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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r 02. 2018

더블린에 부는 초콜릿 바람

아일랜드 연가 1

제목 : 아일랜드 연가 1 – 더블린에 이는 초콜릿 바람 / 2017. 8. 16


“지금까지 본 영화중에 어떤 영화가 제일 좋은가요?”

“초콜릿이요.”

“아니, 영화요, 초콜릿 말구 영화요.”

“네, 영화에요. 조니 뎁이랑 줄리엣 비노쉬 나오는 영화에요. 아마 2000년도즘 나온 영화 같은데 나는 몇 년전에야 봤어요. 그리고 그 후로도 여러 번 봤어요. 저는 원래 아무리 좋은 영화래도 여러 번 보지는 않거든요. 물론 TV에서 나오는 성탄영화나 부활절 영화같은거를 제외하면요. 이렇게 초콜릿 영화 얘기하니까 다시 또 보고 싶어지네요.”

영화는 중년의 어느 여자(비엔)가 시골마을에 와서 초콜릿 가게를 차리면서 시작된다. 시골마을은 아담하고 따듯한 느낌을 주는 풍경을 가지고 있고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소박하지만 저마다 문제와 갈등을 겪고 있다. 

비엔이라는 낯선 여자의 등장으로 마을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마음에 다가가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경계하고 모함하는 사람도 있다. 왜냐면 그들이 살아오던 방식을 거부하고 문제해결을 하려는 비엔의 진취적이고 합리적인 생각과 행동이 시골마을에선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고 되려 시골마을에 문제를 일으키는 골치덩어리 이방인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 폐쇠적인 마을에서 비엔은 끊임없이 초콜릿을 팔면서 문제의 핵심으로 뛰어든다. 심지어 자기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기위해 애를 쓴다. 그리고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마을 사람들은 조금씩 변화하고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다. 초콜릿이 입안에서 살며시 녹아들며 쓴맛과 단맛 그리고 우유처럼 부드러운 느낌이 입안에 퍼지며 목젓을 타고 미끄러져 넘어가듯 그렇게 부드럽게.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프랑스가 상징하는 세련됨과 자유분방함과는 상반되는 폐쇠적이고 고집스러우며 촌스러운 마음 사람들을 보면서 영화의 배경이 프랑스가 아닌 아일랜드 시골마을이라고 해야 더 적절할 것 같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다정하고 따듯하지만 고집스럽게 자신의 삶의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으려하는 아이리쉬 시골마을과 닮았기 때문이다.  

비엔은 어느 날 찾아온 떠돌이 조니 뎁과 사랑에 빠지고 이제 다른 사람의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엔 마을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그러나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멋쟁이 조디 뎁이 나와서도 아니고 영화의 내용이 아일랜드 시골마을 풍경과 닮아서도 아니다. 낮선 땅에서 살면서 한번쯤은 스쳐가는 남자와 뜨거운 사랑에 빠져 봤으면 하는 중년의 로망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바람때문이다. 

바람….그것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나! 영화에서 비엔은 바람부는 어느 날 마을을 떠나려고 한다. 좁은 비탈길 마을 어귀를 감아돌며 비엔의 집 창으로 씨잉 들어오는 바람.




아일랜드는 유럽에서 가장 구름이 많은 나라이며, 때문에 바람도 많이 불고 비도 많이 오는 나라다. 하지만 비 많이 오고 바람 많이 부는 아일랜드에서 조차도 초콜릿 영화 속의 그런 바람은 흔하지 않다. 바람부는 날이면 간혹 그 바람을 타고 한국에 가곤 한다. 눈을 감고 힘을 뺀후 고개를 약간 들고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이 바람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다. 그곳까지 그렇게 가려면 바람이 너무 약해도 안되고 너무 세도 안된다. 그리고 큰 바람도 안되고 아주 작은 바람도 안된다. 초콜릿에 나오는 마을 골목을 가득 매운 정도의 폭과 높이로 쉬잉~하며 적당한 각도로 위로 치솟듯 올라가는 바람.


비도 눈도 맑은 햇살도… 그 무엇의 자연도 나를 먼 이국땅 아일랜드에서 고향땅 한국으로 나를 데려다 주지 못하지만, 그 바람만은 언제든 나를 감싸 앉고 엄마가 있고 맛있는 김치가 있는 한국에 나를 데려다 줄 것 만 같아서 딱 그만큼의 바람부는 날을 얼마나 기다리며 살고 있는가. 그래서 나는 초콜릿 바람이 그토록 반갑고 감동적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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