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파산
다이달로스는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건축과 공예의 장인인데요. 태양까지 날아간 이카로스의 날개를 만든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의 능력을 높이 산 크레타의 왕 미노스가 부탁을 하나 하게 되죠. 미노타우르스라는 황소괴물을 가둘 수 있는 감옥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는데요. 그러자 다이달로스는 한껏 솜씨를 부려서 한 번 들어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 같은 궁전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훗날 미노스의 미움을 사는 바람에 아들과 함께 자신이 만들었던 미궁에 갇히는 비극을 맞이하게 되죠.
미국의 식품 유통회사 A&P가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이 회사는 20세기 중반 무렵에, AT&T 그리고 GM에 이어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회사였습니다. 역사상 가장 큰 유통업체였다는 평가도 받고 있죠. 그 성공비결은 바로 PL(Private Label). 즉, 유통 브랜드 전략이었습니다. 매장에서 팔리는 모든 제품에 자사의 브랜드(PB, Private Brand)를 붙여서 파는 방식을 뜻하는데요. 제품의 생산자를 드러내지 않되, 품질을 유통업체가 보장하는 것인데요. 이는 제품의 가격을 확 낮출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전략은 전쟁과 대공황으로 가난했던 당시의 시대상황과 딱 맞아 떨어졌는데요. 시장에는 무조건 싼 제품을 찾는 사람으로 넘쳐났으니 당연히 A&P에는 사람들이 몰릴 수 밖에 없었죠.
그런데, 1900년대 후반이 되면서 생활수준이 높아지자 소비자들은 점차 비싸더라도 품질 좋은 제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무조건 싼 제품만을 판매하던 A&P는 어려움에 난관에 부딪혔죠. PL전략은 품질에 대한 책임을 100% 유통매장이 지기 때문에 생산자는 오직 싼 가격에 제품을 넘기는 데만 집중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품질이 점차 나빠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결국 시간이 갈수록 소비자들은 비싸지만 생산자가 품질을 보장하는 ‘개별 브랜드’ 쪽으로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고품질의 개별 브랜드 전략으로 변화해야 하는 순간, A&P는 웃지 못할 행동을 하고 맙니다. 도리어 저가 전략을 더욱 강화한 것인데요. 심지어 시범 운영하던 고품질 매장마저 자사의 색깔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닫아버리기까지 했습니다. 미국에서 유일하게 PL전략을 펼치는 회사로 남아 독보적인 기업이 되려는 의도였죠. 즉, 자신들의 과거 성공 전략에 갇혀버린 것입니다.
미궁에 빠진 A&P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요? 저가에 대한 고집은 곧 비용 절감으로 이어졌습니다. 매장의 서비스 수준은 갈수록 낮아졌고, ‘더러운 매장’이라는 비참한 별명을 얻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A&P는 1979년 독일의 텡엘만 그룹에 흡수되었으며, 그 이후에도 시장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두 차례의 파산을 거쳐 2016년 결국 156년 간의 사업을 종료했습니다.
변화가 절실한 순간, 과거의 전략에 집착해 변화를 거스르는 것을 바로 다이달로스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과거의 성공이 크면 클 수록 그 증세는 더욱 심각해 지는데요. 한시라도 빨리 미궁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보게 됩니다.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이 필수인 요즘, 과거 우리를 성장시켰던 전략에 발목을 잡혔다가는 끊임없는 미궁에 갇힐 수도 있습니다. 변화의 첫 걸음은 기존의 성공 방정식이 만든 미궁을 허무는 과감한 용기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iOS 유저는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