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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씩 졸기는 했지만 긴 잠은 이루지 못하고 이 내 깼다.
그 많던 사람들. 모두 정동진이 목적지였다.
밤 10시 부산에서 출발해 새벽 6시에 도착하는
이 힘겨운 여정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었다.
내 옆에 앉은 여자의 말도 안 되는 트렁크 때문에
내 다리는 계속 불편해야 했고 보고 싶었던 바깥 풍경은
내 차지가 되지 못했다.
그래도 기차에서 맞이 하는 강원도의 새벽은 꽤 낭만적이었다.
굽이굽이 산들을 요리조리 비켜 뻗은 철로.
막 동이 트는 새벽녘의 음산함.
같은 한국이지만 남쪽의 시골과는 또 다른 운치다.
마치 한적한 일본의 어느 시골 마을을 여행하는 기분이다.
동해의 햇볕은 이른 아침부터 뜨거웠다.
해가 떠오르자마자 달궈진 모래밭과 그 위를 무거운 짐과 함께 거닐고
뜨거운 햇빛 아래 온몸을 샤워하면서도
하나 둘 목적지를 이어갔다.
그렇게 녹초가 되어 어렵게 도착한 숙소에서
잠깐 쉬고 다시 강문해변.
오늘 저녁은 유독 덥다.
여기가 강릉이 맞는지 의심스럽지만
어스름한 저녁 속에 빛나는 에메랄드 바다를 보니 이내 의심이 사라진다.
여름 한가운데 시작된 이번 휴가는 유독 힘들다.
고작 하루 있었을 뿐인데
내게 인생의 달고 씀을 모두 알려주는 듯하다.
바람 한 점 없는 저녁이다.
열대야에 무덥기는 남쪽이나 위쪽이나 마찬가지다.
케모마일의 박하향과 풍기는 입안 씀쓸함이
하루의 여독을 씻어준다.
그렇게 혼자 시간에 방해받는 것을 혐오하면서
막상 혼자가 되면 외로움에 고독에 찌드는 못난이.
도대체 어쩌란 말인지.
그렇게 싫은 건 뭐고 또
그렇게 아닌 건 뭔지.
강릉.
겨울에는 느닷없는 폭설로 사람 발길을 돌리게 하더니
이번에 폭염이란 말인가
머물게 해 주는 대신 더위로 숨도 못 쉬게 만드는
나를 이토록 반기지 않은 이유는 대체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