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 푸블리카 (6)
며칠 전에도 어김없이 러시아 팬보이들의 공격을 받았다. 인터넷 모처에 올라온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관련 글에 앞으로의 전세에 대해 나름대로 예측하는 짧은 댓글을 달았더니, 러시아 지지자(?)들이 내가 러시아에 대해 부당하게 깎아내린다며 악플을 달았던 것이다. 그 댓글은 어느 한쪽을 지지하는 글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 대해 유리하게 댓글을 쓰지 않았다고 분노한 사람들이 대댓글을 단 것이었다.
요즘 들어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서는 러시아에 열광하는 러시아 팬보이들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그들은 러시아를 규탄하는 글에서 혼자 다른 많은 유저들과 장판파를 벌이거나, 혹은 러시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패널이 등장한 팟캐스트나 인터뷰의 유튜브 영상 페이지에 몰려가 그 패널들을 상대로 비난하는 댓글을 단다. 이런 러시아 팬보이들은 익명 유저들에 한정되지 않는다. 심지어는 드물기는 하지만 꽤 이름이 알려진 평론가들이 공개적으로 러시아를 옹호하는 의견을 표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러시아는 현재 북한의 동맹국이다. 두 국가는 2024년 6월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는데, 이 이야기는 누군가 북한을 공격하면 러시아가 참전한다는 이야기다. 이정도면 이제 북한과 러시아는 굉장히 긴밀한 관계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북한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전투병을 파병했다. 그리고 러시아는 그 대가로 북한에 대대적인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이것은 북한을 주적으로 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굉장히 뼈아픈 일인데, 러시아는 우리의 주적인 북한을 지원하는 국가인 것이다. 특히 북한은 러시아의 비호아래 국제사회에서의 체급을 불리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의 외교에 아주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즉, 평균적인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우리의 주적인 북한을 열심히 지원하는 러시아를 지지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무단으로 침공하여 민간인들을 학살하지 않았는가(부차 학살사건). 아무리 선과 악이 불분명한 것이 국제정치라고 해도 이번 전쟁 만큼은 러시아의 잘못이 뚜렷해 보인다.
그렇지만 적어도 온라인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비판여론과 러시아 팬보이들의 열렬한 옹호가 치열하게 대결하고 있는 듯하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관련 커뮤니티 글이나 유튜브 영상에서는 거의 엇비슷한 힘으로 두 세력이 치열한 댓글 고지전을 벌이곤 한다. 친러 유저들의 화력이 밀리는 곳에서는 1, 2명이 장비처럼 버티고 서서 수백개의 상대 유저들을 상대로 장판파를 시전하는 경우도 많다. 반대로 유튜브와 같이 러시아 팬보이들이 많은 곳에서는 아예 러시아 팬보이들이 고지를 점령하고 여론을 형성하기도 한다.
일차적으로는 러시아의 정보전이 이러한 경향에 영향을 줄 것이다. 물론 친러 성향 유저들이 러시아의 직접 지령을 받는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이미 러시아가 AI 봇 등을 이용해 온라인 선전선동을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러시아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를 발신하는데 이것은 친러세력이 여론을 형성하는데 좋은 사료가 될 것이다. 한마디로 친러세력이 러시아의 여론을 흡수하기에 아주 좋은 토양이 이미 온라인에 갖춰져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직접적인 정보전을 제외하더라도 나는 이러한 친러 성향의 팬보이들의 담론에서 몇가지 중요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하나는 러시아의 힘에 대한 찬양이다. 러시아는 아주 오랫동안 전략적으로 자신들의 강대한 국력에 대한 이미지를 전세계를 상대로 조성해 왔다. 끝없이 투입되는 병력자원,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견딜 수 있는 풍부한 자원, 적국이 침략하기 어려운 드넓은 영토 등. 이러한 요소들은 실제 러시아의 국력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이 러시아의 국력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이 몇몇 팬보이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모양이다.
실제로 러시아의 팬보이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얼마나 압도적인 국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끝없이 자랑한다.
“우크라이나의 병력자원은 이미 고갈된지 오래고 지금 상태로 러시아 끝없이 병력을 더 투입한다면 머지않아 러시아가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다.”
“국제사회의 대러제재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고 러시아 경제는 오히려 순항중이다.”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러시아는 막대한 물량의 힘으로 우크라이나를 압도할 것이다.”
러시아 팬보이들이 출몰하는 댓글 고지전에는 무슨 매뉴얼이라도 있는지(“너희들이 어둠의 자식이냐!” 류...) 판박이인 이런 댓글들이 으레 달리곤 한다.
이유야 알 수 없지만, 러시아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이러한 강대한 국력의 이미지들은 러시아에 우호적인 정서를 가진 사람들의 무언가를 자극하는 것 같다. 잘은 몰라도 국가의 ‘강함’에 강한 끌림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러시아에 감정적인 애착을 형성하면서 그런 자신들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닐까?
다음으로 관찰되는 것은 기성 미디어(이른바 ‘레거시 미디어’)에 관한 강한 불신이다. 그들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전황이 반러성향의 친서구 미디어의 조작에 의해 오도되고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실제로는 러시아가 전황을 압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 우크라이나 논리에 잠식된 서구의 주류 미디어들이 우크라이나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작정보를 발신하고 있고, 우리나라의 주류 미디어도 그에 오염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친러 매체에서 생산된 ‘공정한’ 보도자료를 접하는 자신들은 숨겨진 진실을 알고 있는 선지자들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런 “넌 이거 모르지?” 류의 지적 선민의식은 최근의 음모론에서 아주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부정선거 음모론, 백신 음모론, 딥 스테이트 음모론 등등. 정치적 음모론은 항상 기성 미디어를 조작된 정보를 발신하는 악당으로 설정하고 미디어에 의해 알려진 정보들을 불신하며 자신들의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의 자료들이 진짜 진실을 알려주는 복음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주류 미디어도 잘한 것은 없다. 이런저런 이해관계자들의 눈치만 살피다보니 소신있게 보도하지 못하고 무색무취한 보도, 혹은 사회 주류세력을 옹호하는 보도만 함으로써 이용자들의 이탈을 초래한 것은 그들의 잘못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데스크를 통해 최소한의 필터링과 검증을 거치는 기성 언론과 “아니면 말고”식으로 추측성 보도를 마구 쏟아내는 익명의 인터넷 방송 채널이 동등할 수는 없다. 잘못 보도했다가는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이 걸리는 대형 신문사와 달리 1인 운영이 대부분인 익명 온라인 채널들은 틀려서 문제를 만들면 계정을 삭제하고 달아나면 그만인 곳들이다. 당연히 양쪽의 책임감과 검증 수준이 같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팬보이들을 비롯한 음모론자들의 언론 불신 증세는 한계에 다다랐고, 개중 극단적인 경우는 아예 대안적인 세계관을 구축하고 타인과의 교류를 거부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이외에도 이들은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 추진과 친서방 행로가 러시아를 위협하여 러시아로 하여금 자위권 발동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도록 했다는 주장을 편다. 또 일각에서는 남자들만 징집하는 우크라이나는 남성혐오, 페미니즘 국가이며 러시아는 이런 우크라이나에 맞서 전세계 남성들의 자존심을 살리는 ‘반페미’ 국가라는 주장을 펴는 경우도 간혹 있다.
이들은 누구일까? 친러 평론가는 좌우 모두에서 발견되지만 내 생각에는 현재의 친러 정서는 극우세력과 더 궁합이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극우세력의 대부분은 이미 작년의 윤석열 비상계엄 선포를 옹호함으로써 권위주의적인 스트롱맨 통치에 대한 선호를 공공연하게 드러낸 바 있다. 게다가 이들은 부정선거 음모론과 같은 음모론적 세계관, 그리고 “너는 이거 모르지?”류의 지적 선민의식이 유독 강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는 러시아 팬보이들의 프로파일링과 잘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진보계열의 평론가나 네티즌들 중에서도 러시아에 우호적인 발언을 하는 경우가 있음을 보면 이는 단순히 좌우의 문제는 아닌지도 모른다. 사실 전세계적으로 좌익 지식인들 중에서도 반미, 반서구 정서 위에서 친러 주장을 펴는 경우가 제법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어디까지 어디까지가 자발적인 여론 형성인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개중에는 정말로 ‘순수한’ 마음으로 러시아를 지지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러시아와 사실상 전략적 긴장관계에 있는 한국에서 러시아를 옹호하는 여론이 위험할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과거 냉전시대에 북한의 뒷배였던 소련을 마음속으로 지지하는 공산주의자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암약했던 것을 연상케 한다. 온라인의 문제라고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제법 문제가 심각해 보인다. 특히 이러한 친러 정서가 단순히 러시아에 대한 판타지를 갖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에 대한 반역적인 행위로 이어지지 않도록 모두가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위에서도 언급하였듯 러시아는 이미 한국과 전략적으로 긴장관계에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