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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정 Apr 26. 2021

/ 산청, 남해


동산 스님이 설법하려고 할 때, 운문 스님이 물었다.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나 왔는가?”

동산은 “사도査渡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어서 운문 스님이 “여름에 어디에 있었는가?”라고 묻자,

동산은 “호남의 보자사報慈寺에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바로 운문스님이 “언제 그곳을 떠났는가?”라고 묻자,

동산은 “8월 25일에 떠났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운문스님이 말했다.


“세 차례 후려쳐야겠지만 너를 용서하마.” 



『무문관』 15칙 ‘동산삼돈’ 중에서

(강신주,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120쪽 재인용)

     

         

앵강만(남해) / 사진 이호정



 # 여행은 책으로부터

 책을 읽는 일과 여행을 하는 일은 어쩐지 닮은 데가 있는 것 같다. 둘 사이의 연관성을 짚어보면, 그것이 무엇보다 취향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 우리가 무엇을 읽을지, 또 어디를 갈지 고민하는 것은 목적과 방향을 정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그 둘이 방대한 세계를 지녔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책과 여행은 체계적으로 헤매든, 그냥 헤매든 그것을 결정하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에겐 그 헤맴에 대한 어떤 의무도 책임도 없지만 기꺼이 그것을 감수한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고, 여행을 하는 것이 우리 삶의 어떤 부분을 놀라울 만큼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의 여행이 언제나 책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지 않을까.

     

 여름도 다 지날 무렵 강신주의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를 읽었다. 이 책은 무문 혜개스님(1183-1260)이 선불교의 오랜 화두들을 48개로 정리하여 펴낸『무문관(無門關)』이란 화두집에 대해 저자의 대답이자, 해설을 담은 것이다. 참선과 깨달음을 중시한 선불교 선사들의 ‘다양한 삶의 스타일이 묻어나는’ 그 한편 한편이 놀랍기도 했지만, 때론 아이들 말장난처럼 가볍게, 때론 바위처럼 무거운 심정이 되어 근간 이렇게 열심히 읽은 책이 있었나 싶을 만큼 몰입하던 중에, 여행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동산삼돈(洞山三頓)”의 이야기에 깊게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도대체 동산 스님은 무엇을 잘못했기에 세 차례나 용서를 받아야만 했을까.

         

    

산천재(산청)  /  사진 이호정



 # 산청에서 남해로, 그리고 다시 산청으로

 늦가을이 되면 마치 할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 듯 지리산 언저리로 여행을 가는 것이 몇 해는 되었다. 어떤 해는 구례로, 어떤 해는 산청으로, 또 어떤 해는 남원으로... 올해는 지리산의 남동쪽 내원야영장에 잠잘 곳을 마련하여 오랜만에 산청으로 내달린다. 뒷덜미가 제법 뻐근해질 즈음 단성IC를 빠져나오니 덕산이다. 덕산은 이 고장에서 유명한 곶감산지라는데, 단풍도 다 져서 온통 브라운 일색인 가운데 집집마다 선명한 주홍빛 곶감들이 굴비 엮이듯 매달려 건조한 가을대기에 말려지고 있다. 샛노란 은행잎이 수북이 쌓인 남명기념관과 산천재, 덕산시장을 뒤로 하고 내원사로 향한다. 만추를 지난 차창 밖 풍경은 누가 지리산이 품은 마을 아니랄까봐, 이 산의 근처에 왔다는 기분을 확실하게 느끼게 해준다. 산은 눈에 띄게 높고, 물은 멀리서 봐도 맑다.

     

 내원야영장에 짐을 풀고 정리를 마치자마자 낮부터 심상치 않던 먹구름이 작정이라도 한 듯 비를 뿌린다. 그렇게 시작된 비가 2박 3일간 쉼 없이 계속되지 않았더라면, 이번 여행은 지리산둘레길 중 덕산구간을 천천히 걸으며 주변 유적지 몇 군데를 답사하고, 늦가을의 산과 들, 시골마을의 정취에 한껏 빠져보는 것이었다. “어차피 할일도 없는데 드라이브 가서 바다나 보고 오자!” 사실 비 오는 야영장에서 할 일은 없다. 애꿎은 장작만 피워대다 잔뜩 탄내가 배인 채로 내비게이션에 몸을 맡겨 본다. 남해의 남쪽 끝까지 두어 시간, 거리는 백여 킬로. 비는 줄기차게 쏟아진다.


 사천공항을 지나 삼천포에 다다를 무렵 어슴푸레한 잿빛 바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창선도와 남해군을 잇는 창선교를 지나면서 그 잿빛 바다 위로 부채모양으로 삐쭉삐쭉 솟은 죽방이 군데군데 보이고 나서야 이곳이 죽방멸치의 고장, 남해임을 실감한다. 역시 섬은 배로 가야지 섬인 모양이다. 다행이 비는 조금씩 잦아들고, 앵강만이 내려다보이는 어느 식당에 들어가 이 고장의 음식인 멸치쌈밥과 멸치회무침을 맛본다. 이것이 거센 물살을 헤치며 죽방에서 상처 하나 없이 잡힌다는 싱싱한 멸치 때문인지, 아니면 손맛 좋으신 아주머니의 양념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정신이 퍼뜩 나고 피로가 싹 달아나는 대단한 맛이다. 




석방렴(남해)  /  사진 이호정



 다랭이마을로 가는 길은 점점 더 구부러지며 고도를 높여간다. 평상시 바다는 거대한 그릇에 찰랑찰랑 담겨있다는 인상을 받곤 하지만, 이 남쪽의 바다는 드센 지형과 궂은 날씨에 거세게 일렁이며 사납기 그지없다. 이곳에 죽방이나 석방렴처럼 그 거친 물살에 떠밀려온 것들을 가두어 잡는 원시어업이 성행한 것도 다 이유가 있는가 보다. 다랭이마을에 도착하니 바람에 몸을 가누기도 힘들다. 마을을 병풍처럼 에워싼 기암 아래로 잡풀이 무성한 층층의 논, 비탈을 따라 잔뜩 움츠린 지붕들이 이 엄청난 바람을 견뎌내고 있다. 이건 좀 아니다 싶을 만큼 경사진 비탈길을 이곳 할매들은 어떻게 다니실까. 해안까지 내려가 태평양 바다에 손이라도 한번 담가보고 싶지만, 인정사정없이 부는 바람에 겁이 나서 언제일지 모를 다음을 기약하며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간다. 


 마지막 날 비가 그쳤다. 어제의 피로가 채 풀리지 않은 채 주섬주섬 야영장의 짐을 챙긴다. 덕산으로 나와 은행잎이 차분히 내려앉은 남명기념관과 그가 후학을 기르며 말년을 보냈다는 산천재를 둘러본다. 가을이 늦어서 이리 쓸쓸한가. 산천재 앞마당에 방울소리 대신 묵은 낙엽만 어수선하다. 덕천서원을 지나 지리산의 대표적인 산행기점인 중산리에서 지리산효소음식으로 배를 채운 후,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갈 수 없다며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남사예담촌과 단속사터의 동탑과 서탑, 그리고 수령이 600년이 넘었다는 ‘정당매’를 보기 위해 다시 차를 돌린다. 그렇게 덕산(산청)에서 남해로, 다시 산청으로 늦은 가을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한밤중이다.



 

남사마을 돌담길(산청)  /  사진 이호정  



 진짜 여행

 우리의 여행은 언제나 책으로부터 시작되고 끝이 난다. 책은 끊임없이 여행을 부추긴다. 길을 잃고 싶지 않다면 얼른 목적과 방향을 정하라며 기꺼이 페이지를 내어준다. 그래서 여행은 책을 쓴 누군가의 경험을 나누어가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떻게 그 안전한 이정표를 내려놓고 헤맬 수 있겠는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어디론가 가고 싶어 하는 우리의 친구 '니코스'처럼 무작정 길거리에 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록 현실은 누군가의 경험이 오롯이 나의 경험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 해도... 진짜 여행은 그마저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위로하며, 더 많은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우리는 분명 헤매고 있었다. 여기가 앵강만인 것 같다, 모르겠다, 저쪽이 앵강만 아닌가, 아까 지나온 데가 금산이다, 아니다, 분명히 이쪽으로 왔는데 어떻게 금산이냐, 그 카페가 독일인마을 입구가 맞다, 아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급기야 우리가 남해대교를 넘어온 것 아니냐는 말에, 아니, 삼천포 이정표를 보고 왔는데 삼천포대교지 어떻게 남해대교일 수 있느냐 하며 결국 스마트폰을 꺼내 길 찾기를 하니 남해의 들쭉날쭉한 지형 탓도 탓이지만, 기껏 니코스가 되자며 남해까지 와서는 이게 뭐하는 짓인지 멋쩍은 웃음으로 때우고 만다. 

 우리의 여행은 목적과 방향을 원한다. 우리는 기꺼이 헤매지만, 그것은 분명한 목적과 방향 그 사이에서일 뿐이다. 잿빛 바다를 뒤로 하고 내비게이션의 목적지 설정을 누른다. 이런 나를 운문 스님이 보았다면 동산 스님에게 그랬듯이 차마 후려치지는 못하고, 혀를 끌끌 찼을 것이다.

     

     

동산은 다음 날 다시 운문 스님의 처소로 올라와 물었다. 

“어저께 스님께서는 세 차례 몽둥이질을 용서하셨지만, 

저는 제 잘못이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운문 스님이 말했다. 

“이 밥통아! 강서로 그리고 호남으로 그런 식으로 돌아다녔던 것이냐!” 

이 대목에서 동산은 크게 깨달았다.  




// 마침     


단속사지 동탑과 서탑(산청)  /  사진 이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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