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생존과 성장을 위한 거대한 흐름
2018년,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ESG 투자에 본격 시동을 건 이후 기업들은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등을 통해 ESG 활동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이후 2020년, 코로나19의 대유행과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트럼프에서 바이든 대통령으로의 기조 변화 등으로 인해 기업은 이해관계자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강력한 요구를 받고 있다. 불확실한 지금의 세상에서 예기치 못한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ESG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데에 논란의 여지가 없다. 2021년 3월, 국내에서도 기업 주총의 가장 뜨거운 키워드는 바로 ESG로 대기업들은 이를 위한 행보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제 어떤 기업도 ESG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세상에서, 이해관계자들을 진정으로 고려하고 지속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으로의 체질 개선을 위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기후 위기, 인구 통계 변화, 디지털 기술을 통한 완전히 새로운 혁신 등이 비즈니스의 판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게 된 지금, ESG 경영은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요소임이 분명해졌다. 2019년 미국 BRT(Business Round Table)에서 181명의 글로벌 기업 CEO들이 ‘기업의 목적에 대한 새로운 선언’을 통해 모든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기업의 역할(①고객에 대한 가치 제공, ②직원에 대한 투자, ③파트너에 대한 공정하고 윤리적인 대우, ④지역사회에 기여, ⑤장기적인 주주 가치 창출)이라고 밝혔듯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새로운 시대에는 ESG 전략의 수립과 실행 여부가 기업 가치를 판단하는 주요 기준이 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 배출 규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ESG 공시를 점차 의무화하고 있다. 의식 있는 소비를 지향하는 밀레니얼과 Z세대의 부상 및 투자자의 압박이 ESG 도입의 필요성을 가속화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나 소비자, 투자자의 기준에 부합하는 것 자체가 목표는 아닐 것이다. 환경, 사회 및 지배구조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때 기업은 다음과 같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주요 성장 촉진
ESG 선도 기업은 기존 시장을 확장하거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때 유리하다. 정부의 신뢰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성장 기회에 필요한 승인, 라이선스 등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McKinsey에 따르면, 공공사업 개발을 위한 참여자 심사 시,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전의 성과가 주요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ESG 등급이 높은 회사의 사업 수주율이 더 높았다.
비용 절감
ESG를 효과적으로 실행하면 증가하는 운영 비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환경 리스크를 예방하기 위해 사전에 대처하는 활동이 경쟁 우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3M은 1975년 ‘pollution prevention pays’(3Ps)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 제품 재설계, 제조 공정 개선, 장비 재설계, 생산 폐기물 재활용 및 재사용을 통해 오염을 사전에 방지함으로써 22억 달러를 절감했다. FedEx는 35,000대의 차량 전체를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엔진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2019년 말 기준 20% 전환으로 연료 소비량을 5천만 갤런 이상 절감했다.
비용 절감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도 있다. 유럽연합 내에서 생산되는 완성차에는 2021년부터 ‘EU 차량 배출 목표’가 적용되는데 폭스바겐은 이산화탄소 배출량 기준치 초과로 약 1억 유로의 벌금을 물게 된 반면, 볼보는 배기가스 배출량 목표치를 초과 달성하여 EU로부터 크레딧을 획득했다. 이를 통해 탄소배출권 여유분은 포드자동차에 판매하고 추가 수익은 친환경기술에 재투자하기로 했다.
ESG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차별화된 경쟁우위를 만드는 근간으로써 어느 기업도 피할 수 없는 필수 활동이 되었다. 그렇다면 보다 강력하고 체계적인 ESG 전략 수립과 실행에 있어 반드시 챙겨야 할 프로세스는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자.
중대성 평가
중대성(Materiality) 평가는 ESG 전략 수립의 기반이 된다. 모든 ESG 주제가 중요하지만, 전 영역을 기업이 관리할 수 없기 때문에 산업과 회사 상황에 따라 집중해야 할 핵심 이슈를 선정할 필요가 있다. 이해관계자의 관심도 및 비즈니스에 끼치는 영향을 기반으로 우선순위를 도출하는 것이다. 즉 중대성 평가는 핵심 ESG 이슈를 발굴하는 tool 로써,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할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https://www.unilever.com/planet-and-society/sustainability-reporting-centre/our-material-issues/
미국 지속가능회계기준위원회(SASB, Sustainability Accounting Standards Board)는 11개 산업군, 77개 세부 산업별로 ESG 정보공개 지표를 분류한 중대성 지도(Materiality map)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각 산업의 핵심 이슈와 중요도를 파악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산업 내 다른 기업들의 ESG 전략을 살펴보거나(타사의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확인) 신용평가사들이 제공하는 가이드라인을 참고하면 선택과 집중에 있어 무엇부터 관리해야 할지 파악이 가능하다.
중대성 평가를 통해 ESG 우선순위를 도출했다면 회사의 기존 프로그램과 정책 등은 현재 어떠한지를 평가해야 한다. ESG 이슈별로 전문 지식을 보유한 조직 내 이해관계자와 함께 보고서, 정책 및 데이터 시스템에서 먼저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이해관계자 인터뷰를 통해 세부 사항을 추적하고 수집한다. 이 과정을 통해 조직 전반의 ESG 성숙도를 측정할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조직이나 ESG 활동의 사일로를 발견할 수도 있다.
ESG 목표 설정
중대성 평가를 통해 ESG 핵심 이슈를 발굴한 후에는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목표와 세부 과제를 정해야 한다. 전략적 목표 설정을 위해서는 주요 이해관계자들과 주제 중심의 논의가 필요하다.
- 유지 관리: 이미 잘 하고 있는 일 중 유지 보수나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 개선: 이해관계자의 기대를 충족하거나, ESG에 대한 헌신을 입증하기 위해 점진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가령, 내부적으로는 ‘다양성’에 대한 정책과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지만 이에 대해 외부 이해관계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이를 알리는 것이 전략적 목표일 수 있다.
- 최적화: 산업 내 ESG 선두주자가 되기 위해 기존 노력을 강화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가령, 탄소배출 목표치를 이미 설정했다면, 기술 기반 탈탄소화 계획을 완료하는 것이 전략적 목표가 될 것이다.
ESG 목표는 전 산업에서 두루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 고유의 비즈니스 모델에 맞춤화 된 내용이어야 한다. 사업과의 적합성이 높은 광범위한 이니셔티브 아래 단기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하위 과제를 여러 개 설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 단계에서는 경영진, 이사회 및 지속가능성 위원회 등 여러 이해관계자들을 참여시킴으로써 전략 방향과 실행 지원에 대한 합의를 얻을 수 있다.
전략적 ESG 로드맵 개발
목표 달성 과정을 위한 로드맵을 개발하면 주요 과제에 대한 책임감을 강화할 수 있으며, 이해관계자들에게 회사의 ESG 목표에 대해 명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실천에 대한 의지를 보여줄 수 있다.
세계 최대 식품회사 네슬레는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2050년까지 Net Zero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202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 줄이고, 2030년까지는 50%를 줄이겠다는 Net Zero 로드맵을 수립했다. 로드맵 추진을 위해서는 모든 사업 부문을 면밀히 살펴야 하는데, 네슬레는 현재 판매 중인 제품부터 혁신개발 단계에 있는 모든 제품에 있어 환경에 대한 영향을 검토하고, 관련된 모든 공급망에 대한 관리를 약속했다.
통합적인 비즈니스 프로세스 구축 및 주요 성과 지표 측정
재무적 성과를 높이기 위한 기존 비즈니스 전략과 비재무적 성과를 높이기 위한 ESG 전략이 별개로 돌아가서는 ESG 경영이 성공할 수 없다. 두 전략을 한 방향으로 통합하고 운영해야 한다.
통합 ESG 전략에는 자본 할당, 공급망 관리, 마케팅, 파트너 선택 및 투자와 관련된 고려 사항이 모두 포함되며, ESG 관점에서 기존 전략 및 운영 프로세스를 재정의하여 지속가능성 기반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수익성을 유지해야 한다. 통합 ESG 전략의 잠재적 가치는 다음과 같다.
- 중요한 ESG 기회 및 리스크를 고려하여 장기적으로 비즈니스 모델의 지속가능성 강조
-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전략적 포지셔닝을 통한 시장 차별화
- 지속가능성 속성을 가진 제품, 서비스 및 프로세스의 혁신을 통해 더 큰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이해관계자의 니즈 충족
- 환경 및 사회적으로 점점 더 의식 있는 소비와 가치를 지향하는 소비자, 직원 및 투자자 관점에서의 브랜드 충성도 제고
- 조직의 전반적인 의무와 행동에 대해 더욱 공감하는 이해관계자와의 관계 구축
책임 있는 프로세스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실행의 기대 결과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측정 가능한 지표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주요 이해관계자가 지속적으로 목표를 평가하고, 데이터를 업데이트하고, 모니터링하여 목표 달성을 위해 무엇을 보완해야 할 지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때, 중앙에서 ESG를 감독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점차 현업 부서별로 오너십을 가지고 ESG 활동을 추진할 수 있도록 권한을 이양할 필요도 있다.
투명하고 지속적인 ESG 정보 공시
신용평가기관이나 투자자, 고객 등 외부 이해관계자들은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통해 기업의 ESG 성과와 전략을 파악하므로 보고서를 효과적으로 작성하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주요 이해관계자들에게 중요한 이슈 중심으로 스토리텔링 하는 것이다. 해당 산업과 회사의 중대한 사안이 무엇이었는지, ESG 목표와 세부 과제는 어떤 배경에서 도출되었는지, 문제 해결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고 성과는 어떠한지, 부족한 부분은 앞으로 어떻게 보완해 나갈 것인지를 충분히 담아야 한다.
이해관계자가 가장 쉽게 ESG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웹사이트에서 PDF 보고서를 제공하거나, ESG 랜딩 페이지를 구성하여 투명하고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약속하는 것이 좋다. 보다 성숙기에 접어들면 주요 정보를 연간보고서나 투자자 대상 프레젠테이션, 고객 커뮤니케이션 같은 경영 정보에 통합할 수 있다. 덧붙여, 내부 직원들에게도 ESG 활동에 대한 업데이트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ESG에 대한 직원들의 인식을 강화하고, 또 목표 달성을 위해 기여한 사항을 인정할 수 있다.
전 세계적 화두로 등장한 ESG 경영을 시작하는데 있어 많은 기업들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는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 ‘경쟁사보다 차별화된 ESG 성과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어떻게 평가 등급을 끌어올릴 것인지’ 고민한다. 그래서 전담 조직을 만들고 ESG 관련 대외 정보 공개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소극적인 대응 방식이다. 진정한 체질 개선을 위해서는 ‘우리 회사가 세상에 어떤 존재가 될 것인지’, ‘어떤 이해관계자들에게 중점을 두고 그들에게 어떤 기여를 할 것인지’ 근본적인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기업의 목적으로부터 출발하여 경영활동 전반에 ESG를 녹여야만 ESG 경영의 목적인 지속가능성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ESG 광풍을 불러일으킨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인도네시아 팜유 생산기업 아스트라인터내셔널의 3대 주주인데, 아스트라인터내셔널이 팜유 공급 과정에서 환경을 파괴하고 농민의 땅을 약탈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ESG에 역행한 투자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미국 기업 바이털팜은 동물 복지와 친환경 계란을 내세워 비싼 가격임에도 큰 인기를 끌고 상장까지 했으나, 닭에게 사료가 아닌 풀을 먹인다는 점 빼고는 공장형 양계장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져 소비자들에 의해 집단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남들이 다 하니까 흉내내기에 급급하면 결국 소비자를 비롯한 이해관계자의 반감만 더 거세질 수 있다. 환경, 사회 문제에 진심인 기업, 그리고 올바른 의사결정을 위해 건전한 지배구조로 개선하는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여주는 기업만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살아남게 될 것이다.
<References>
김재필, 『ESG 혁명이 온다』, 한스미디어 (2021)
한경MOOK, 『ESG 개념부터 실무까지 K-기업 서바이벌 플랜』, 한스미디어 (2021)
Harvard Business Review, “An ESG Reckoning Is Coming”, March 2021
Harvard Business Review, “Reimagining the Balanced Scorecard for the ESG Era”, February 2021
Harvard Business Review, “ESG Impact Is Hard to Measure - But It's Not Impossible”, January 2021
Ernst & Young, “The CEO Imperative: Rebound to more sustainable growth”, June 2021
Ernst & Young, “Five ways boards can unlock ESG’s strategic value”, December 2020
McKinsey, “Why ESG is here to stay”, May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