에서
내가 웃음을 찾고 밝은 생각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머니를 위해서 못하는 공부를 하고, 집을 뛰쳐나가지 않았을 뿐 더 이상은 감당하기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난 항상 꿈꿔왔다.
내가 이루는 가정은 엄마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맞이하고
가족을 위해서 맛있는 음식을 하고 그렇게 옹기종기 사소한 삶의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나의 꿈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목표만 있을 뿐이었다.
가장 중요한 긍정적 사고, 밝은 미소가 없었다.
나의 아내는 나의 그런 부족을 채워 주기에 좋은 조건을 갖고 있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자라왔고 큰 어려움 없이 유소년,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리고 그렇게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어렵진 않을 만큼의 경제적 여유도 있었고
학창생활 직장생활도 특유의 밝은 미소와 여유로 잘해 나갔다.
그렇게 나와 함께한 지 언 20년이 다 되어간다.
결혼식 이후의 삶이 벌써 20년이다. 25년 이상을, 인생의 반이 넘는 시간을 함께해 왔다.
그리고 아내는 그 시간 동안 나에게 항상 빈자리를 채워 주었고
언제까지나 항상 그렇게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으며
그 착각을 깨닫지 못하게 만들어 주었다. 몇 년 전부터 아내는 아프다고 했다.
배가 아프다고 하기도 머리가 아프다고 하기도 했다.
난 나의 건강에 그리 자신이 없었기에 그리고 나만 괜찮으면 모두가 걱정이 없을 거라는 자책에 여유를 갖지 못하고 살았다.
아내는 이겨 낼 것이라는 확신만 있었다. 워낙 건강한 사람이니까.
밝은 사람이니까. 긍정적인 사람이니까. 아내의 주름진 얼굴과 옅어진 미소 그리고 지친 모습을 볼 때면
두려움이 앞선다. 누가 삶을 더 먼저 끝내느냐는 것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항상 밝고 건강하고 여유가 넘치던 저 사람이 점점 그 모습을 잃어간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지켜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것이 자식의 문제이든 경제적이든, 가정의 문제이든 모두 해결해서 다시금 그 모습을 찾게 해주고 싶지만 그 또한 쉽지 않다는 것.
언젠가는 다시 여유를 찾아 그 모습으로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고.
내가 느끼는 빈자리는 더 이상 없길 바란다.
이 글은 이란성 쌍둥이 아이(장애인)를 키우며 살아가는 기록의 일부입니다.
연재중입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If Only I Wer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