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 푸블리카 (5)
현대사회에서 연애는 어쨌거나 개인적인 문제로 되어있다. 오만가지 시덥잖은 일들에 대해 다 떠들어대는 정치인들이나 평론가들도 연애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이러한 행동의 밑바탕에는 연애는 공적인 차원의 문제는 아니라는 공통적인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물론 이러한 견해에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연애는 우정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보면 개인적인 선택이고 여기에 국가가 관여할 부분은 별로 없어 보인다. 개인의 사생활의 자유를 존중하는 대한민국의 헌법상의 기본권의 원칙을 돌이켜볼 때 정치가 개인의 연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애가 정말 순수하게 개인적인 차원의 행위에 그치는가? 라는 문제를 생각해보면 의문의 여지가 있다.
현대사회의 결혼은 연애라는 단계를 거쳐 결혼으로 나아간다는 단계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물론 예전에도 이성교제가 결혼으로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경우는 많이 있었겠지만, 결혼 직전에야 배우자에 대해 알게 되는 경우도 흔했다. 나의 조부모님들의 결혼만 보아도 불과 2세대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많은 커플은 결혼을 계기로 처음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는 결혼의 전단계가 따로 존재하지 않아도 만남 à 결혼이라는 단순한 단계로도 가족을 구성하는 것이 가능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물론 요즘도 결정사와 같은 곳을 통해 만나서 초고속으로 결혼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소개나 중매인을 통한다고 할지라도 몇주에서 수개월 정도의 상징적인 연애의 단계라도 거치지 않고 바로 결혼식 날짜부터 잡는 경우는 그렇게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많은 경우에는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몇 년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연애관계를 거쳐 서서히 결혼으로 넘어간다.
이러한 현대사회의 결혼의 특성을 보면 모든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결혼에 이르기 위해서는 연애라는 전단계를 거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혼은 현대사회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프라이버시에 속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법적, 경제적인 공동체의 최소단위인 가족을 구성하는 사회적인 제도이기도 하다. 민법과 헌법에는 가족제도에 대하여 상세하게 규정되어 있으며, 형법과 형사소송법에는 친족간의 형사범죄와 형사재판절차에 관한 특례가 명시되어 있다. 행정적으로도 기혼커플은 미혼커플과 다른 범주에 해당되어 다른 종류의 대우를 받는 쪽으로 설계된 정책이 많다.
무엇보다도 혼외출산의 비중이 낮은 한국에서 새로운 사회구성원을 출산하고 양육하는 사회의 유지와 발전을 위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결혼이 없다면 아이도 없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따라서 사회의 재생산이라는 관점에서 결혼은 필요불가결한 장치이다.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결혼이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제도라면 그 결혼의 전단계인 연애는 왜 순수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는가? 사람들이 연애라는 단계를 제대로 통과하지 못한다면 결혼으로 나아갈 수 없고, 결혼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없으며,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없다면 사회가 축소되거나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물론 연애라는 행위의 개인적인 차원을 절대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연애는 행정소송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가 순수히 개인적인 차원의 사건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연애는 다음단계인 결혼의 성패를 좌우하는 아주 중요한 사회적 삶의 단계이다. 그리고 어떤 일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면 그것은 분명 정치적인 공론장의 토론 의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한국에서는 연애의 사회적인 측면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무관심 혹은 금기시의 대상이 되어있다. 데이트폭력과 같은 연애로부터 발생하는 사건에 대해서는 사회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지만 남녀가 짝을 찾는 과정 자체는 여전히 세수를 하거나 방을 청소하는 것과 같은 개인적 행위의 차원에서만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굳이 이러한 엄격한 영역구분에 우리가 구애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