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책은 왜 서먹할까

<조용히 걷는 생각들> (26)

by 이호준

최근 도서관을 다니며 나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도서관의 핵심 기능인 대출 서비스를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게 빌린 책은 독서의 맛이 잘 살아나지 않는 서먹한 텍스트처럼 느껴진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반드시 밑줄을 긋고 형광펜으로 표시하며 나만의 흔적을 남긴다. 어떤 문장은 붙잡고 어떤 문장은 흘려보내고 난 뒤, 표시한 문장들을 타이핑해 독서를 매듭짓는다. 그런데 대출 도서는 이러한 과정을 허락하지 않는다. 흔적을 남기지 못하니 생각의 흐름이 끊기고 책과 나 사이에는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이 남는 듯하다.


이런 습관은 다독과 멀어지게 만든다. 밑줄을 긋고 사유하는 과정에서 읽기 속도는 느려지고 한 문장을 오래 붙잡느라 페이지는 좀처럼 넘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빌리기보다 소유하는 쪽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주로 중고서점을 이용하는데 책값 부담을 덜어주는 방법이고 전혀 알지 못했던 좋은 책을 우연히 만나는 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도서관을 향하는 발길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게 도서관은 책을 빌려 읽는 장소를 넘어 머무는 곳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도서관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열람실에 정돈된 책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어쩌면 나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기보다 내 곁에 책이 있는 상태를 사랑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비록 다독가는 되지 못하더라도 도서관이라는 정갈한 공간 속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책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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