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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정 Apr 21. 2021

/ 고성


오뉴월 콩밭에 들어서면 깝박 숨이 막혔다. 

바랭이풀을 한 골 뜯고 나면 손아귀에 맥이 탁 풀렸다. 

그럴 때마다 눈앞에 훤히 바다가 틔어 왔다. 

물옷을 입고 첨벙 뛰어들면 - 해순이는 못 견디게 바다가 아쉽고 그리웠다. 

- 고등어 철 - 해순이는 그만 호미를 내던지고 산비탈로 올라갔다. 

그러나 바다는 안 보였다. 

해순이는 더욱 기를 쓰고 미친 듯이 산꼭대기로 기어올랐다. 

그래도 바다는 안 보였다. 

이런 일이 있는 뒤로 마을에서는 해순이가 매구 혼이 들렸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바다가 보고파 자꾸 산으로 올라갔지, 머. 
 그래도 바다가 안 보이데-”


- 오영수 단편집, “갯마을”, 54쪽, 삼중당 



고성의 바다  /  이호정



 # 여행의 장소

 우리의 진짜 여행은 여행할 “장소”를 선택하면서 비로소 시작된다. 우리를 부르는 수많은 장소들 가운데 그곳을 선택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라는 게 정말 있는 것일까. 세계를 일주하는 모험가가 아닌 이상, 우리는 한 장소를 선택해야 한다. 누군가는 티베트 고원의 장대하고 광활한 풍경에 매료되거나, 남태평양 어느 섬의 에메랄드빛 바다와 산호초를 보며 이보다 멋진 곳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다른 누군가는 찬란했던 인간문명의 쇠망사를 보기 위해 고대 로마의 폐허 위를 서성대거나, 또는 초고층 빌딩이 즐비한 어느 시티의 고급진 브런치를 앞에 두고 여행의 즐거움을 말할 것이다. 


 우리의 여행의 장소가 이렇게 제각각이 된 데에는 아마도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단순히 개인적 취향 때문일 수도, 직업이나 다른 필요 때문일 수도, 그저 우연히 본 단 한 장의 사진 때문일 수도 있다. 몇 해 전 재미있게 읽은 책 『서재 결혼시키기』의 저자 앤 패디먼은 이렇게 말한다.



 나의 자투리 책꽂이에는 극지방 탐험에 대한 책 64권이 꽂혀 있다. 탐험 이야기, 정기간행물, 사진집, 자연사, 해군 교본 등. (중략) 극지방의 일등급 미니멀리즘을 좋아하는 내 열정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 것이라서 정신분석가라도 그 뿌리를 캐내려면 족히 몇 년은 걸릴 것이다. 나는 여름보다 겨울, 《신데렐라》보다 《눈의 여왕》, 그리스 신화보다 북유럽 신화를 더 좋아하지 않았던 적을 떠올릴 수 없다.

     

                                                               앤 패디먼, 『서재 결혼시키기』, 42~43쪽, 지호, 2007



 우리가 여행할 장소를 선택하는 다분히 개인적인 취향 속에는 여행비용이나 실용주의, 단 한 장의 사진 이전에 어쩌면 그녀처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 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비록 정신분석가의 손을 빌리지 않더라도 어린 시절의 그 무언가를 유추해본다면, 앞으로 여행의 장소를 선택하는데 있어 흡족할만한 기준이 되어주지 않을까.    



마차진의 바다에서  /  사진 이호정



 # 고성 마차진에서 화진포까지

 인제를 지나 국도46호선을 타고 동쪽으로 내달리는 길은 언제나 익숙한 길이다. 그 길을 때론 수월하게, 때론 거북이보다 느린 속도로 수십 번을 오고 갔을 것이다. 그 익숙한 풍경을 따라 달리다 보면 미시령과 한계령,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울렁울렁해지는 고갯마루의 분기점이 드라마틱하게 갈라지고, 구만동계곡을 따라 즐비한 야영장과 펜션, 가끔 들리던 황태식당도 지나칠 무렵이면 아주 익숙한 산과 점점 가까워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 길이 한 겨울 빙벽등반의 메카라 불리는 용대리 매바위에 다다르면 다시금 갈라져서 누군가는 가던 길 그대로 미시령을 지나 속초로 들어가고, 또 누군가는 진부령 고개로 넘어갈 것이다. 차를 타고 진부령을 넘는 것은 나도 처음이다.(걸어서는 가 봤다는 얘기다.) 그렇게 진부령 지나 고성으로 가는 길은 익숙한 갈림길의 반대 쪽이었다.


 고성은 바다를 끼고 있는 동해의 여느 고장들처럼 많은 해변을 거느리지만 이번 여행은 최북단 명파해변 아래 마차진에서 막국수와 화진포호로 유명한 화진포 해변까지다. 바다가 바로 보이는 숙소의 창문 너머로 해가 온전하게 지고 나서야 수평선 너머 오징어잡이 어선들의 불빛이 줄줄이 놓여지고, 지척인 대진항구의 등대에서도 환히 등을 밝힌다. 숙소에서 대진항까지 이어지는 마차진 해변으로부터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는 흰 파도가 쉴 새 없이 낮은 마찰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물이 흐르며 내는 소리와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오랜만에 찾은 바다만큼이나 새삼스럽다.


 다음 날, 열린 철문을 넘어 마차진 해변을 서성거린다. 아직 개장 전의 해변은 그야말로 파도소리뿐이다. 바다에 익숙한 듯 보이는 서너 명의 청년들이 끌채로 파도 속에서 조개를 캐는가 싶더니 그 중 하나가 카약을 타고 금세 바다로 나간다. 적지 않은 파도가 카약을 이리저리 흔들리게 하지만, 이미 카약과 한 몸이 된 청년은 아무렇지도 않은가 보다. 파도에 밀려 죽은 조개와 고둥의 껍질들이 나뒹구는 모래 위에서 청년들처럼 차마 바다로 뛰어들지 못하고 발만 담갔다 뺐다 하며 바다에 익숙해지려 한다. 


 마차진에서 지척인 화진포해변은 고성의 대표적인 관광지답게 고즈넉한 화진포호를 끼고 해양박물관과 김일성별장으로 알려진 ‘화진포의 성’, 그리고 주변으로 아름다운 해송 숲이 자리 잡고 있다. 해송 숲 빼곡한 절벽 위, 화진포의 성에서 바라본 풍경은 주변을 둘러싼 거대한 자연,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만들어내는 힘에 의해 장엄한 분위기마저 자아내고 있다. 초도항과 금구도가 그림처럼 바라다 보이는 바닷가에서 시간이 가는 줄도, 옷이 물에 젖는 줄도 모르고 바다에 대한 해묵은 감정을 털어내려 파도와 씨름을 해본다.



화진포 초도항과 금구도  /  사진 이호정


 

 # 우리는 늘 바다가 보고 싶다

 학창시절 주로 읽었던 한국단편소설 중에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오영수단편집’이었다. 지금도 낡디 낡은 삼중당 문고판으로 간직하고 있는 그의 소설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그 현실은 온통 불운과 비극뿐이지만, 얄궂게도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대표작이라 할만한 “갯마을”은 무엇보다 내게 바다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준 소설이었다. 바다가 먼 내륙에서 자란 탓인지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 처음 본 바다는 빨강머리 앤이 그토록 상상하던 다이아몬드가 보랏빛이 아니었음을 알았을 때의 그런 기분이었고, 그 후로도 바다에 가면 나는 늘 안절부절 했다. 그렇기에 첫 남편을 바다에서 잃고 산속 마을로 시집간 ‘갯마을’의 해순이가 오로지 바다가 보고 싶어 미친 듯이 산꼭대기로 내달리는 그 마음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바다가 보고파 자꾸 산으로 올라갔지 머. 

  그래도 바다가 안 보이데….” 



 멸치가 나고 고등어가 나는 곳이었으니 해순의 ‘갯마을’은 여기서는 먼 곳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성의 인적 드믄 마차진에서 화진포까지, 바다는 마치 그녀의 바다처럼 넓고 맑고 푸르렀다. 나는 그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그동안 나의 여행의 장소가 바다가 될 수 없었던 까닭은 어린 시절, 그토록 ‘보고 싶었던’ 바다와 ‘실제로 보았던’ 바다와의 간극에서 비롯되었을 테지만, 무슨 상관이랴. 


 바다가 그리워 산으로 내달리는 해순의 마음을 영영 이해할 수 없다 해도, 처음 본 바다가 크레파스로 그리던 눈부신 파란색이 아니었음에 실망했다 해도, 애초부터 바다는 그 모습 그대로 우리에게 늘 그리울 수밖에 없는 그런 여행의 장소였는지도 모른다. // 마침


     

화진포 바다에서  /  사진 이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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