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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정 Apr 24. 2021

/ 부여


그렇다면 과거의 파토스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내게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야. 이미 지나간 것으로서의 과거 말이지. 

경의를 표하고, 격찬하고, 중시하는 것은 그것이 이미 지나간 것이기 때문이야. 

그걸 요즘 유행하는 식으로 갱신해서 현대적인 것과 관계가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해. 

내가 뭘 이야기하고 싶은지 알겠나? 

역사에는 무자비한 측면이 있어서 인간의 경험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지. 

어떤 것들은 결코 돌이킬 수 없어. 그것은 과거에 속한 것이니.


- 오에 겐자부로, 『읽는 인간』, 52쪽, ‘바렌보임과 사이드의 대화’ 중에서



부여 능산리 고분군  /  사진 이호정



 # 지나간 것

 인터넷서점을 기웃거리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이라는 부제가 달린 『읽는 인간』을 주문하고 말았다. 이런 종류의 책이라면 어쩔 수 없이 사서 읽고 싶어지는 게 나란 사람이라, 그가 누군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설이 무엇인지, 한번 찾아볼 생각도 못한 채 생면부지 노작가의 독서인생을 엿보게 되었다.


 그는 지휘자 바렌보임과 세계적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의 대화를 인용하면서 ‘과거와 지나간 것,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한 깊은 고찰에 감동을 받았다’고 말한다. 우리가 ‘예술을 통해 (또는 다른 무언가를 통해) 시공을 초월하고 상실은 상대화하여 살아남고자 하지만, 동시에 이미 지나간 것을 회복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무겁게 인식하고 있다’면서 이 노작가는 끝나가는 자신의 시대를 담담히 받아들인다. 


 글쎄, 그 담담함이 너무도 담담해서 특유의 ‘しょうが無い(어쩔 수 없다)’인 건지, 과거, 지나간 것을 거기에 그대로 두려고만 하는 게 그들의 방식인 건지 잘은 모르겠다. 그러나 역사는 놀랄만치 비슷한 형태로 되풀이되고, 그 지나간 것들을 되새김하려는 자세는 우리의 현재를(때론 미래까지) 대체로 옳은 방향으로 수정해 왔다. 그 노력이 때론 마뜩잖게 여겨지는 경우도 있겠으나, 여하튼 노작가가 지나간 것들에 건네는 작별 인사를 인상 깊게 읽어 내리며 문득 한 도시를 떠올린다. 


 부여, 과연 그곳에도 ‘과거의 파토스’가 존재하는 걸까.

     

     

능산리 고분군   /  사진 이호정




 # 잊어버린 백제, 되살아난 부여

 준비랄 것도 없다. 차 안에『답사여행의 길잡이 4-충남 편』을 꺼내놓고 이제 가을을 코 앞에 두고 변해가는 창밖 풍경과 책을 번갈아 살피며 ‘그렇지, 능산리 고분군 먼저 갔다가, 국립부여박물관에 가고, 그 다음에 백마강 유람선 타고, 낙화암 보고나서, 오호, 관북리 유적지랑 정림사지가 다 거기서 거기네. 앗 궁남지도 있지!’ 그러고 있다. 그러고 보니 백마강으로 둘러싸인 부여의 시가지는 갓난아기 머리통처럼 자그마한 게 발길 가는대로 움직여도 될 터였다. (참고로 이것은 당일여행이었다.)


 서논산 IC를 빠져나올 무렵엔 짙게 깔린 구름이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강원도 두메산골도 아니요, 경북 오지의 산도 아닌, 딱 충청도 어드메 산들로 연이은 국도변 풍경은 고만고만한 것이 오붓하기도 하고, 마침 내리기 시작한 빗방울에 세수라도 한듯 단정하기도 하다. 능산리 고분군 입구에는 세계문화유산 등재기념으로 무료입장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부여에 다녀와서 안 일이지만, 지난 7월 공주, 부여, 익산에 있는 백제 관련 유적지가 우리나라에서 12번째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부여에는 능산리고분군과 함께 관북리 유적(부소산성), 정림사지, 부여나성 4곳이다. 시가지 곳곳에는 이를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있고, 그래서일까 늘 조용했을 것만 같은 이 도시에서 시골잔칫집 같은 흥겨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백제’하면 예전 국사교과서에도 그렇게 배웠고, 답사책에서도 그랬고, 어쩐지 역사적으로 많이 당하고, 잃어버리고, 스러진 것들을 자동반사적으로 떠올리다 보니, 동네잔칫집 같은 명랑한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방문하는 유적지(특히 세계유산으로 등재된)나 관광지는 어디나 너른 잔디가 말끔하게 깔려있고, 플랜카드가 나부끼고, 둔치에서 바라본 백마강의 풍경은 주변에 가리는 게 없으니 자못 시원하다. 구드래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백마의 말갈기처럼 휘날리는 깃발 아래서 부소산 낙화암을 둘러보다가 저곳에서 쳐들어온 적들을 피해 삼천궁녀가 떨어져 죽었다고 말해주니 우리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진다. 


 우리에게 역사란 무엇일까. 낙화암 바위에 묻은 붉은 흔적이 삼천궁녀가 흘린 핏자국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룻배 안에서 오래된 확성기로 이것을 애절하게 이야기해주시던 할아버지 선장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 이것도 역사인 걸까. 오래전 읽었던 책을 뒤적여본다.



 한국사람도 대다수 한국역사를 모른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모르는 한국인들일지라도 한국의 역사를 생각할 때 몇 가지 막연한 사실(史實)체계들이 그들의 삶에 어떤 의미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몇 대조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다든가, 어떤 왕조가 어떤 상황에서 찬란한 전승을 거두었다든가, 낙랑공주가 호동왕자와 가슴 아픈 사랑을 나누었다든가… 사실 역사라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도올 김용옥, 『앙코르와트 월남 가다 上』,  99~100쪽 중에서



 구드래나루터를 나와 찾은 곳은 정림사지. 시가지 한복판에 이렇게 텅 빈 공간이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거기 오래된 석탑 하나가 우뚝 서서 ‘과거와 지나간 것,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절절하게 전해주는 것 같다. 정림사지박물관에서는 시간이 모자라 방문하지 못한 국립부여박물관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제법 크고 상세하게 재현된 정림사 모형과 사실적으로 묘사된 이야기들, 정림사지 발굴과정과 그 터에서 나온 소박한 유적들이 백제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 정림사지 5층석탑이 프린트 된 멋진 에코백도 샀다.


 궁남지로 가는 길, 차창 밖으로 부여의 소박한 시가지 풍경이 지나간다. 그것은 천편일률적인 소도시의 모습이었겠지만, 분명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당하고, 잃어버리고, 스러지는 가운데 잊힌 백제일지언정, ‘과거의 파토스’를 간직한 옛 도시로서의 품격 같은 것, 혹시 그것이 ‘부여’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난 것이 아니었을까.



정림사지와 정림사지5층석탑  /  보정 이호정 (원본 출처 : 백제역사유적지구 콘텐츠기록관)



 # 부여를 여행하는 올바른 자세

『답사여행의 길잡이 4-충남』편에는 부여 답사를 마무리하며 신동엽시인의 장편 서사시『금강』의 일부를 소개하고 있다. 마음이 심란해질 때마다 읽게 되는 이 시는 역사, 장편, 서사시로서가 아니라, 인생의 힘든 시기마다 옳은 가르침을 주는 잠언 같은 시구들 때문에 나로서는 인생시나 다름 없었다. 정림사지 지척에 그의 생가와 문학관이 있었지만, 정림사지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 탓에 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다만 국립부여박물관과 함께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을 기약하는 것으로 위로해 본다.


 이번 여행은 사실 준비랄 것도 없이 발걸음 가벼운 관광객으로서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한껏 명랑해진 부여를 만났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구드래나루터에 도착한 우리 가족을 활짝 웃으며 맞아주던 어느 처자들 때문이었다. 오는 손님대로 6~7명이 모이면 배가 뜬다니, 평일 오후에 다른 손님이 오기를 한참 기다렸을 그녀들에게 우리는 반가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타자마자 배가 떴고, 나중에 궁남지에서 그녀들을 다시 만났다.) 할아버지 선장님이 앞 논에 소를 몰고 가듯 띄운 배 위에서 삼천궁녀의 드라마틱한 전설과는 달리 너무도 평범한 낙화암을 바라본다. 그러나 평범하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그 와중에 특별한 절경을 찾아 떨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끝없이 이어진 궁남지에는 급기야 무서울 정도로 연꽃이 피어나고, 동시에 시들고 있었다. 다만 그런 것들이 좋았다. 혹시나 당하고, 잃어버리고, 스러지느라 대단한 볼거리가 없을 것을 우려하는 여행자를 위해『답사여행의 길잡이 4-충남』에서는 다음과 같은 아름답고 의미 있는 문장으로 부여를 여행하는 올바른 자세를 일러주고 있다. 참으로 새겨 들을만한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우리가 백제의 수도로만 알고 있는 부여에서 정작 백제의 숨결을, 온기를, 살결에 닿는 바람처럼 느끼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백제는 천오백년 세월에 철저히 묻혀졌다. 그러나 신동엽이 말했듯이 백제가 “우리 엊그제, 그끄제에 있다”는 것은 다만 눈으로만 보이는 유물이나 유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삶의 의미로서의 백제, 바람버섯처럼 찢어져서 씨를 뿌리는 역사로서의 백제이므로, 피어나야 하는 역사의 고장으로서의 백제는 이 부여에서 가장 확실하게, 역사의 땅을 밟는 사람들의 발걸음 발걸음으로 살아날 것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 4-충남』, 189쪽 중에서



 결코 돌이킬 수 없이 지나간 것들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개인이든, 도시든, 강바람 맞으며 슬슬 거닐던 백마강변에서든, 과거의 흔적 없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부여에서 보았던 지나간 것들의 흔적들이 그래서 너무도 좋았다. 부여의 지나간 것들이 보잘 것 없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격정도 없고(플랜카드는 나부꼈지만...), 소란스러움도 없었다. 말갛게 세수한 얼굴같은 그 좋은 느낌들을 글로도, 사진으로도, 얄팍한 지식으로도 전할 수 없어, 우리는 여기 부여에서 가장 확실하게, 역사의 땅을 밟는 여행자들의 발걸음 발걸음으로, 그렇게 느껴야 할 것이다. // 마침



궁남지에서  /  사진 이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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