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 Mar 02. 2018

아일랜드 4일간의 만남 1편

아일랜드 연가 5

제목 : 아일랜드 연가 5 : 아일랜드 4일간의 만남 -1편-


지난 겨울부터 주고받은 이메일이 족히 50여통을 넘을 것이다. 처음엔 일주일로 시작해서 육일, 오일…하더니 지난 5월이 지나서는 급기야 4일로 줄어 들었다.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으로 시작해서 서쪽 끝 우람한 절벽이 있는 대서양 바다를 찍고 아일랜드 북서쪽 예이츠 시인의 마을 슬라이고(Sligo)를 지나서 지도 가장 끝에 있는 데니보이 마을 데리(Derry), 지질학 역사책 같은 자이안트 코즈웨이와 타이타닉의 슬픔을 상징하는 ‘벨파스트(Belfast).


지도의 거의 반 이상을 이동해야 하는데 고작 사일이라니…..그나마도 막판에는 일정을 3박4일로 줄여서 첫날 아침 10시 넘어서 도착해서 마지막 4일째 되는날 저녁 항공편으로 출국이나 여행시간만 따지면 삼일반나절 정도이다. 그리고 그들은 두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60대, 그중 절반은 70대의 연로하신 분들이라며 여행사에서는 이런저런 고려사항과 주의사항을 수십통의 이메일로 보내왔다. 소화제랑 두통약, 근육통에 붙이는 파스, 허리압박 벨트까지 집에 있는 약이나 응급시 사용할법한 것들을 가방 가득 챙겼다. 어르신들 17분을 모시고 아일랜드 여행을 안전하게 하는 것이 나의 이번 임무이다.


다른때 같으면 알고 있는 역사도 다시한번 정리하면서 사건별 연도도 외우고 지질학적 현상에 대한 전문서적도 읽어보고 시한편 정도는 그냥 암송할 수 있도록 외워두곤 하는데 이번엔 안전문제에 대한것만 생각했다. 그리고 이동 구간에 갈 수 있는 화장실과 휴게소를 체크하는 일도 버스 운전기사와 상세히 의논하였다.


십여년전에 70세 전후한 어르신들 20여명을 모시고 비슷한 일정을 한 일이 있었다. 사실 한국여행객의 경우 같은 기간에 외국인들이 진행하는 여행일정의 두배를 하는 것이 다반사라서 놀랄만한 일정도 아니었다. 


시차가 맞지 않은 상황이라 어른들께서는 새벽 2-3시면 기상하시고 7시부터 시작되는 호텔 아침식사가 너무 늦다며 침실에서 비상식량으로 가져오신 햇반이나 간식을 드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9시면 버스가 출발하는데 10시도 되지 않아서 간식삼아 티타임을 하자고 하시기도 했다. 이곳 오전 10시면 한국으로는 저녁 6시즘 되니까 시장하실만한 시간이기도 하다.


아일랜드 고속도로에는 우리나라처럼 화장실이나 휴게소가 잘 마련되어 있지 않다. 최근에는 여러곳 설치가 되긴 했지만, 십여년전만해도 간혹 보이는 주유소를 이용해야만 했다. 보통 2시간에 한번은 운전기사가 휴식을 취해야 하는 것이 규정이라서 2시간즘 드라이브를 하면 20분즘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그땐 규칙과 상관없이 1시간도 안되서 한번씩은 휴식을 취해야 했다. 식사후 버스를 타서 그러신시 체하신 분도 계시고 화장실을 이용해야 되는 횟수도 빈번했다.


그러다보니 9시 출발해서 12시 30분즘 도착해야 되는 거리를 두시간 이상 지연되어 3시가 다 되서야 도착했으니 일정에도 차질이 있고 규칙을 잘 지키시던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노여워하신것이다. 그뿐인가! 어느 한 노신사께서는 당신께서 당뇨가 있어서 규칙적인 식사를 하셔야 하는데 점심식사가 늦어졌다며 얼마나 호통을 치시던지. 단호하지 못했던 나의 진행과정과 준비부족으로 빚어진 그때의 사건이 나에겐 큰 트라우마가 되었다. 무엇보다 여행오신분이 나중에라도 아일랜드를 떠 올릴 때 ‘Happy’했다라고 생각하게 하자라는 나의 목표와 소신, 철학같은것이 다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때의 경험이 이번엔 교훈이 되어 잘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지도를 펼쳐놓고 꼼꼼히 챙긴걸 또 챙기고 또 챙기고….드디어 공항에 도착할 시간.

항공편은 사십분이나 지연되었다. 안그래도 빠듯한 일정인데 큰일이다 싶었다. 제발 기내에서 편찬으신분들 없이 모두들 건강한 모습으로 나오시길 기도하며….여행사 표지판을 들고 서 있는데 한참만에 우르르 나오는 분들은 내 또래로 보이는 사오십대의 한국인들이 아닌가. 아니 내가 받은 정보가 잘 못 된 것인가? 여행사에서 아무래도 착각했던 모양이다 싶으면서도 그토록 열심히 준비한 과정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냥 평소 하던대로 책이나 읽을걸 싶었다.


만나자 마자 연세를 물을 수도 없고, 저분들의 연세를 어떻게 알아낸다? 하고 있는데,

마침 한분이 물으신다.

“써니씨는 아일랜드에 얼마나 계셨나요?”

발랄하고 명랑한 목소리의 가장 젊어보이는 여자분이셨다.

약간 곱슬한 머리를 어깨 밑까지 기르고 붉은 색 코팅도 해서 만화에 나오는 캔디같아 보이는 분이셧다.

“아, 네, 저는 이제 내년이면 20년이 됩니다.”

“아, 그래요, 얼마 안살았구나. 어때요 아일랜드?”

20년이 다되가는데 얼마 안살았다고요? 어머나…처음이다. 아일랜드에 온지 10년이 넘어가면서 부터는 누군가 이렇게 물으면 년수를 대답하면서도 나도 놀라곤 하는데 얼마 안살았다고 하니 대체 이분들은 얼마나 미국에 사신걸까.

“선생님께서는 이민가신지 얼마나 되셨나요?

“여보, 우리 얼마나 되나? 사십년은 조금 넘었지? 그런거 같네. 2017년이니까 42년인가보다.”


일행중에 가장 짧은 이민생활자가 35년이었고 대부분은 40년을 훌쩍 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여행사의 정보대로 대부분 60대후반, 70대 초반의 어른들이셨다.

얼마나 건강관리를 잘 하셨던지 나만 내 나이에 맞지 않게 늙어보이는 것인가 싶을 정도였다. 하긴 지난번 아일랜드에 방문하셨던 이향아 시인 내외께서도 얼마나 정정하시고 사물과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이 깊으셨던가. 지난 며칠을 고민고민하던 내가 어리석었던것이지, 세월이 얼마나 좋아지고 개개인마다 자기관리도 잘 하시는데 나만 이십년전에 머물러 당시의 어르신들 모습만 상상했던 것이 우스웠다.


공항을 빠져나오는 우리들의 트렁크 굴러가는 소리가 씽씽 쒱쒱 활가차기만 하다. 내 가방에 들어 있는 비상약은 이제 꺼낼 필요도 없겠구나. 더블린에서 시작하는 여행 첫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 2편에 계속-


작가의 이전글 맥나마라 아주머니의 '다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