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백화점의 몰락 혹은 변신
1. 일본 백화점의 수난사
일본은 미츠코시, 타카시마야, 이세탄, 다이마루, 소고, 세이부, 도큐, 한큐, 킨테츠와 같은 다양한 백화점 브랜드가 있는 명실상부한 아시아의 백화점 선진국이다. 이런 백화점들은 에도시대의 상인들을 뿌리로 하거나 19-20세기의 경제발전기에 태어나 현대 일본 유통산업의 한 획을 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유통업 발전사에서 백화점의 존재를 빼고 설명할 수 없듯 일본도 그러하다.
하지만 버블붕괴 이후 백화점은 거의 한 세대에 걸쳐 끝없이 수난사를 겪고 있으며 이러한 그들의 수난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신주쿠의 터줏대감 중 하나인 오다큐 백화점이 최근 폐점하고 전면 리뉴얼을 시작했다. 오다큐는 도쿄도의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오다큐 전철이 운영하는 백화점 체인점이다. 일본의 백화점 회사들은 역과 선로 부근에 많은 토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이용하여 유통업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다큐 백화점 역시도 그런 비즈니스 모델의 일환이다.
이 오다큐 백화점은 오래전부터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중후한 이미지로 사랑받아왔는데, 문제는 폐점 후 예전처럼 백화점으로 재개관할지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백화점이 아닌 쇼핑몰 형태의 재개관이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백화점이나 쇼핑몰이나 그게 그거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비즈니스 모델로서는 차이가 있다. 백화점의 경우 물건의 소싱을 백화점 회사가 담당하고 판매만 매장의 브랜드 회사에 위탁하는 형태이다. 대신에 이들에게 판매 수수료를 지급한다. 매장에 대한 장악력은 높지만 반면에 백화점 회사가 재고부담을 지는 구조이다.
반면 쇼핑몰은 훨씬 간단하다. 쇼핑몰 운영 회사가 입점 업체들에게 공간을 빌려주고 월세만 받는 것이다. 그리고 매출로 인한 이익과 재고부담은 모두 입점업체가 진다. 이걸 보면 백화점과 쇼핑몰이 어떤 수익구조가 있을지, 그리고 업체들이 점점 어느쪽을 선호할지는 명약관화하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뒤에서 지겹게 서술하겠지만 오다큐는 지하 식품관(데파치카)과 식당가가 상대적으로 약한 이미지가 있었다. 아마 오다큐 전철은 이러한 단점을 리뉴얼을 통해 극복하고 싶을 것이다.
오다큐는 양반이다. 왜냐하면 비슷한 시기 옆동네 시부야에서도 도큐 백화점과 도큐 플라자가 리뉴얼을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백화점 업계의 굴욕으로 꼽히는 사건은 세이부 이케부쿠로의 수난이다.
듀라라라!와 같이 이케부쿠로를 배경으로 하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드라마를 보면 반드시 나오는 광경이 세이부 역 앞에 가로로 길게 늘어선 병풍 같은 백화점 건물인데, 이것이 바로 세이부 백화점 이케부쿠로점이다. 이 백화점은 맞은편의 토부 백화점과 함께 오랫동안 이케부쿠로의 랜드마크로 군림해 왔다.
세이부 백화점 역시 도쿄도 서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노선을 갖고 있는 세이부 전철 계열 회사로 출발했다. 세이부 그룹의 유통부문은 예술적 감각이 높았던 오너 경영자의 취향을 타고 로프트, 패밀라마트와 같은 시장을 선도하는 사업을 론칭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이부 그룹의 경영이 기울고 버블붕괴 이후 유통업계의 구조적 변화는 세이부 그룹에도 시련으로 다가왔다. 세이부 백화점은 마찬가지로 어려움에 빠진 소고 백화점과 합병했다. 하지만 이것도 모자라 세븐일레븐으로 유명한 유통재벌 세븐아이홀딩스에 매각되었다.
이것은 일대 혁명과도 같은 사건인데, 명품샵이 즐비하고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콧대 높은 유통재벌이 마트와 편의점 사업으로 몸집을 불린 세븐일레븐과 이토요카도의 모회사에 잡아먹힌 것이다. 마치 웹소설에 나온 몰락한 귀족 영애가 자수성가 집안의 도련님에게 시집을 가는 것 같은 그런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세이부의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세븐일레븐을 키워낸 전설적 경영자 스즈키 토시후미는 옴니전략을 내세우며 세븐일레븐과 세이부 백화점, 세이유와 같은 산하 유통업체들을 하나로 묶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했으나 이는 소고-세이부 백화점을 살리는 데 충분하지 않았다. 세이부 지하에 세븐일레븐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진출하는 등 협력을 꾀했으나 결과물을 내지는 못했다.
사실 세븐일레븐 역시 해외 자본에 의한 맹렬한 공격을 받고 있었다. 해외 자본은 세븐아이홀딩스가 편의점 사업에만 집중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들이 보기에는 그들의 조상인 이토요카도(대형마트 체인으로 일본 세븐일레븐은 이토요카도가 미국 사우스랜드사의 브랜드 세븐일레븐을 일본에 출시한 것이었다. 이후 일본 세븐일레븐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이들은 조상이었던 이토요카도와 함께 세븐아이홀딩스 그룹을 만들었고, 미국 모회사 사우스랜드를 잡아먹었다.)와 소고-세이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혼란의 와중에서 현대 편의점 비즈니스의 문법을 확립한 스즈키 토시후미 회장은 물러났고 세븐아이홀딩스는 소고-세이부 백화점을 전자양판점 요도바시카메라와 외국 펀드의 연합에 매각했다.
요도바시카메라는 어떤 회사인가? 사실 일본 여행을 해본 관광객들에게는 업계 1위 전자양판점 체인인 야마다덴키(야마다전기)에 비해 훨씬 낯익은 회사일 것이다. 요도바시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전자랜드처럼 전자제품을 전문적으로 파는 오프라인 쇼핑센터이다. 교외지역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 공격적으로 출점하는 경쟁사인 야마다덴키와 달리 요도바시카메라는 유동인구가 몰리는 대형 역 주변에 압도적인 크기의 초거대 쇼핑센터 지어 입주하는 선 굵은 입점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로 인해 아키하바라, 신주쿠, 우메다, 하카타와 같은 대도시권의 유동인구와 관광객이 많은 역 주변에 성채와 같이 거대한 지점을 지어 자리를 잡고 있으며 전자제품 이외에도 서브컬쳐 굿즈, 의류, 식당가까지 구비하면서 손님을 끌어모으고 있다. 아마 아키하바라나 우메다를 자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라면 꼭 전자제품이 아니더라도 건프라나 식당가 방문을 위해 한번쯤 들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참고로 건프라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아키하바라 요도바시 카메라를 추천한다. 내가 건덕후가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정도로 매니악한 라인업을 갖춘 곳은 흔치 않다. 제타건담의 티탄즈 양산기체까지 보았으니 말이 필요없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코로나 이전 기준이어서 지금은 또 어떨지 모르겠다.)
요도바시카메라는 사실 이케부쿠로와 악연이 있다. 요도바시의 또 다른 라이벌은 빅카메라이다. 빅카메라도 아마 한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익숙할 텐데 이들 역시 요도바시 카메라처럼 역 근처에 대형 지점을 지어 입점하는 전략을 쓴다. (개인적으로 신주쿠에 위치한 빅카메라와 유니클로의 콜라보 쇼핑몰인 ‘빅쿠로’를 추천하는데 유니클로 중에서 물건이 제일 다양하고 많은 곳이 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빅카메라는 이케부쿠로에서 요도바시 카메라에게 한방 먹였는데 왜냐하면 이곳에는 빅카메라는 요도바시 카메라보다 먼저 이케부쿠로 한복판에 입점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세이부 이케부쿠로의 맞은편) 그렇지만 요도바시카메라는 아직까지도 이케부쿠로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데, 대형 역 부근은 싹쓸이하는 요도바시 입장에선 아픈 손가락 같은 곳이 이케부쿠로이다. 이케부쿠로는 사이타마 일대의 베드타운 거주자들이 쇼핑과 유흥을 위해 몰려드는 도쿄의 대표적인 부도심으로 만화 듀라라라!의 중심 배경이자 그 비스크 돌은 사랑을 한다.의 장소적 배경 중 하나이다. (이 작품들을 보면 이케부쿠로가 도쿄 베드타운 지역의 10-20대 청년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와닿을 것이다.)
옴니채널의 일환으로 백화점을 활용하려 한 세븐아이홀딩스와 달리 요도바시카메라는 아예 이케부쿠로에 지점을 낼 요량으로 소고-세이부를 매수한 것이다. (물론 이것이 매수 이유의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한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돈은 쩐주 노릇을 하는 외국계 펀드가 대지만 누가 보아도 요도바시카메라가 유통제국으로 도약하려는 움직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번에는 몰락영애가 자수성가 집안이 아닌 용병대장이나 드워프 왕자와 결혼하는 수준의 충격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도바시카메라는 빅카메라에게 한방 먹이기 위해서 세이부 이케부쿠로점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 즉, 백화점 매장, 그 중에서도 간판인 1층에 입점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혁명이었다.
왜냐하면 상식적으로 백화점의 1층은 럭셔리 화장품과 액세서리로 채워지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가 전자제품 매장을 입점시킨다는 것은 세이부 입장에서는 정체성을 지우는 것과 마찬가지인 일이다. 이것은 단순히 세이부의 정체성의 문제 머무르지 않고 이케부쿠로 전체의 이미지와도 관련이 되는 일로 노조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도 요도바시의 전략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2025년 5월 1일 기준으로 아직 요도바시가 어떻게 할지는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아마도 요도바시카메라의 매장이 1층에 일부 입점하는 것으로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어느 쪽이건 넓디넓은 세이부 이케부쿠로의 1층 전체를 백화점이 럭셔리관으로 쓰는 일은 없을 듯하다. (나는 실제로 이곳에 가 보았는데 상상 이상으로 세로로 긴 매장이다.)
2025년 현재 세이부 이케부쿠로점은 리뉴얼 중이고 아마 도시락 중심으로 식품관을 더 보강하고 요도바시카메라가 일부 입점한 형태로 리뉴얼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일본에서는 럭셔리 의류와 화장품, 액세서리 위주의 전통적 백화점 영업은 트렌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백화점 산업의 수난은 이 두 회사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일본 전역에 걸쳐 백화점 업체의 구조조정이 끝없이 계속되고 있다. 지방의 특정 현, 특정 지역에서만 영업하는 로컬 백화점들이 연이어 문을 닫으면서 이제는 1개의 현에 백화점이 1곳도 없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남은 백화점들은 하나둘씩 합병하고 있다.
나고야의 사모님들이 사랑하는 마츠자카야와 오사카의 전통있는 백화점 다이마루가 합병하여 제이 프론트라는 회사로 탈바꿈했다. (물론 마츠자카야, 다이마루 개별 브랜드는 유지) 오사카와 더불어 자긍심 높기로 유명한 나고야 상인의 대표주자인 마츠자카야도 변화하는 시대 앞에서 자존심을 접고 옆동네 오사카의 노포 백화점과 동맹을 맺는 길을 택했다.
한편 오사카 우메다의 터줏대감 한큐백화점과 한신백화점 역시 합병하여 H2O 홀딩스를 설립했다. 한큐는 오늘날 일본의 역 주변 부동산 개발 비즈니스의 문법을 확립한 선구자적 회사이다. 한큐전철의 전설적인 경영자 고바야시 이치조는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역을 만드는게 아니라, 역을 일단 만들고 유동인구를 유치하자는 기발한 역발상으로 부동산 개발의 문법을 완전히 다시 쓴다. 그의 이러한 전략 아래 오사카의 우메다역 부근에는 한큐백화점과 한큐3번가와 같은 쇼핑시설이 연이어 들어섰고 우메다역은 ‘역이 있어서 유동인구가 몰려드는’ 특이한 장소가 되었다. 지금도 오사카 관광객이 들르는 3대 거점(우메다, 난바, 텐노지) 중 하나인 우메다는 이런 식으로 개발된 것이다.
이러한 한큐전철 계열의 한큐백화점은 한신 타이거즈 야구팀으로 유명한 한신전철의 계열 백화점인 한신백화점과 손을 잡은 것이다. 긴키지역을 중심으로 영업하는 두 회사는 분명 경쟁관계였을 텐데도 업계 전체를 엄습하는 위기 앞에서 “후… 이번만은 임시 동맹이다!”를 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충격은 긴자의 터줏대감 미츠코시 백화점이 이세탄이 주도하는 형태로 합병하게 된 것이다. 일본 백화점도 우리나라처럼 브랜드별로 약간씩 지향점에 차이가 있는데 미츠코시는 럭셔리 이미지가 강하고 이세탄은 보다 대중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사실 미쓰코시백화점은 일본 백화점의 대표선수나 다름없다.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에도 나오는 전설적인 포목상인 ‘에치고야’의 비즈니스 모델이 바로 이 미츠코시 백화점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미츠코시는 지금도 일본 재계를 주름잡는 미쓰이 계열과도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미츠코시백화점은 일제시대에 서울에도 지점이 있었을 정도이다. (참고로 이곳은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본점 자리이다.)
하지만 고급품 위주의 미츠코시 백화점은 예전만큼의 실적을 내지 못하고 헤매다가 대중적 라인업과 지하 식품관으로 유명한 이세탄이 주도하는 형태로 합병을 결정했다. 이것은 24시간 국밥집이 궁중 숙수 출신의 전통있는 한정식집을 인수하는 수준의 충격이라 할 만하다.
망하는 업계의 특징이 살아남은 자들끼리 이리저리 합종연횡을 하는 것인데 일본 백화점 업계가 정확히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2. 맨 위층, 맨 아래층의 변신
그렇다면 살아남은 백화점들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
우선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일본 여행 팁을 한가지 전달해볼까 한다.
일본 여행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어디서 밥을 먹을지이다. 일본은 그야말로 외식 천국이다. 온갖 곳에 온갖 식당이 다 있으며 아무리 굳은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도 결정장애가 올 만큼 선택지가 다양하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현지인들의 믿을만한 입소문에 의지할 수도 없다.
타베로그나 구글맵스를 이용할 수 있고, 가이드북이나 유튜브 혹은 블로그를 이용해 맛집을 검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도 엄청나게 많은 자료양에 압도되어 내가 여행을 가는건지 기말고사 페이퍼를 쓰는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런 경우에 조금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크게 실패는 안하는 방법을 하나 제안하겠다.
그것은 그 동네에서 제일 큰 백화점 맨 위층에 있는 식당가에서 밥을 먹고, 제일 아래 지하층에 있는 식품관(데파치카)에서 디저트, 도시락, 선물을 사는 것이다. 일본 백화점들은 구색맞추기로 아무 가게나 입점시키지 않고 나름대로 전국적 혹은 지역적으로 유명한 레스토랑이나 식품업체를 입점시킨다. 따라서 백화점 MD들의 안목만 믿어도 가격은 조금 비싸겠지만 크게 실패는 안할 것이다. (백화점 식당가/식품관의 약간 비싼 가격은 정보 이용료라고 생각해라!)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다.
나는 군대에서 전역한 후 군대에서 모은 돈을 가지고 4박5일간의 일본 도쿄 여행을 간 일이 있었다. 당시 여행계획을 짜면서 마침 말도 안되는 할인행사를 하던 선샤인 이케부쿠로의 프린스 호텔에 숙박을 잡았다. 이케부쿠로 일대를 스캔해보니 토부백화점이라는 곳이 눈에 띄었다. 토부백화점은 민영전철회사인 토부전철의 계열사로 이케부쿠로의 서부지역에 토부백화점 지점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이미 오래되었지만 당시에만 해도 토부백화점 두 층을 헐어서 ‘스파이스’라는 이름의 식당가를 열었는데 여기에는 일본 각지의 유명한 레스토랑과 카페, 디저트샵이 차곡차곡 입점해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아닌데? 우리나라 백화점에도 식당가 있는데?” 이러면서 꼭 따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토부백화점의 식당가는 도쿄 시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엄청난 규모이다. 애초에 토부백화점 이케부쿠로점 자체가 엄청나게 큰데 거기서 무려 다섯 층!(11층부터 15층)을 헐어서 자리를 낸 것이다. 식당 목록만 봐도 무슨 푸드 테마파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가게들이 입점해 있다.
그 중 내가 방문한 것은 네무로 하나마루와 더불어 홋카이도에서 큰 인기를 끄는 회전초밥 레스토랑인 ‘트리톤’의 이케부쿠로 지점이었다. 마치 한국에 처음 회전초밥이 나왔을 때의 “이랏샤이마세” 하는 떠들썩한 분위기에 주문은 종이에 직접 표시해서 내는 뭔가 신뢰감 있는 방법으로 돌아가는 꽤 고급 스시집이었다. 분위기도 그렇고 맛도 꽤 만족스러웠다.
식당가 ‘스파이스’에는 2025년 5월 1일 현재 기준으로도 삿포로 스프카레의 최고 맛집 중 하나로 꼽히는 스아게, 오사카의 유명 오코노미야키 가게인 보테츄, 오랜 전통의 교토의 가이세키 요리 전문점인 미노키치, 도쿄 닌교초의 유명 스키야키 전문점은 닌교초 이마한, 대만의 샤오룽바오로 유명한 레스토랑 딘타이펑의 지점, 거대한 교자로 유명한 긴자 텐류 등 한국인인 나도 알 정도로 유명한 가게들이 다수 입점해 있다.
다음으로 내가 일본 여행에서 아직도 기억하는 아주 행복한 사건이 있는데, 군대에 입대하기 직전 나를 위로하려는 부모님의 도움으로 나는 오사카 여행을 1번 다녀온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난바에 위치한 타카시마야 오사카점을 방문했었다. 타카시마야는 메이지 유신 시대부터 있던 교토의 포목점에서 출발한(그러나 창업자는 시가현의 오미 상인 출신) 유서깊은 백화점으로 거센 백화점 재편의 와중에도 독자경영으로 업체이다.
아무튼 나는 그 타카시마야 백화점의 오사카 지점 지하의 식품관을 구경했다. 나는 공간감각이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길을 잘 잃는 편은 아닌데, 그 내부가 얼마나 넓고 복잡하면 여러 차례 길을 잃고 헤매다가 겨우 출구 밖으로 빠져나온 기억이 있다. 하지만 길을 잃고 헤매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온갖 종류의 음식을 다 구경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타카시마야가 업계 재편을 맞아 지하 식품관을 특별히 바꾼 것은 아니지만, 최근 일본 백화점 업계의 리뉴얼의 핵이 되는 지하 식품관(데파치카)을 설명하기 위해 이곳의 사례를 든 것이다. 일본의 지하 식품관은 일본 백화점 비즈니스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하 식품관은 음식을 실제로 먹는 식당가가 아니라(물론 이트인 코너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쇼핑객들이 그곳에서 포장된 음식을 구매해 집으로 돌아가는 곳이다. 따라서 냉장된 혹은 상온보관이 가능한 테이크아웃 음식을 중심으로 판다. 각종 반찬, 도시락, 디저트, 빵, 치즈, 와인과 같은 상품들이 주로 팔린다.
그런데 이정도는 우리나라에도 다 있는 일이라 그런가보다, 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내용물이다. 일본 데파치카에 입점하는 업체들은 말 그대로 일본에서는 거의 이름만 대면 아는 유명한 업체들이 입점한다. 백화점의 레벨이 높을수록 입점업체들의 수준도 높아진다. 물론 경영상의 이유로 분점을 안 내는 식당이나 회사들도 많지만, 백화점 지하 식품관에 가면 “아니 이런 가게가 여기에?”라는 느낌이 들 정도의 라인업이 들어와 있는 경우가 많다.
방금 말했던 타카시마야 오사카점의 지하 식품관은 입점업체가 너무 많아서 사이트에 검색조차 되지 않는다(이건 좀 개선해야 할 부분인 듯하다.). 지도를 보고 이게 얼마나 대단한 규모인지 말하자면, 우선 2025년 5월 1일 기준으로 오사카 난바의 유명한 경양식집 하리쥬, 일본 최고의 료칸으로 불리는 카가야(일본의 료칸은 수준높은 룸서비스 식사로 유명하다), 오사카 사람들의 영혼과도 같은 찐만두 가게인 551 호라이, 교토와 긴키 일대에서 노포(시니세) 양식당으로 유명한 그릴 캐피탈 토요테이의 델리코너, 위 토부백화점에도 입점해 있고 아마도 이곳에서는 도시락 위주로 파는 것 같은 가이세키 전문점 미노키치, 파티시에로 유명한 고베의 유명 푸딩 전문점 몰로조프(여기는 유리병을 공짜로 준다), 유서깊은 바움쿠헨 전문점 유하임, 초콜릿 전문점 몬 로와르와 같은 유명한 가게들이 줄줄이 입점해 있다. 그나마 외국인인 내가 익숙한 브랜드만 해도 이정도고 아마 현지인들이 보기에는 유명한 브랜드가 더 많을 것이다.
이러한 지하식품관(데파치카)은 과거에도 백화점의 명물이었지만 이제는 식품을 중심으로 리뉴얼을 시도하는 일본 백화점 업계의 핵심 엔진의 하나로 더 부상하고 있다. 실제로 새로 오픈하는 쇼핑몰이나 백화점일수록 이러한 식품관이나 지상 식당가의 비중은 더 높아지고 있다. 같은 타카시마야 백화점의 최고 플래그십 점포라고 할 도쿄 니혼바시 지점의 경우 몇 년 전 대대적인 리뉴얼을 하면서 신관을 열었는데 그곳에는 전문점과 더불어 엄청나게 많은 유명 식당을 입점시켰다. 언뜻 식당가의 라인업을 훑어만 봐도 아자부주반의 유명 경양식당 그릴 만텐보시, 긴자의 터줏대감 양식당 시세이도 팔러(우리가 아는 그 시세이도 맞다.), 그리고 키아누 리브스도 감탄했다는 서비스로 유명한 테이코쿠 호텔의 양식당 지점까지. 물론 이 업체들 중에서는 리뉴얼 전부터 입점해있던 업체들도 있었겠지만 일부 층에 몰아넣는 수준이 아니라 신관 전체를 식당가로 도배하는 이런 전략은 일본 백화점 업체들의 성장전략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3. 일본 백화점의 미래: 백가지 물건을 파는 가게에서 푸드몰로
내가 제목에서 근들갑을 떨기는 했지만 일본 백화점에서 럭셔리 매장과 의류 매장은 여전히 중요한 캐쉬카우이다. 지금 일본에서 가장 핫한 부동산개발 프로젝트인 도큐백화점 시부야점 재개발의 경우 LVMH 호텔을 입점시키고 어마어마한 럭셔리 라인업을 갖추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과거와 같은 방법은 아니다. 도큐의 시부야 재개발이나 다른 백화점의 리뉴얼 사례들을 볼 때 과거에는 백화점 럭셔리 매장에서 사람들 줄을 세우고 물건을 밀어내는 식의 비즈니스 모델이었다면, 이제는 어차피 사람들이 전문점에서 구입하는 비중이 높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백화점은 엄선된 소수정예 럭셔리 브랜드의 전시관과 같은 역할을 하고 구입은 다른 곳에서 하는 쪽으로 변화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예전처럼 1층부터 고층까지 층층이 여성복, 남성복, 스포츠웨어 등등을 밀어넣고 “한놈만 걸려라”는 식으로 장사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정예의 럭셔리 브랜드로 스타일을 선도하면서 나머지 공간에는 팝업스토어, 전시, 그리고 식품관과 식당가를 대거 증설하여 꼭 비싼 돈내고 옷 사러 오기로 마음먹은 3-40대 여성이나 중년 아저씨가 아닌 사람들도 백화점을 즐길 수 있도록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변화에는 ‘푸드’가 앞장서고 있다. 라이프스타일 제안이니 뭐니 해도 결국에는 객단가 1-2만원 정도의 소비자들이 들를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은 식당가와 식품관이다. 애초에 이런 불경기 시대에 다른 물건들은 너무 비싸서 자주 구입하기 어렵지만 음식은 그렇지 않다. 일주일에 2, 3번이라도 올 수 있는 것이 식품관이다. (일본 데파치카와 식당가는 편의점이나 스트릿푸드에 비해선 비싸지만 으리으리한 디자인과 위치를 고려하면 그렇게까지 비싸진 않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백화점 입장에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버블붕괴 시대의 장기침체를 겪으며 일본 유통업계에서 두드러진 흐름은 온갖 물건을 다 파는 백화점에서 전문 상점으로 무게의 중심이 옮겨갔다는 것이다.
전문 상점이라는 애매한 표현을 써서 미안하지만, 이건 우리들에게도 익숙한 현상이다. 유니클로, 무인양품(무지루시료힌), 이케아… 우리도 옷이나 가구를 살 때면 백화점이 아니라 점점 이런 곳을 찾지 않는가? 일본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일본에는 일본판 이케아인 니토리, 중저가 의류 전문샵인 시마무라, 앞서 설명한 전자 양판점 요도바시카메라, 빅카메라, 야마다전기 등등 백화점을 위협하는 전문점은 더 많다. 백화점의 한정된 매장보다는 이런 전문점들 쪽이 물건 라인업도 더 풍부하고 가격도 싼 경우가 많다.
거기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제는 E 커머스, 즉 인터넷 쇼핑몰의 공습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일본에서도 이제 점점 인터넷 쇼핑몰로 물건을 사는 것이 뉴 노멀이 되고 있다. 일본의 재팬 아마존은 딱 우리나라의 쿠팡 포지션, 그리고 라쿠텐이 네이버쇼핑의 포지션이다. 아마존과 라쿠텐을 중심으로 일본에서도 온라인쇼핑이 오프라인매장을 거세게 압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백화점이 차별화를 꾀할 수 있는 곳이 그나마 라이프스타일 제안, 아니 까놓고 말해서 푸드이다. 오감이 전부 만족되는 메타버스 세계가 등장하지 않는 다음에야 온라인 쇼핑몰이 백화점처럼 유명 맛집이 늘어선 식당가나 지하 식품관을 운영할 수는 없다. 물론 전문점은 조금 다른데 요도바시전기나 빅카메라, 이케아처럼 내부 식당가 및 푸드코트를 마련하는 경우도 있지만 컨셉 자체가 약간 다르다. 적어도 푸드만큼은 백화점이 그나마 해볼 싸움인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그리 쉬운 싸움은 아닐 수 있다. 백화점이 온라인 쇼핑몰이나 전문샵은 푸드로 이겨도 이번에는 비 백화점계 쇼핑몰의 도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역, 오사카역, 하카타역과 같은 허브 JR 역에는 항상 JR 계열의 거대 쇼핑몰이 들어서 있고 이곳에는 백화점을 능가하는 강력한 식당가와 식품관 라인업이 입주중이다. 게다가 일본 우정그룹 역시 KITTE(일본말로 우표를 뜻하는 ‘킷테’와 ‘와줘’ 라는 뜻의 ‘키테’의 이중적 의미가 담긴 조어)라는 브랜드의 쇼핑몰 사업을 전개하는데 이곳 역시 식당가가 만만치 않은 수준이다. 게다가 도큐, 오다큐와 같은 동료 백화점들 역시 점차 세컨드 브랜드의 쇼핑몰을 런칭하고 있다.
4. 백화점의 끝은 어디인가?
우리나라에서는 럭셔리에 대한 강력한 선호 덕분에 여전히 백화점이 강력한 힘을 떨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럭셔리에 대한 인기가 사그라든다면? 그 이후의 백화점은 어떻게 될 것인가?
물론 일본과는 같은 형태는 아닐 것이다. 한국인들의 미식에 대한 취향은 일본과 분명히 다르고 요식업계의 판도도 다르기 때문에 일본식의 백화점의 푸드몰화(化)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일본 백화점 업계의 움직임은 수요감소로 인해 위기에 처한 유통업계가 어떻게 변신을 시도하는지에 대한 많은 영감을 준다고 생각한다.
# 이 글은 일본경제신문 온라인판의 2023년 2월 7일자 기사 “「ヨドバシ百貨店」の衝撃 小売業界の未来占う”의 내용을 참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