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표

by 김승태

어디로 가고 있니?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지금 너의 길은 어디를 향학 있니?

네가 원하는 그곳은 어디니?

아빠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가 너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대답해 줄 수 있겠니.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

우리 아들은 지금의 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리고 아빠가 너였던 때를 생각해 봤어. 그땐 난 어떤 길을 가고 있었는지.

혼돈(混沌)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가 아닐까.

내가 가고 있는 길의 끝에 뭐가 있는지, 수 갈래의 길 중에 어떤 길이 나의 길인지.

지금이 길은 나의 길이 맞는지.

그 누구도 답을 줄 수 없었고 설령 누가 답을 준다고 한들 아빠도 믿지 못했어.

그렇게 아빠는 이제 나이 50이 넘었어. 그런데 말이야 아들아.

아직도 아빠의 길은 끝나지 않았어. 이 길의 끝이 아직도 희미해.

그리고 이 길이 최선인지도 모르겠고.

아마도 인생을 마무리하는 그때까지도 의문으로 남을지도 모르겠어.

아빠가 네 나이였던 때, 할아버지는 가족의 일에 관심이 별로 없으셨어.

그 가족이라고 해봐야 할머니와 아빠 둘이었지만.


나의 아버지는 내가 가는 길에 크게 관심이 없었고 그 길이 어떤 길이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 가르쳐 주시지도 않았고 그 길에 대한 대화조차도 없었어. 그 시절 아버지들은 대략 그랬었지.

그런데 할머니는 달랐어. 아빠의 길을 묵묵히 지켜보셨어. 어떻게 나아가는지를...

그런데 단 한 번도 그 길을 가는 중에는 아빠에게 길에 대해 얘기한 적은 없으셨어.

다만 헤매며 절망할 때 혹은 돌아갈 길을 잃었을 때는 조용히 이정표가 되어 주셨어.

사실 아빠는 할아버지의 가정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해서 실패가 가장 두려운 사람이었어. 실패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었지.


아들도 아마도 이런 아빠의 못난 모습조차도 닮지 않았나 싶어.

그래서 미안하고.

할머니는 등을 토닥여 주시며 아빠에게 뒤를 돌아 보이는 지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하셨어.

그게 젊음이고 누구나 다 그렇게 하는 거라고.

엄마가(할머니)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늘 그렇게 하셨어.

아빠는 너희들에게 할머니의 가르침 그대로 너희의 길을 응원하고 싶어.

너희의 이정표가 되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길을 잃는 것에 대한 실망과 좌절을 좋은 경험으로 생각하게 해주고 싶어.

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미술을 시작할 거고 예중에 간다고 했을 때 가족 모두가 놀랐어.

그 놀람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부분 미술 하면 돈이 많이 드는데,

먹고살기 힘든 데와 같은 현실적인 생각들이었어.

엄마와 아빠도 그랬지 처음에는.

그런데 네가 겨우 10살 밖에 안된 네가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게 너무 기특했어.

그래서 입시학원을 다닌다고 하는 너를 이해했고 미술을 시작했지.

중3이 되던 해를 기억할 거야. 갑자기 미술을 그만두겠다고 네가 말했지.

솔직히 엄마 아빠는 두려웠어. 그동안의 시간과 경제적 손실을 감당할 만큼의 여유가 없었거든.

동생은 많이 아픈 때이기도 했고. 그런데 네가 일반계 고등학교에 가는 것은 아빠는 반대였어.

네가 너무 불행할 거 같았어. 대화도 안되고 취미 공유도 어려울 거라 생각했어.

그래서 너를 예고에는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지.

그쯤 너는 책을 좋아하고 있었고 아빠랑 가끔 니체나 칸트에 대해서 조금씩 얘기할 만큼 아니 아빠보다도 더 많이 서양철학에 관심이 있었지.

예고의 많은 전문 학과들 중에서 문예창작과에 대해서 너와 얘기를 나누었지.

너도 깊이 생각했고 아빠 엄마도 더 깊이깊이 생각했어.

그래서 입시 3개월을 앞두고 준비를 시작했었지. 지금의 예고 3학년이 된 네가 있고. 아빠는 네가 자랑스러워.

고 1이 되던 때부터 너는 영화에 관심이 많았어. 아빠가 사실 네가 어렸을 때 같이 극장에 자주 갔었지.

그때는 아빠가 편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너와의 영화관 데이트는 항상 행복했어.

그런데 네가 영화에 심취하기 시작하더라고. 그리고 앞으로 영화 쪽 일을 하고 싶다고.

거장들의 영화에 대해 같이 이야기 나누고 대화를 했지.

이제는 아빠가 가진 관련 지식이 부족하게 느껴질 만큼 너는 그렇게 마니아가 되었어.

그런 너는 항상 행복하고 그렇게 보여.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아빠는 너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네 얘기를 들어준 거 말고는 모두 너의 선택이었고 네가 만들어가는 길이었어. 앞으로도 만들어갈 길이기도 하고. 네가 미술을 시작할 때, 예고를 가고자 할 때. 영화를 하고 싶다고 할 때도 아빠와 엄마는 몇 걸음 되돌아온 너를 때 뜻하게 안아줬을 뿐이야.

할머니가 그랬던 거처럼. 그렇게 이정표가 되었을 뿐이지.

네가 만든, 만들 모든 길은 너와 함께할 길이고 그 길에는 앞뒤가 섞인 발자국들이 많이 있을 거야.

눈물도 슬픔도 설움도 그리움도... 그게 너의 길이야. 네가 만든. 오롯이 너의 길.

네게 자라서 부모가 된다면 아빠보다도 더 멋진 이정표가 되길 바라.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 보자. 우리의 길대로.

매일매일이 너와 함께라서 고마워 아들아. 사랑해.


이 글은 이란성 쌍둥이 아이(장애인)를 키우며 살아가는 기록의 일부입니다.

연재중입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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