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

by 김승태

분에 넘치다. 분수에 맞게.

한자로는 侈濫, 濫濫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분수에 맞게 분에 넘치지 않게 사는 방법이 무엇일까.

분이 라는 그 기준은 누가 정해 주는 것일까.

그리고 그분은 현재형일까 미래형일까 아님 과거형일까.

모호하다. 그리고 어렵다. 과연 그것이 어떤 것인지.

난 때로 분에 넘치는 삶을 살았다. 아니 그러려고 애썼다.

지금 갖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갖기를 원했다. 부족한 것 같으면 더 채우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애쓰며 살아왔다.

열심히 살고 그 목표를 위해서 노력하면 그것을 얻을 수 있었고

그렇게 되고 난 후에는 나의 '분' 곧 기준이 올라가는 듯했다.

그럴 때면 항상 생각했다.

과연 분수에 맞게 사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현실을 체념하고 사는 것인지,

욕심을 버리고 사는 것인지, 적당히 사는 것인지. 뉘앙스가 부정적일 수 있기는

하지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조금 더 넓은 집, 좋은 차, 멀고 비싼 여행지, 고급 물건 등을

얻으려면 분에 넘칠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때로는 와르르 무너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운 좋게 쉽게 얻어지는 것들도 있었다.

생각보다. 그리고 그 '분' 기준을 많이 끌어올려야 할 때는

정말 큰 결심과 철저한 분석과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과거의 난 그러한 것들과 수많은 싸움을 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내 안에서 혁명을 일으켜야 했고 개벽을 해야 했다.

안주하고 머무르는 삶은 나의 분수를 올려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적당히 분에 넘치는 경제적 독립을 하고 싶었고, 분에 넘치는 행복을 얻고 싶었고,

사랑을 받고 싶었고 분에 넘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것이 내 삶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나이에 맞게, 분수에 맞게 사는 것은 무엇일까.

이제 지금의 것들에 대해 만족하고 살아야 하나.

욕심이 때로는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데.

바람이 때로는 큰 힘이 되기도 했는데.

분수에 맞게 사는 것은 편할까?


이 글은 이란성 쌍둥이 아이(장애인)를 키우며 살아가는 기록의 일부입니다.

연재중입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If Only I Wer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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