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을 쓸 줄 모른다. 브런치에 글을 조금씩 올릴 수 있는 자격이 운 좋게 생겨서
몇 편의 글을 올리고 있지만 나의 글은 부끄럽다.
솔직히는 자랑스럽지는 못하다.
나의 글을 읽고서 응원 차원에서 많은 분들이 라이킷을 눌러 주시고
때로는 댓글로 작가님이라는 호칭을 달아 주시지만 이는 정말 내게 어울리지도 않고
자격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의 글은 시시하다. 솔직히는 어린아이 수준이다.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짧은 소견이나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
아이가 커가면서 생각했으면 좋을 만한 것들,
그리고 말로는 할 수 없는 약간의 무게감 있는 속마음을 글로 표현한다.
언젠가는 아이들이 나의 글을 가슴으로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여행을 다니면서, 길 위해서 찾은 것들에 대해서 쓰기도 한다.
나는 여행작가도 아니고 철학자도 아니다. 그냥 여행하는 동안에 떠오르는 감정들과
아이들, 가족들에 대한 생각을 적는다.
이를테면 지금 내가 서 있고 바라보는 풍경이 나의 아들이 같은 곳,
같은 자리에 서서 바라보는 풍경이 되기를 바라고,
또 많은 생각을 하기를 하는 바람으로,
걸으며 배운 인생을 아이들도 느끼기를 바라며.
그런데 당신의 글은 다르다. 나의 글들과는 다르다.
수준 높고 구체적이며 정교하고 이야기의 형식과 내용 그 조합이 나와는 하늘과 땅 차이이다.
플랫폼이라는 형식이 아니었다면 어찌 겸상을 할 수 있었을까.
당신의 글에는 힘이 있고 희로애락이 있고 한 번쯤은 다시 생각해 볼만한 여지가 있다.
당신을 글을 읽고 있노라면 난 더 작아지고 부끄러워지며 낯 뜨거워진다.
비슷한 이유로 나는 모든 책을 사서 읽는다.
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책을.
흔히들 소설책을 빌려 읽어도 되지 않냐고 이야기하지만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게 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만화책도 나는 꼭 사서 읽는다.
내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모든 책에는 작가의 인생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작가의 인생을 약간의 금전으로 잠깐 빌린다고 생각한다.
한 자 한 자, 단어들 마다 고심해야 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썼다 지웠다를 수천번은 반복해야지만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지 못한 만족스럽지 못한 책들도 있지 그건 나의 취향이나 수준이 떨어지는 문제이지
작가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아들은 예고 3학년이다.
중3 초반까지 미술을 전공하고자 준비하다가 입시 몇 달 남지 않은 상황에서
문예창작을 선택하여 문창과에 다니게 되었다.
물론 운 좋게 합격을 했기 때문에.
지금 고3인 나의 아들은 고1 겨울방학부터 영화와 시나리오 다큐멘터리 등에 무한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여느 집 고3 수험생을 둔 가정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매주 아들은 영화를 보고 와이프와 나는 아이에 이끌려 가끔씩 예술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보러 다닌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이제는 우리도 조금은 익숙해져 뻔한 스토리의 영화는 시시해져 버렸다.
나의 글은 부끄럽다.
당신의 글을 보면.
그런데 아들의 글은 나의 글이 아닌 당신의 글이고 싶다.
당신처럼 고뇌하고 심사숙고하여 글을 쓰고 빛나는 단어와 낱말을 조합하여 멋진 글을 쓰기를 바란다.
나의 글이 부끄러워지는 만큼 아들의 글은 더욱 빛나기를 바란다.
아들이 나의 글을 부끄러워하기를 바란다.
이 글은 이란성 쌍둥이 아이(장애인)를 키우며 살아가는 기록의 일부입니다.
연재중입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If Only I Wer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