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블로그 포스팅 글에 저는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달았습니다. '사람은 예쁘다 와 예쁘지 않다는 표현보다 매력이 있고 없다의 표현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줄임)' 그리고 브런치의 어느 글에는 '인간은 생존에 적합하게 DNA에 프로그래밍된 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성악설이나 성선설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무리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법이나 도덕적 규범을 벗어나 버리면, 이들 장치조차 없다면, 악마보다 더 한 악마가 될 수 있는 게 인간이죠.... 감정이나 생각도 기본적으로 생존을 위한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줄임)'
제가 쓴 댓글들에서 어떤 가치관과 신념이 느껴지시나요?
여러분은 어떤 가치관과 신념들로 살아가고 계시나요?
같은 하늘 아래 상상하지도 못한 일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눈을 감거나 귀를 막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 또한 생존과 관련이 있는 인간의 오감을 발동한 자연스러운 관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에는 반박의 여지 또한 없습니다.
'코로나19'라는 이 시국도 재앙인데 한쪽에는 전쟁이, 다른 한 쪽에는 물난리나 산불과 같은 자연재해로 혹은 기근과 열악한 의료 환경으로, 코로나가 아니어도 쉽게 죽음에 노출되는 이들 앞에서 오늘의 고난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불행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온다는데 행복은 사람을 가리고 오는 것처럼 때때로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조차도 다양한 환경을 가장하고 나타나는 죽음 앞에는 시답지 않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알 수 없는 예측불허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사람이라는 것. 이에 감정과 생각은 시답지 않은 액세서리가 아닌가라는 오해를 할 때도 있습니다.
지독하게 일이 잘 안 풀리 때나 급작스럽게 목구멍까지 치솟은 감정을 제어해야 할 때, 매일 반복하는 선택의 일상을 부담감이나 책임감으로 짓눌려 있기 싫을 때... 눈앞에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삶과 공존하는 죽음을 생각해 봅니다.
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인간이면 누구나가 끝에 당도하는 도착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감정이나 생각을 무의 상태로 돌아가는 상태로, 삶의 끝을 생각하면 머릿속과 마음을 차게 식혀 내릴 수 있게 됩니다.
어떤 어려움도 인간의 마지막 도착지가 모두 같다라고 생각하면, 현재 당면한 문제가 커다란 시련처럼 느껴지지 않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와 함께 반대급부적으로 오히려 삶에 대한 열망과 애정으로 다른 한 켠에서는 뜨거워지기도 합니다. 이는 생각과 감정에 자유로움을 달아주는 날개이고 죽음입니다.
자유로움은 역설적이게도 죽음과 함께 생각하면 명확하게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자유의 대상은 생각이나 감정, 행동 양식 등 그 어떤 것들을 제한을 두지 않고요. 여러분의 신념이나 가치관이 혼란스러울 때가 있을 겁니다. 스스로가 자유를 억압하거나 내가 아닌 무엇에게 제한되기도합니다.더욱이나 요즘같이 잡음이 많은 세상에서는요.
작은 바람인데도 태풍처럼 흔들릴 때도 있을 것이고, 이에 안절부절 하거나 오히려 무기력해지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마지막 생의 끝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결국에는 같은 끝을 맞이하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회 통념에 반하지 않는 것이라면 가지고 있던 신념과 가치관을 밀고 나가기에 주저하지 않아야하는 자유로움이 가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