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 업무환경으로 전환하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람들이 가장 직접적으로 느낀 변화 중 하나는 일터의 변화이다. 코로나 이후 많은 기업들이 원격근무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한국 대기업의 75%가 유연근무제를 실시했으며, 이 중 약 절반 정도는 새로운 업무 방식을 유지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는 한국을 넘어 글로벌 트렌드이기도 하다. 일본의 경우 원격근무를 실시하는 기업이 2018년에 1,000개 미만이었지만 2020년에는 무려 16,000개에 다다랐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IT 기업들 역시 원격근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메타(구 페이스북)의 CEO 마크 주커버거는 “앞으로 10년 안에 전직원의 50%가 원격 근무를 하게 될 것”이라고 했으며,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도 원격근무 확대에 동참하고 있다. 그렇다면 원격근무의 확산은 전통적 업무 장소인 사무실의 가치를 무의미하게 만들 것인가?
많은 전문가들은 원격근무가 사무실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대신 많은 기업이 원격과 사무실 근무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업무환경을 선택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이브리드 업무환경이란 원격(재택)과 사무실 근무를 혼합하는 업무 모델을 말한다. 팀별로 일주일에 2~3일 정도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는 방식이다.
하이브리드 업무환경으로의 전환은 단순히 집과 사무실을 오가는 것의 문제가 아니다. 사티아 나델라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기존 근무방식을 무조건 원격근무 형태로 전환하는 것은 “신념이나 교리를 바꾸는 것과 같다”면서 “그동안 비축해 둔 사회적 자본을 포기하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이브리드 업무환경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는 변화가 성급하게 이루어져서는 안 되며 손실을 최소화할 장기 전략과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새로운 업무환경 도입에 앞서 기업 리더들은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사무실 공간을 축소해 부동산 비용을 줄이는 것인가?’, ‘먼 지역에 사는 글로벌 인재를 영입하려 하는가?’, ‘직원들의 생산성과 효율성이 중요한가?’,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문화가 핵심인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또한 원격근무가 모든 직군과 사람에게 맞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혼자 작업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개발 직군은 원격근무의 비율을 높이는 것이 생산적일 수 있다. 반면 창의적인 논의가 필요한 크리에이터 직군은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시간이 더 필요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주변 요인으로 인해 재택근무가 힘든 상황일 수도 있다.
하이브리드 업무환경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직원들이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도록 업무환경의 디지털화가 갖춰져야 한다. 다양한 디지털 기술(노트북, 모바일, 태블릿, AR/VR 등)과 협업 툴을 활용해 업무 몰입도를 극대화하는 환경이 구축되어야 하며, 데이터 및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강력한 보안 시스템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새로운 업무모델에 맞는 핵심 지표와 보상, 업무원칙이 준비되어야 한다. 독일 지멘스는 14만명의 직원에게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주 최대 3일 재택근무를 허용했는데, 이에 대해 롤랜드 부쉬 지멘스 부회장은 “뉴노멀이 된 새로운 업무모델(원격근무)은 기업 문화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으며,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닌 업무 성과에 근거한 경영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원격과 사무실 근무가 혼합된 하이브리드 업무환경에서는 직원들의 자율성을 높이고 명확한 성과에 따라 평가하고 보상하는 조직문화와 성과제도가 기반 되어야 한다.
원격근무에는 출퇴근시간 절약, 효율성과 같은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존재한다. 하이브리드 업무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원격근무의 부작용과 대응 방안도 해결해야 할 도전 과제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서 발표한 원격근무 경험 서베이에 따르면, 원격근무를 시작한 직원의 약 80%가 더 많은 연결감과 소통을 원하며, 84%가 비대면 상황에서 직장내 고민과 문제가 장기화된다고 응답했다. 원격근무에 따른 직원들의 집중력 저하, 달라진 생활리듬, 외로움, 번아웃 등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원격근무 상황에서는 특히 직원들 간 유대감과 팀워크를 강화하기 위한 리더의 적극적이고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일례로, 구글은 원격근무 도입 초기 떨어진 생산성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리더십 코칭을 활용했다. 리더십 코칭을 통해 리더와 직원들 간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하고, 일대일 회의 빈도를 늘리자 팀 내 연결감이 강화되고 사기도 높아졌다. 과거 리더의 주요 역할이 직원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이었다면, 미래에는 여러 장소에 분산돼 일하는 팀의 협업을 이끌어 내고, 정서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원격근무 도입 초기에 직원들의 업무활동 데이터를 분석해 부작용을 해결하고 업무 효율을 높일 다양한 방법을 실험했다. 예를 들어, 재택근무 시 오후 6시와 12시 사이에 전송되는 인스턴트 메시지 비중이 52% 증가했으며, 많은 직원들이 밀린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야근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팀에서는 전자기기를 끄고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직원들이 온전히 개인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재충전 금요일’ 제도를 실시하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분석팀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팀의 근무리듬이 어떻게 바뀌는지 정량화하고, 숨은 문제를 발견하는 동시에 해결책에 대한 통찰도 얻었다.
우리의 미래는 점점 더 디지털화되고, 유연해지고, 원격근무에 친화적인 환경으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업무환경의 변화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기업은 변화의 과정에서 직원들의 행동과 업무방식이 어떻게 바뀌는지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최적화된 모델을 찾아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사무실은 그동안 직원들의 개인 집중 공간, 회의와 미팅의 공간, 창조적 논의의 공간, 사교와 놀이의 공간 등 수없이 많은 기능을 수행해 왔다. 지난 20년간 구글, 애플 등 실리콘밸리의 유명 기업들이 캠퍼스 형태의 사옥과 직원을 위한 편의시설을 갖추는데 많은 투자를 해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원격근무 트렌드 속에서도 사람들이 모이고, 연결되고, 관계를 맺을 사무공간의 기능은 여전히 너무나 중요하다. MIT 센디 펜틀랜드(Sandy Pentland) 교수 연구팀은 “가장 잘 운영된 조직은 무엇보다도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많이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평범한 대화든, 우연한 마주침이든, 퇴근 후 모임이든 사회적 교류는 기업의 혁신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향상시킨다. 뿐만 아니라 직원의 참여와 행복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래에도 사무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이유다.
업무공간의 진화에 대해 연구하는 제니퍼 매그놀피 아스틸(Jennifer Magnolfi Astill)은 앞으로 기업들은 기존 사무실이 수행하던 다양한 기능 중 어떤 기능이 필요하고 불필요할지 고민하고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컨대, 미래 사무실에서 개인 집중이 필요한 업무공간의 활용은 줄어들 것이다. 대신 리더와 직원들이 함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학습하는 공간은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사무실의 존재 이유가 새롭게 정립되면, 위치, 규모, 업무공간의 설계 방식 역시 바뀔 수 있다. 미래 사무실의 형태가 반드시 지금과 같을 필요는 없다. <일하는 기쁨>의 저자 브루스 데이즐리(Bruce Daisley)는 미래에는 사무실이 ‘호텔화’ 될 것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일주일에 1~2일 정도 원격으로 근무할 수 있게 되면 중앙집권화된 대규모 사무공간에 대한 필요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호텔처럼 작은 공간을 짧게 임차해 임직원이 교류하는 장을 만드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글로벌 건축 디자인 전략 기업 HLW의 피더 베이스바이스(Peter Bacevice)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를 통해 노드형 사무실의 개념을 소개했다. 하나의 건물에 존재하던 사무실을 도시나 지역 전체에 소규모로 설치해 노드 형태로 분산시키는 것인데, 그는 최근 증가 추세인 코워킹형 사무실이 노드형 사무공간 네트워크의 예시적 모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사무용 건물을 나눠 여러 기업이 시설을 공유하고, 또 건물 내 이벤트 공간, 레스토랑, 체육관과 같은 편의시설을 섞어 놓는 것이다. 위성/거점 사무실을 직원들의 집에서 가까운 매장이나 복합 센터에 세우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이러한 공간 구성은 다른 기업과의 교류를 늘릴 뿐만 아니라 지역 공동체와 상권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업무 효율성이 원격근무의 장점이라면 창의성은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교류하고 협업할 때 나온다. 핵심은 기업이 각각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해 잘 조화시키는 데 있다. 하이브리드 업무환경에서 직원은 자신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느끼는 업무방식을 선택할 수 있고, 기업은 니즈에 따라 원격과 사무실 근무의 비율, 사무실의 위치와 규모, 형태 등을 결정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 업무환경 구축은 기존에는 포용하기 어려웠던 일하는 방식, 인력운영, 인재 확보의 가능성을 열고, 결국 더 생산적이고 혁신적인 기업으로 나아가는 단초가 될 수 있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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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vard Business Review, “마이크로소프트의 원격근무 실험”, 2020.11-12월호
Harvard Business Review, “Zoom은 결코 오피스를 대체할 수 없다”, 2020.10.12
Harvard Business Review, “원격근무 전환, 장기 플랜이 필요하다”, 2020.09.25
Harvard Business Review,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애자일’을 맛봤다면?”, 202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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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G, “지각변동이 일어날 때에는 애자일 방식이 도움이 된다”, 2020.06.10
동아비즈니스리뷰, “’핼릭스’는 애자일 주행 돕는 보조 바퀴”, 2020.3월 Issue2
동아비즈니스리뷰, “역량 리더와 가치 창출 리더 나눈 ‘자율적 나선형 조직’으로”, 2020.3월 Issu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