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나팍크 May 15. 2024

1호. 여행은 끝을 동반하기에, 이곳은 한없이 애틋하다



시드니에 도착하면 누구든 먼저 가게 되는 곳은 오페라하우스임은 자명하다. 1950 년대 NSW에서 개최한 국제 현상설계 공모전, 웬걸 '얘는 누구야?' 싶은 요른 웃손(-Jorn Ultzon)이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비록 그의 업적은 자그마치 약 50년에 걸쳐서 천천히 세상에 드러났지만 어쨌든 그의 오페라 하우스는 설계자의 노고를 알아주기라도 하듯 시드니를 먹여 살리는 최고의 관광지가 되었다.


그러나 시드니에 살면 막상 오페라 하우스가 있는 Circular Quay를 갈 일이 없다. 많이 가봤자 흔히들 시티라고 부르는 CBD 초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시드니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곳은 명실상부한 관광지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관광지 하면 생각나는 것들이 있지 않은가. 맛없는 식당, 그러나 비싸기는 한. 벌써 수백 번은 본 듯한 유명한 건축물들. 가방과 캐리어를 들고 어수선하게 돌아다니는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가게 되는 날이 몇 있다. 내겐 며칠 전이 그런 날이었다. North에서 약속이 있어서 다녀온 날, 문득 날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를 보고 싶었고, 바다 쪽을 향해 걸어갔다. 충분히 바다를 즐기고 이만 돌아갈까 싶던 순간 실수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도착한 곳은 플랫폼이 아니라 하버 브릿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이렇게 말했던가. 삶을 사는데 오로지 두 가지 길밖에 없다고.

하나는 기적은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이고 ,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듯 살아가는 것이라고.


나는 그날 기꺼이 후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모든 것이 우연의 연속이었다. 하버 브릿지를 건넌 것, 하버 브릿지를 내리자 눈앞에 아주 오래된 Working Class의 추거 양식이 보인 것, 그중 하나는 보존이 되어 박물관이 되어있었던 것. 그리고 마침 방금 시작한 박물관 투어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


실은 나도 'Booking required라고 제법 단호하게 적혀있는 칠판을 보기는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오늘의 기적은 여기까지 일까? 하지만 또 모르지 않는가. 나에게 아직 소소한 기적만큼의 여분이 남아있을지도. 직원에게 예약은 하지 않았지만, 혹시 참여할 수 있을까 하고 묻자마자

0.56초 만에 당연하다며 미소 짓는 직원을 보고 행복감이 몽글몽글 솟아올랐다. 아 아직 조금의 기적이 날 위해 남아 있었구나 하고. 그렇게 갑자기 시작된 수잔나 플레이스 투어는 날 1시간가량 18-1900년대에 머물게 했다. 세월마다 갖춰온 가구, 덧대어진 각종 바닥 마감재, 계속해서 야금야금 늘려갔던 뒷마당, 오래된 집의 그 냄새. 함께 참여했던 70대 미국 어른들이 더듬는 어린 시절 추억의 조각들.


1시간의 과거여행을 끝내고 멍한 마음으로 지하철을 타러 가려는데 내 눈앞에 오페라 하우스가 등장했다. 저녁 약속까지 어쩌다 보니 고작 30 분 남은 상태. 집에 들어가긴 글렀고 에라 모르겠다 싶은 심정으로 오래간만에 오페라 하우스와 바다를 마주하며 앉게 되었다.


석양 아래 관광객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참 묘했다. 해는 지는데, 이제 다 져가는데. 관광객들의 기분은 항상 들떠 있다. 지고 뜸의 간극에선 생동감과 묘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연인들은 키스하고, 누군가는 배틀 타고 떠나고. 내가 사는 곳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감정이 여기에는 녹아 있다. 왜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늘 떠나지 않을 것처럼, 신선한 것은 없는 듯 살아가지 않는가. 누가 들어오면 들어오나 보다, 누가 떠나가면 떠나가나 보다. '나'라는 거대한 세계는 늘 현상을 유지하고 그래 다들 이렇게 사는 거지, 매일 같이 요동치는 감정을 느끼면 어떻게 살아가냐며 스스로 자위하지 않는가. 하지만 무수히 들어오고 떠나가는 그 세계 속에 앉아있노라면 거대한 세계의 주체가 내가 아님이 또렷해진다. 모두가 잠깐 놀러 온 이곳에서는 나 또한 잠깐 놀러 온 사람일 뿐. 나 또한 끝이 있는 여행객임이 매우 또렷해진다.


그날의 모든 우연이 내게 한 겹 한 겹 여행객의 옷을 입힌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한 명의 여행객이 되어 나는 생각했다.


여행은 끝을 동반하기에, 이곳은 한없이 애틋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