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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r 02. 2018

맥나마라 아주머니의 '다름'

아일랜드 연가 4

제목 : 아일랜드 연가 4 - 맥나마라 아줌마의 '다름'


맥나마라 아주머니는 나를 알게 된 후로부터 한국에 관한 뉴스가 나오면 귀담아 들어 뒀다가 나에게 꼭 잊지 않고 전해준다. 세월호 사건이 있을때도 그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며 위로를 해줬고, 최근 자주 일어나는 북한관련 뉴스도 내가 TV에서 본 것 보다 훨씬 자세히 알려주고, 궁금해 하기도 한다.


어느날 아침,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오전 일찍 헬스클럽에 운동을 갔다. 가끔 걷기도하고 사이클도 하지만 주로 수영을 한 후 사우나를 즐기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일주일이면 한번이상은 맥나마라 아주머니와 같은 시간에 사우나를 하게 된다. 우린 수영복 차림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뉴스를 얘기하기도 하고, 아이들 얘기를 하기도 한다. 그날의 뉴스는 맨부커상 수상작인 ‘채식주의자’였다. 나도 뉴스를 봐서 알고는 있었지만 맥나마라 아주머니가 이렇게 문학에 관심이 많은줄은 몰랐다. 한달이면 서너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는 아주머니는 ‘채식주의자’가 너무 궁금해서 주문한 책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노라고 흥분하였다.


나에게 미리 서평을 기대하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나는 한강 작가의 다른 작품 ‘흰’을 이미 먼저 읽고 난 후, ‘채식주의자’는 읽기도 전에 흥미를 잃은 상태였다. 그러나 맥나마라 아주머니가 다음에 만나면 책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것이 분명하기에 한국에 있는 동생에게 부탁하여 채식주의자를 우편으로 받아 읽기 시작했다. 아니나다를까, 며칠후 맥나마라 아주머니를 인솜니아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채식주의자 이야기로 한참의 수다를 이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나 맨부커상 같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문학작품에 대해서는 후한 평가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의외로 그런 작품들로부터 감동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채식주의자 역시 그랬다.

“‘채식주의자’를 읽고나서 나는 감동도 감정도 아닌, 그냥 화장실에 가서 토했어요.”


난 그랬다. 물컹하고 미끄덩한 뭉클한 것이 위장을 거슬러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것 같은 감정, 그것은 감정을 넘어서 현실로 이어졌고 그날 아침 음식을 많이 먹지 않았던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맥나마라 아주머니에게도 여과없이 이런 내 느낌을 이야기 해 주었다. 그랬더니 아주머니는

“그래, 어쩌면 문학상은 ‘다름’의 다른 표현일지도 몰라. 난 한달이면 서너권이상의 책을 읽고 있고, 지금보다 젊었을땐 훨씬 많은 책을 읽었지.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어떤 책을 읽었더라…기억나지 않는 책이 많아. 읽은 책들 중에서 확실하게 기억할 수 있는 책들의 대부분은 무슨무슨 문학상을 받은 그런것들이 많다는 걸 나도 세월이 많이 지나고야 알게되었어. 그렇더라구. 읽을때 재미있거나 감동적인 것, 그런것이 기억에 남는건 아니더라구. 다른 것들과 다른 것! 그것이 기억에 더 확실하게 남게 되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감정을 일으키는 것이고 그것을 시도한 작가와 작품에게 상을 주는게 아닐까 싶어. 그래서 문학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작가나 작품을 비판하기도 하고 이렇쿵 저렇쿵 평가하는거잔아. 어쨌거나 남들이 하지 않은 새로운 시도에 대해 존경할 필요는 있는 것 같아. 그런면에서 나도 채식주의자가 감동적이지는 않았더라도 ‘새로운 시도’였음에는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아.”


‘다름’을 이야기하는 것.


며칠전 마광수 작가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문학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SNS를 떠들썩하게 했다. 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작가이다. 지금생각해 보면 세월을 앞서 만나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정상을 비정상으로 평가받는 사람들이 꽤 많다.아일랜드의 대표작가 ‘오스카 와일드’역시 시대보다 앞서간 말과 글로 세간의 집중을 받았고 동성연애를 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혀야 했다. 20세기에 이해할 수 없던 일들이 21세기엔 평범한 일상이 되고 있는 일들이 꽤 많다. 그땐 달랐기 때문에 비판 받아야 했던 것들이 지금은 평범하거나 선진적이라 평가받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문학과 예술이 ‘다르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것은 어쩌면, 평범함을 강요하고 그것은 우리가 그토록 열망하는 세계적인 문학으로 인정받는 길을 애초에 차단하는 것이라 설명할 수 있다.


맥나마라 아주머니의 말처럼, 그것이 달랐기 때문에 자극이 되고 그 자극은 기억이 되고 또 그 기억이 새로움에 대한 창조로 인정받는 세계에 살고 있다. 오스카 와일드가 그랬고, 마광수가 그랬고 또 이곳 문학의 숲 또한 그러하길. 그 숲에서 한걸음 떼기 시작한 나 역시도 조금은 다름에 대한 시도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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