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나팍크 Aug 15. 2024

글의 신선도와 소비기한

원래는 좀 들여다봐야 할 회사 자료가 있었는데, 어쩐지 보안이 걸려버려서 작업을 못 하게 되었다. 그래서 강제로 생겨버린 나의 자유시간에 오랜만에 글을 써보기로 했다. 글 업로드한 지가 꽤 되었는데, 확인해 보니 마지막 업로드 일자가 6/21일이구나. 뭐라도 하나 올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킵해둔 글들을 쭉 보다가 '아, 역시 생생하지 않은 글은 올리기가 싫네.' 하는 마음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생생하지 않은 굴도 아니고, 생생하지 않은 글은 뭐람. 요즘 굴에 미뇨네트 얹어서 먹고 싶은데 한여름이라 식중독과 장염이 두려워 참고 있어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니 다들 그러려니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생각의 흐름을 타고 글의 소비기한이 과연 얼마나 될까라는 고민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모든 글이 신선도가 중요할까? 신선도를 단순 제작일자로만 본다면 그렇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우리가 사랑하는 명작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귀하고 깊어지는 위스키와 같으니까. 그런데 신선함의 개념을 '짜릿해! 신선해!'의 영역으로 가져간다면 실은 21년산 위스키가 12년산 위스키보다 짜릿하고 신선하다. 생기를 잃지 않고 싱싱한 그 맛. 명작들은 분명 그러하다. 시간이 지나도 생기를 잃지 않고, 오히려 지금 이 시대에 쉽사리 구할 수 없는 의미들을 싱싱하게 전해준다.


한편 내가 쓰는 일기에 가까운 에세이들은 일종의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는 것 같긴 하다. 지금 내 현 상황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사 6개월이 지난 후에야 업로드하는 이사썰은 그 신선도가 분명히 떨어진다. 어떠한 깊은 통찰력이나 6개월간 이사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 깊어지지 않았다면 그 글은 그냥 시기 늦은 기록성 글이 되고 말 테니까. 뉴스도 마찬가지다. 뉴스는 지금 일어난 일을 전해주는 것 자체만으로 큰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그 신선도와 타이밍이 매우 의미 있다. 흠, 하지만 어떤 뉴스(혹은 사건을 다루는 아티클)는 그 사건을 잘 정리하고 분석한 결과를 담아주는 것에서 그 신선함이 드러나기도 하는구나.


결국 글에 담고자 하는 것이 생각인지 혹은 사건의 전달인지가 글의 신선도를 결정하는 것인가 보다. 생각이 담긴 글은 시간이 지나며 그 시간 동안 일어날 수 있는 많은 화학적 변화들을 담아내기 때문에 신선하고 의미가 깊어진다면, 사건의 전달을 중심으로 하는 글들은 그 시간정 시의성이 더 중요하겠구나 싶다. 내 글도 조금씩 시간을 담아낼 수 있는 글들이 되면 좋겠다. 그러려면 내 생각들을 더 잘 정리하고 정립할 줄 알아야겠지?


지금 일어난 일에 내 생각을 조금 첨가하는 것을 넘어 이 사건을 통해 내 생각의 틀을 만들어가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오늘도 골프장과 카페를 갔다가 결국 소비 능력이 한 개인의 삶의 범위를 결정한다고 느꼈다에서 이야기가 끝나는 것과 소비 능력과 개인의 영역을 심도 있게 다루는 이야기에서 골프장과 카페를 예시로 드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글이고 맥락이다. 결국 시의성/최신성에만 싱싱함이 오는 글을 벗어나서 언제 꺼내 읽어도 좋은 글을 쓰고자 한다면 점차 후자로 나아가야겠지. 으아, 언젠간 50년 된 위스키 같은 글을 쓰고 말겠어! 아니, 잠깐. 그렇지만 난 숙성된 위스키도, 제철 만난 굴도 좋은 걸? 그냥 적절하게 둘 다 잘 적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야겠군. 열심히 계속 적자!

이전 15화 15화. 겉으론 뱃걸 속으론 굿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