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사는 문제는 정부의 책임인가?

레스 푸블리카 (4)

by 이그나티우스

큰 선거가 치러질때마다 경제문제가 문제가 된다. 클린턴이 선거전에서 활용한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는 이제 진부할정도로 정치에 있어서의 경제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사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인플레이션이나 주택가격과 같은 경제상황에 따라 집권 여당과 야당의 표가 요동을 친다.


확실히 시간이 흐를수록 이념이나 철학이 아닌 거시경제적 변화가 선거의 승패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2000년대 초반을 뜨겁게 달궜던 이념적인 논쟁은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정당과 정치인들도 이러한 변화를 눈치채고 점점 더 많은 정책적 비중을 경제문제에 둔다. 거시경제의 실패에 대해 정권이 책임을 진다는 것은 사실상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 문법이 되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 그만큼 선출직 공무원들이 경제문제, 민생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책임감있게 행동하는 인센티브가 된다. 만약 거시경제가 개판이라도 당선되는데 문제가 없다면 어떤 정치인이 경제문제에 귀를 기울이겠는가? 이것은 어떻게 보면 책임정치의 한 형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경제문제는 외교나 안보와 달리 순수히 정치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굳이 미시경제학 지식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자유시장경제의 주요한 참여자는 기업과 개인이다. 기업과 개인이 생산하고 소비하며 재화와 서비스를 분배하는 과정이 시장경제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수요공급곡선에 생산자와 소비자는 있어도 정부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경제문제에 정부의 역할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시장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시장의 룰을 정하고 그것을 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장의 원활한 기능을 위해서는 법과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바로 그 부분을 정부와 정치가 담당하고 있다. 최근의 경제사 연구에 따르면 국가의 경제발전의 성패를 결정하는 데에는 그 국가의 법과 제도가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런 애스모글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가 대표적이다.)


뿐만 아니라 시장이 공급하지 못하는 여러 공공 서비스를 공급하는 것 역시 국가의 책임이다. 안보와 치안을 유지하고, 법을 집행하고, 국민들을 교육시키고, 의료와 보건 서비스를 제공하고, 복지제도를 통해 시장의 약자들을 보호하고, 도로나 항만과 같은 인프라를 유지하고, 화폐가치와 시장질서를 유지하는 등의 중요한 업무를 국가가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의 역할에는 아주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수요와 공급 자체에 영향을 주는 것보다는 그러한 수요와 공급이 원활하게 유통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에 가깝다는 것이다. 즉, 아무리 정부가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해도 그 안에서 실제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은 기업과 개인이라는 민간 주체들인 것이다.


나는 경제사, 특히 한국 경제사에서 지금까지 정부의 역할이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어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시장경제질서의 운영과 자원의 적절한 배분에 있어서 고도경제성장기에 한국 정부가 기여한 중요성은 결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특정한 대통령(들)이 사실상 우리를 먹고 살게 만들어 주었다는 식의 논리는 복잡한 경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대통령(들)이 경제발전의 중요한 시기에 시의적절한 리더쉽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위험을 감수하는 기업가와 근면 성실한 개인의 노력이 더해지지 않았다면 한국의 경제는 그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경제의 성장이라는 사회과학적인 현상을 정부, 심지어는 특정 정치인의 행위로 의인화시켜서 바라보고 있는 오류를 범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XXX 정부가 경제는 참 잘했어.” “YYY 정부 시절에는 살림살이가 아주 형편없어.”와 같은 표현은 복잡한 경제현상을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의 이름으로 축소시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은 ZZZ 대통령이야.”와 같은 표현은 절반 혹은 그보다 더 작은 진실을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른바 우리의 ‘살림살이’를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경제학적으로 본다면 소득과 투자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고용되어서 소득을 얻고 그 소득을 저축 및 투자하여 자산을 관리하는 것이 우리의 경제생활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측면이다. 물론 은퇴하였거나 사고를 당하여 복지제도에 의하여 생활을 유지하는 경우, 막대한 유산 상속이나 복권 당첨으로 인생이 바뀐 경우 등등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보통의 평균적인 경제활동인구의 입장에서 본다면 소득과 투자가 ‘살림살이’의 수준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런데 소득과 투자는 기본적으로 민간 시장에서 이뤄진다. 공무원이나 공기업 종사자가 아닌 이상 개인의 소득원은 대부분 자신을 고용하는 민간 고용주(기업, 개인 고용주)나 고객에게서 비롯된다. 저축과 투자 역시 연금에 불입되는 일부분을 제외한다면 민간 금융시장을 통해 유통된다.


따라서 우리의 경제적인 살림살이가 펴지느냐 구겨지느냐 하는 부분은 정부의 정책 이상으로 시장의 영향을 받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고용주 역할을 하는 기업이 이윤을 잘 창출 해야 개인도 그만큼 보상을 받아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의 경쟁력은 기업이 이윤을 창출하는 능력이라고 보아야 한다.


즉, 기업이 얼마나 이윤을 잘 창출하는지가 개인의 살림살이를 결정하는 굉장히 중요한 측면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이윤을 창출하는 능력은 단순히 정부정책의 옳고 그름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기업의 경영자가 얼마나 좋은 경영전략을 갖고 있는가, 기업의 생산성이 얼마나 높은가, 기업의 임직원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가, 기업이 현재 위치한 산업의 경기가 어떤가 등과 같은 민간 시장의 요소가 기업의 실적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XXX 정부 때문에 먹고 살기가 힘들다.”는 표현은 맞지 않을 수 있다. 오해가 있을까 싶어 미리 알려두지만 나는 이 글이 발행되는 시점의 대통령이나 집권 여당, 혹은 이전이나 이후의 정당이나 정치인의 경제정책에서의 실패를 옹호하기 위해 이러한 발언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시점과 무관하게 우리가 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에 대해 좀 더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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