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章)이 마무리되었다.
며칠간.
다녀와서 손도 안 대던 사진을 정리하고
틈틈이 적어 왔던 일기를 화면으로 옮겼다.
지도 하나로 뜨거운 햇살 아래 발걸음을 옮기던 첫 도시 로마.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펜을 들게 만든 피렌체의 시뇨리아 광장.
나를 기차역 노숙자로 만들어 버린 뮌헨의 옥토버 축제.
상상 속 그대로 펼쳐진 꿈같던 베를린.
정말 다 기억이 난다.
기록하지 않았던 부분까지 세세할 정도로 기억이 떠오른다.
웃음을 머금고 그땐 정말 심각했는데 했던 실수라든지.
그 순간 좋았던 내 기분까지
모조리 떠오른다.
파리에서 민박집 사장님이
여행에 중독되어 한국에 들어가서 잠깐씩 돈만 벌고
그 돈으로 온통 여행만 다니는 젊은이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비행기 표를 연장하고 싶었지만.
그래서 못 가본 곳을 더 다녀보고 싶었지만.
여건상 그렇게 할 수 없어 그저 돌아와야 했던 나는.
어쩜 그 젊은이가 한없이 부러웠는지도.
세상으로 나가보니 살아있음이 느껴졌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나 말 통하지 않는 그곳에서나
'정글'임에는 틀림없는데 왜 이렇게 다를까.
그곳에선 분명 아기가 처음 걸음마를 배우 듯
하나하나 헤쳐 나가는 모든 것이 다행이고 감사했는데.
만나는 한 명 한 명의 인연이 참 반가웠는데.
주변에 들리지 않는 언어 소리가 오히려 편했는데.
길을 찾지 못해 헤매고 몇 번이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가도 자유로웠는데.
모르는 것이 당연하고 서툰 것이 일상인 그곳이었는데.
한국에선 당연하다는 이름으로 가려졌던 알지 못했던 소소한 행복들.
여기만의 또 다른 정글.
그래서 한동안 멍 했는지도 모르겠다.
두 곳에서의 기억 모두 잊으려
춘천에서 막연하게 시간을 보낸 건 어쩜 다행이었다.
조금씩 마음이 안정되어 가고 있다.
여행은 끝이 났다.
그렇게 깨기 싫었던 꿈에서 잔인하게 돌아왔다.
나는 집에 있고 아무 일 없이 하루하루를 보낸다.
여전히 내 미래는 모르겠고
내 답도 모르겠고
내일도 모르겠다만 반복한다.
근데 한 가지 알겠는 건 천천히 가도 된다 는 것.
어디든 무엇이든.
막연한 꿈이지만 언젠가의 꿈이 있다.
몸도 마음도 현실이 자유로운 방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