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걷는 생각들> (27)
사진여행을 하며 지방의 작은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마음 한쪽이 무거웠다. 풍경이 낡아서가 아니었다. 빛바랜 외벽과 간판이 뜯겨 나간 자리에 남은 ‘사람의 부재’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골목과 장터가 생활의 중심이었다. 안부를 묻고 소식을 나누며 서로의 사정을 헤아리던 관계 그물망이었다. 그러나 렌즈 너머로 본 그곳엔 그물이 끊어진 자국이 선명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세대 간 인구 균형의 붕괴다. 아이가 줄고 젊음이 떠난 자리에선 일자리마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인구 구조의 불균형은 지역 경제를 흔들고 그 흔들림은 다시 더 큰 이탈을 부르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삶의 토대가 무너지며 공동체는 약해진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빈 상가만이 아니다. 낮에도 문이 닫힌 가게가 늘고 분식집과 목욕탕 동네 이발소 같은 생활의 거점들이 조용히 사라진다. 장날의 북적임은 옅어지고 골목에는 택배 상자가 쌓여간다. 서로의 안부를 묻던 말은 줄어들고 도움을 청하던 손길은 ‘폐가 될까’ 하는 망설임 앞에서 멈춰선다. 그렇게 상호부조와 놀이와 장터라는 공동체의 기능이 약해질수록 마을은 조금씩 생기를 잃어간다.
이제 많은 지역들이 노인들만 남은 쓸쓸한 적막을 품고 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마을은 시간을 잃어버린 듯하다. 누군가 나서고 누군가 해결사가 되는 삶의 리듬이 끊기면 사람들은 각자 버티는 법을 배우게 되지만 그 버팀은 종종 고립과 닮아 있다. 도시를 향한 선택을 탓할 수는 없으나 그 선택이 남긴 여백을 바라볼 때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 불현듯 깨닫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머물고 있는 콜롬비아의 산동네 작은 도시 라 페냐(La Peña)는 사뭇 달랐다. 통계상 콜롬비아의 소득 수준은 우리보다 훨씬 낮다. 명목 기준으로는 대략 5배, 구매력 기준으로도 3배가량 차이가 난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마주하는 것은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공동체의 생명력과 삶을 풍요롭게 하는 행복의 기운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세대의 분포가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뛰놀고 청년은 일하며 노년은 그 풍경을 인자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낯선 이방인을 향한 시선에도 경계 대신 자연스러운 여유가 묻어난다. 그 담백한 태도가 마을의 활기와 맞닿아 있다.
특히 직접 목격한 한 장례식 장면이 깊은 잔상을 남겼다. 마을 어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수많은 주민이 모여 있었다. 슬픔은 깊었으나 분위기는 적막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함께 음식을 나누고 고인의 생전 이야기를 꺼내며 서로의 어깨를 다독였다. 마을 전체가 하나의 가족처럼 움직이며 죽음을 함께 애도하는 장면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죽음을 결코 혼자 감당하게 두지 않는 문화 그것은 어떤 경제 지표로도 측정되지 않는 삶의 가장 강력한 안전망이었다.
행복의 척도는 경제력에 비례하지 않는 것 같다. 충분히 소비해도 마음은 각박해질 수 있고 소득이 낮아도 서로의 얼굴을 기억하며 충만하게 살 수 있다. 결국 인간을 지탱하는 것은 숫자보다 관계다. 개인의 성취로만 삶을 재단하지 않는 세계에서는 사람들의 표정도 부드러워진다.
우리 지역사회에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더 많은 예산과 거대한 개발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인구 구조가 깨지고 공동체가 사라진 자리에서는 어떤 화려한 시설도 온전한 답이 되기 어렵다. 사람을 다시 모으는 일은 단지 인구수를 늘리는 정책을 넘어 서로를 다시 살피게 하는 ‘관계의 복원’이어야 한다. 함께 놀 수 있는 마당과 자주 마주칠 수 있는 장터 그리고 사소한 도움을 주고받는 통로를 되살리는 일이다. 공동체의 부활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습관에서 시작될 것이다. 라 페냐에서 본 것은 결국 그런 마음들이 빚어낸 무늬였다. 돈 아니라 서로를 배려하는 따뜻한 삶의 품. 그 품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가장 절실하게 되찾아야 할 가치일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