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초 등장한 생성형 AI는 산업 전반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며 시장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골드만삭스(Goldman Sachs)는 AI로 인해 특히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 산업으로 '법무'를 꼽았다. 매우 보수적이고 장벽이 높은 법률 산업에도 기술로 인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법과 기술을 접목하여 법률 산업의 가치를 높이는 '리걸테크'가 주목받고 있다.
리걸테크는 법률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일의 미래를 어떻게 그려 나가고 있는지, 법률 서비스가 필요한 잠재 수요자에게는 어떤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게 될지 생각해보자.
살면서 해결하기 어려운 일에 휘말리게 될 때, ‘아는 변호사 한 명쯤 있으면 좋겠다’ 생각한 적 있지 않은가. 이제 언제 어디서든 손 쉽게 ‘AI 변호사’를 통해 법률 서비스를 자문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바로 ‘리걸테크(LegalTech)’를 통해서 말이다. 리걸테크는 '법(Legal)'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법률 서비스를 의미한다.
인터넷과 모바일의 발전이 시작되었던 2000년대 후반 즈음 처음 등장한 개념으로, 초기에는 법조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단순한 사무 보조 서비스를 제공했으나, 최근에는 판례 분석, 법률 문서 작성, 심지어 판결 결과를 예측해 소송 전략을 수립하는 수준의 서비스로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리걸테크 시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법률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 가트너(Gartner) 조사에 따르면, 로펌 및 기업 법무팀은 2025년까지 리걸테크에 투자하는 금액을 약 3배 이상 늘릴 것이며, 법률 리더의 40% 이상은 조직 내부의 법률 업무 자동화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글로벌 리걸테크 투자 전문 벤처 펀드는 매년 약 13%가량 큰 폭으로 증가, 2022년 리걸테크 분야 투자금은 총 34억 3,000만 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시장 규모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리서치 기관 퓨처마켓인사이트(Future Market Insights)는 연평균 8.9%의 성장률로, 2022년 약 298억 달러, 2032년에는 697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리걸테크의 발전으로 법조계의 업무 효율과 생산성이 극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영국 로테크 UK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법조계 종사자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업무를 처리할 때, 연간 최대 17억 파운드까지 생산성이 향상될 것으로 추정된다.
AI 변호사를 최초로 탄생시킨 미국의 리걸테크 기업 로스 Ross는 초당 10억 장의 판례를 검토해 연관된 판례를 제시하며, 책 100만권 분량의 법률 데이터 조회가 가능하다고 한다. 덕분에 인간은 변론 작성이나 사건 재구성 등 창조적인 업무를 더욱 집중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되어 법률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다. 또한, 리걸테크는 법률 서비스의 장벽을 낮춰 보다 편리하게, 더 합리적인 비용으로 서비스 이용을 가능하게 한다.
각 나라의 법 규제 정도에 따라 리걸테크 발전 수준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규제가 완화된 국가일수록 리걸테크 시장이 성장하고 성숙함을 보인다.
글로벌 리걸테크 시장에서 북미권의 점유율은 50%에 달하며 이미 성숙기에 진입했다. 미국은 리걸테크 관련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는 기업들이 이미 2,000여 개를 넘어섰으며 그 중 기업가치 1조원이 넘는 유니콘 기업은 20개나 된다.
미국의 리걸테크 발전은 2006년부터 시행된 ‘e디스커버리(전자증거개시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식 재판에 앞서 당사자 간 이뤄지는 법정 외 증거 공개 절차인 ‘디스커버리’에 전자문서를 뜻하는 ‘e’를 붙인 것이다. 분석해야 하는 증거 대부분이 데이터화, 디지털화되면서 그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증서가 변조될 가능성 또한 커졌다. 제한된 시간 안에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을 돕기 위해 인공지능, 디지털 포렌식 등의 기술이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 결정적으로 미국에서 리걸테크의 급성장을 이끌었다.
전세계의 법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피스컬노트(Fiscalnote)’
2013년 설립된 미국의 피스컬노트는 접근하기 어려운 미국 의회와 정부의 데이터를 AI와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하여 실시간으로 수집/분석하여 제공하는 세계 최초의 기업이다. 이들의 주요 고객은 CIA, 중앙은행, 국방부와 같은 정부 기관을 포함하여 월스트리트 금융사, 테슬라 등이 있다.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 중 하나는 법안의 통과 여부를 예측해주는 것이다.
이 때, 해당 법을 심사하는 의원의 성향과 과거 투표 이력까지 분석하여 법안 통과 예측율을 94%까지 높였다. 이러한 서비스로 2022년 나스닥에 상장, 기업가치만 무려 1조 3000억 원이 넘는다.
창업자인 한국계 미국인, 팀 황은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시도되지 않은 모든 국가의 법률과 규제를 한 번에 찾아볼 수 있는 일을 가능하게 하겠다” 고 말하며, 전세계 리걸테크를 선도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의 성장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일본 리걸테크 시장은 세계 4위 규모로, 리걸테크 회사는 총 60여개이며, 이 중 유니콘 기업은 2개다. 일본 전체 변호사의 절반은 리걸테크 플랫폼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최근 일본 법무부가 AI 활용 법률서비스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앞으로 일본의 리걸테크 시장은 더욱 속도를 내며 발전할 것으로 예측된다.
일본 최대 리걸테크 플랫폼, ‘벤고시닷컴’
2005년 설립된 일본의 벤고시닷컴은 변호사 소개, 법률 상담 등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창립자인 모토에 다이치로는 학창 시절 냈던 교통사고를 처리하기 위해 고액의 변호사 상담료를 지불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사람들이 법률 서비스를 좀 더 쉽게 이용할 수 있게끔 벤고시닷컴을 창업했다.
벤고시닷컴은 ‘모두의 법률 상담’이라는 무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질문을 남기면 변호사의 답변을 받아볼 수 있다. 또한 지금까지 축적한 100만 건 이상의 법률 상담 데이터와 판례를 AI가 분석하고 GPT가 답하는 서비스를 출시할 계획에 있다.
변호사의 경우, 벤고시닷컴에 등록하면 고객 유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검색 상위에 표시되고 자신의 대표 해결 사례도 내걸 수 있다. 이러한 서비스로 벤고시닷컴은 일본 변호사의 47.3%가 이용 중이며, 2021년 87억엔의 매출을 기록했다.
<References>
· “Gartner’s 2023 Top Legal and Compliance Technology Predictions”, 2023, Gartner
· “LegalTech Market by Solution, End-User, Region (Forecast 2022 to 2032),”, October 2022, Future Market Insights
· 정혜련, “리걸테크와 소비자후생-리걸테크 유니콘의 성장배경과 사례를 중심으로”,2022, 소비자법학회
· Stanford Center for Legal Informatics, CodeX Project 홈페이지
· 민명기, “리걸테크가 뒤바꾼 ‘디지털 재팬, 아날로그 코리아’”, 2023.08.21, 주간조선
· 이진원, “리걸테크의 최전선”, 2023.07.23, Forbes Korea
· 전지민, “리걸테크 ‘유니콘’ 기업이 탄생하기까지-미국편”, 2022.10.27, 로톡
· 이종주, 법률산업의 디지털 전환에 따른 동향과 이슈, 2018.11.27, 한국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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