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에서 유권자 1명의 정치적 권력은 동일한가?

레스 푸블리카 (3)

by 이그나티우스

이제는 한풀 꺾이긴 했지만 2020년대 초반 한국정치를 주름잡았던 2개의 전략이 있다. 하나는 세대포위론이다. 보수성향이 강한 2-30대 남성과 70대 이상의 노령 세대가 연합하여 진보성향의 4-50대를 포위한다는 것이다.


반면 이와는 정 반대의 ‘역 세대포위론’(내가 임의로 붙인 이름임) 역시 제시되었다. 진보성향이 강한 4-50대 기성세대가 진보성향이 강한 2-30대 여성들과 연합하여 정치적 헤게모니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후자는 전자만큼 공공연하게 설파되지는 않았지만, 주요 진보정당이 선거에서 따르는 공식이 되었다. 진보정당일수록 친 여성적(정확히는 ‘젊은’ 여성에게 진화적인) 정책을 펼치는 것이 항례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종의 정치공학은 방향은 다르지만 모두 1가지 전제를 가지고 있다. ‘1인 1표’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건 성별 및 세대 간 연대를 통해 득표에서의 승자연합을 극대화하자는 것이 기본 발상인 것이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닌 것이 민주주의란 어느정도는 결국에서는 선거에서의 표 싸움이고, 1표라도 더 얻는 쪽이 이기는 게임이다.


하지만 정말 100퍼센트 그럴까?


사실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과정에서 투표가 정치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여론을 형성하고, 자원을 분배하는 정책을 만들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대립하는 집단의 의사를 조정하고,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자본과 인력을 투입하는 일련의 과정 역시 정치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내가 말한 것들은 정당과 시민단체가 ‘정치’를 하는 과정에서 다 하는 것들이 아닌가.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1표라도 더 얻으면 이긴다.”는 단순한 전제만으로 정치 전략을 만드는 것은 실수일 수 있다. 이리저리 ‘뭉텅이 표’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경쟁하는 것 이상으로 내가 말한 각각의 정치과정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것 역시 민주주의 체제에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세대포위론에 1가지 전제를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바로 ‘현역세대 프리미엄’이다. 우리는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행위자를 세대에 따라 청년세대, 중-장년세대, 그리고 노년세대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각각의 세대는 선거에서는 모두 평등하게 1표를 가지고 있지만, 정치과정에서 가지고 있는 영향력은 각각 차이가 있다.


중-장년세대는 사회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세대인 만큼 정치적 영향력은 제일 높다고 볼 수 있다. 청년세대는 학교에 다니거나 막 사회에 진출했으니 중-장년세대만큼은 영향력은 높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노년세대는 은퇴하여 사회적 관계망으로부터 상당히 이탈한 상태인 만큼 정치적 영향력에 있어서는 제일 낮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일반론이고 개인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중-장년이라도 히키코모리 생활을 할 수도 있고, 노년이라도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으며, 청년이지만 정당 공천을 받고 정치인으로 활동할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민주주의 정치과정에서는 가장 사회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중-장년 세대의 정치적 영향력은 선거에서의 1표 이상의 ‘현역세대 프리미엄’을 갖고 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중-장년은 투표장 밖에서도 나름대로 사회에서 권한을 갖고 이런저런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그만큼 추가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헌법재판소는 사법부에 속하지만 대단히 정치적인 기관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지지하는 여론도, 비판하는 여론도 있지만 어쨌거나 헌법재판소가 단순한 사법기관을 넘어 정치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원래부터 어느정도 의도된 것이기도 하다. 헌법재판이란 다른 민사, 형사재판과는 달리 정치적인 성격이 대단히 강하다. 그리고 이것은 정치적으로 얽힌 법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기도 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라는 것은 관습헌법’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다. 헌법재판소의 이 결정으로 수도를 세종시로 옮기려는 행정부의 시도는 좌절되었고 이것은 국토개발과 지방자치에 상당히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판결은 법적으로만 보면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관습헌법이 정하는 사항이라는 사실을 판시한 것이지만, 분명히 정치적인 사건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관습헌법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가 관습헌법을 내린 판사들이 모두 ‘현역세대 프리미엄’을 가진 중-장년층의 판사들이기 떄문이다. 이 판사들은 투표장에서는 다른 유권자들과 같은 1표를 행사하지만, 동시에 헌법재판관으로서 국가적으로 중요한 정치적 의사결정에 자신의 판단을 투입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러한 영향력은 법률과 판례의 엄격한 제한 속에서 이뤄지지만 판사 개인의 재량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같은 헌법재판관이라 할지라도 그가 은퇴하는 순간 현역시절에 누렸던 것과 같은 정치적인 영향력을 누린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그가 은퇴한 뒤로도 활발한 활동을 통해 정치에 열심히 참여할 수는 있다. 심지어는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균적으로는 은퇴한 법관의 영향력은 현역인 법관에 비해 강하지는 않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단순히 “세대 간 연합으로 1표라도 더 얻으면 된다.”는 접근은 전략으로서는 생각보다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 현역세대 프리미엄을 가진 중-장년층과 일부 청년층은 산술적인 숫자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현역세대라도 개인별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세대 전체로 놓고 보면 현역세대가 더 강한 힘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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