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정말 노동의 미래인가?

레스 푸블리카 (2)

by 이그나티우스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한창 ‘Lean In’이라는 책이 유행했었다. 커리어에 대한 여성들의 헌신을 옹호하는 이 표현은 2010년대를 요약하는 하나의 바이브가 되었다. 섹스 앤 더 시티에 나오는 것과 같은 도시를 배경으로 활약하는 젊은 여성 프로페셔널은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러한 정서는 단순히 바이브를 넘어 정치적인 내러티브를 형성해왔다. 그것은 바로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바로 교육받은 여성들의 시대라는 것이다. 특히 노동시장은 이제 현대사회에 ‘걸맞는’ 여성들이 지배할 것이며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남성들은 ‘도태’될 것이라는 무서운 경고가 뒤따랐다.


내러티브는 단순하고 설득력이 있다. 전쟁과 정치적 폭력이 점차 사라지는 현대 사회에서는 단순히 근력의 힘에 바탕한 남성의 능력과 리더쉽은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다. 보다 지적이고 공감능력이 있는 여성의 능력과 리더쉽이 현대사회에는 더 적합하며, 실제로도 젊은 여성들은 교육과정에서 남성들을 이미 앞서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는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남성우월주의의 잔재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그런 구시대적 잔재들을 일소하고 현대사회에 더 적합한 스킬셋을 제공하는 여성들에게 보다 기회를 준다면, 여성들은 남성들을 제치고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기여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물론 이러한 내러티브가 현실을 어느 정도 설명하는 측면은 있다. 현재 여러 서구 선진국에서는 학업성취도 등 전반적인 인간계발 면에서 여성들이 남성들을 점차 앞서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젊은 남성들이 ‘잃어버린 세대’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이런 진단을 보면 마치 남성이라는 성별 자체가 구시대의 유물이 아닌 것인가, 라는 착각마저 들 정도다. 확실히 우리나라에서도 9급공무원이나 초등학교 교사와 같은 직군에서는 이제 여성들이 남성들을 앞서는 결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여성의 약진이라는 내러티브가 꼭 맞아떨어지지 않는 측면도 있다.


우선 여성들의 사회진출은 안타깝게도 특정 분야에 치우쳐 있다. 여성들은 주로 서비스업에 많이 진출하며 그 중에서도 화이트칼라 직종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또 실제로도 그런 분야에 많이 진출한다. 물론 간호, 판매, 돌봄 등의 서비스업이긴 하지만 화이트칼라라고 부르기는 애매한 분야도 있지만 그 외에 광고, 홍보, 인사, 노무, 경리, 법무, 교육, 일반행정, 사무보조 등 여성들이 선호하는 많은 직군이 화이트칼라에 속한다. 반면 생산, 설계, 기술, 품질관리, 설비 등 이른바 ‘블루칼라’나 ‘기술직’이라고 불리는 분야에 있어서는 남성들의 비율이 눈에 띄게 높으며 여성들의 진출은 아직까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물론 이것은 여성들의 선호 문제일 수도 있고, 사회적 차별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이 글의 관심사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아직도 특정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지적해야 할 부분은 1980년대 이후 꾸준히 진행된 신자유주의의 물결과 최근 진행되는 AI의 물결이 정확히 겨냥하고 있는 분야가 여성들이 집중적으로 진출하는 화이트칼라 직종이라는 것이다.


경영합리화, 구조조정, 아웃소싱과 같은 키워드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경영관리와 행정지원 분야의 슬림화를 끝없이 요구한다. 경제신문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XX기업에서 관리직 000명 감원”이라는 뉴스가 마치 전과처럼 실린다.


그리고 이러한 신자유주의 경영전략에 화답이라도 하듯 2020년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AI 트랜스포메이션의 물결은 이러한 화이트칼라 직군의 사무를 자동화하는 데 필요한 툴킷을 제공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AI는 자료수집, 기안, 패턴분석, PPT 슬라이드, 교정과 같은 기존 사무직의 일거리들을 굉장히 빠르고 저렴하게 대체하고 있다. 또한 ‘에이전트’라고 불리는 사무처리용 자동화 툴은 사실상의 비서업무를 대신하는 수준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백오피스 분야의 자동화가 사실상 AI업체들이 노리는 미래 일거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분야가 정확히 야심찬 고학력 여성들이 ‘Lean In’ 하는 분야들이다. (물론 간호사와 판매 등 비-화이트칼라 서비스직의 경우에는 이러한 자동화의 물결이 다소 비켜나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는 1가지 변수가 더 있는데, 그것은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교육 분야의 쇠퇴이다. 유아 및 초중등 교육은 전통적으로 고학력 여성들의 노동력을 흡수하는 중요한 시장이었다. 하지만 연간 출생아 수가 20만명대까지 떨어지면서 이 분야들은 직격탄을 맞을 예정이다. 물론 영어유치원이나 의대입시반과 같은 고급화 전략으로 버티기 작전에 들어가겠지만, 그것이 얼마나 통할지는 두고 봐야 할 문제이다.


여성에 대한 고용 증진 정책을 지지할 것인지, 아니면 보편적 평등원칙에 의거하여 정책을 설계할 것인지는 이 글의 관심사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무비판적으로, 심지어는 반 페미니즘 진영에서조차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여성이 노동의 미래다.” 라는 내러티브가 정말로 사실에 부합하는지를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 일 연재
이전 01화왜 한국의 보수는 트럼프에게 끌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