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 푸블리카 (7)
2020년대 한국 보수주의 진영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의제가 부정선거 음모론이다. 한국의 선거제도와 의회민주주의의 신성한 정당성은 친중 사회주의 세력의 부정선거와 여론조작에 의해 더렵혀졌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국 시민들은 총 궐기해야 한다는 것이 보수주의자들의 지론이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대중의 집회를 ‘인민민주주의 봉기’라고 보면서 극도의 혐오감을 드러냈던 보수주의자들의 전력을 생각하면 굉장히 진보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뭐, 미국에서도 공화당 지지자의 상당수가 2020년 대통령 선거가 부정선거였다고 생각한다고 하니 국제적으로 선거의 정당성을 믿지 않는 것은 전세계적인 유행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특기할만한 점은 한국의 보수세력이 종국에는 미국, 그 중에서도 미국의 공화당 행정부가 한국의 사회주의 세력을 쳐부수고 끝내는 우리를 압제에서 구원해줄 것이라고 믿는다는 점이다.
카이사르가 내전에서 파르티아의 지원을 거부하고 내전에 외국이 개입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절했던 고사를 제쳐놓더라도, 5대10국 후진의 석경당이 거란의 군대에게 구원을 청한 것마냥 어떻게 상국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것이 국가의 자주라는 관점에서 보면 어떨지는 몰라도 하여간에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황사영이 교황청에 편지를 보냈던 것처럼 목을 빼고 미국 공화당(민주당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의 구원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사실 이러한 ‘고도를 기다리며’를 방불케 하는 오매불망 망부석과 같은 기다림은 한국 보수주의자들의 독특한 세계관을 고려한다면 의외로 ‘설정에 부합하는’ 행동이다. 외부에서는 기괴하게 보일지 몰라도.
현대 한국 보수주의 진영에서 가장 활발하게 유통되는 세계관이 조로아스터교를 방불케 하는 이원론적 세계관이다. 조로아스터교가 아후라 마즈다와 앙그라 마이뉴의 영원한 전쟁을 세상의 역사로 보는 것처럼, 한국의 보수주의는 한국의 역사 아니 나아가 인류의 역사를 해양문명과 대륙문명의 끝없는 대결로 인식한다. 잘 교육받은 역사학자라면 감히 입에 올리기 힘든 하이퍼-거대담론이 한국의 보수주의 생태계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정설처럼 유통된다.
물론 여기에는 좌파들의 원죄도 있다. 한국의 좌파들은 동학농민운동으로부터 항일투쟁과 6.25 전쟁, 그리고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이르는 군사독재, 제국주의 열강과의 성전을 줄기로 하는 거대한 세계관을 구축해 왔다. 이탈한 전직 운동권이거나 좌파와의 끝없는 전쟁으로 아드레날린 중독상태가 되었거나 둘 다인 사람들이 한국 보수주의자들의 주류를 구성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들은 너무 오랫동안 좌파들의 심연을 본 나머지 자신들도 그렇게 변한 것인지도 모른다.
뭐 이유야 어쨌건 간에 많은 한국 보수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내러티브에 대한 강한 신앙심을 갖고 있다. 인류문명의 역사는 곧 자유시장경제, 자유주의, 세계시민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해양문명과 계획경제, 공산주의,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대륙문명의 대결의 역사이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이 해양문명이 발전시켜 왔으며 대륙문명은 그러한 발전을 방해하는 반문명적 세력이다. 따라서 인류문명의 영원한 번영을 위해서는 해양문명의 편에 서서 대륙문명을 무찔러야 한다는 것이 한국 현대 보수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믿음이다. 에드먼드 버크가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언필칭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어차피 세계관 아닌가.
부정선거 음모론과 미국 공화당에 대한 신앙이 한국 보수주의자들을 짧은 시간에 사로잡은 것은 이런 하이퍼-거대담론에 그것들이 아주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의 인식이란 참 교묘해서 개별 주장에 대해 논리적으로 진위를 판별하기보다는 세계관을 위주로 설정에 맞는지를 따지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박사학위를 가진 지식인들까지도 말이다.
현대 한국 보수주의의 해양문명론으로 부정선거 음모론을 해석한다면, 한국의 부정선거는 인류 문명을 위협하는 대륙문명(구체적으로는 중국)의 마수가 한국의 선거관리위원회에 뻗쳐 한국을 악의 제국의 손아귀에 넣기 위한 공작의 일환인 것이다.
미국 공화당에 대한 신앙심 역시 해양문명론에 아주 잘 들어맞는다. 한국 보수주의의 눈에 따르면 미국은 한때 해양문명의 수호자였지만 최근 극좌 PC세력(한국에서는 ‘PC’라는 서구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단어를 DEI라는 훨씬 흔한 용어 대신 사용하는지는 의문이지만)과 그 하수인인 미국 민주당에 의해 대륙문명의 마수에 더럽혀졌고, 미국 공화당은 그러한 대륙문명의 마수에 맞서 분연히 떨쳐 일어난 해양문명의 십자군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보수주의가 해양문명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면 미국 공화당이 거기에 호응하여 한국을 부정선거와 공산주의자들의 마수로부터 구해주기 위해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선거 음모론과 미국 공화당에 대한 신앙심을 하나로 혼합한다면 한국 보수주의자들이 왜 그토록 부정선거 음모론과 미국 공화당 정권과 연관지으려고 하는지를 아주 잘 알 수 있다. 그들에 따르면 부정선거 음모론은 단순한 음모론이 아니라 해양문명을 대륙문명의 마수로부터 수호하기 위한 성전이고, 당연히 그러한 성전의 선봉장인 미국 공화당 정권이 언젠가는 우리를 구하기 위해 달려올 것이다.
내가 뭐 미국 정치나 한국 정치를 전공한 학자도 아니고, 이러한 한국 보수주의의 음모론이 정말 음모론의 수준을 넘어 정말 현실세계에 부합하는 설명력이 높은 이론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한국 보수주의자들이 얼마나 미국 공화당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는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지점은 서구 보수주의의 메인스트림 담론 중 하나로 자리잡은 ‘그레이트 리플레이스먼트’ 이론이다. 그레이트 리플레이스먼트 이론은 나무위키 항목도 아직 없을 정도로 국내에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현대 서구 보수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아주 중요한 키워드이다.
그레이트 리플레이스먼트 이론은 2010년대 프랑스의 작가 르노 카뮈가 동명의 책을 통해 주장한 이론이다. 그레이트 리플레이스먼트 이론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서구 각국의 엘리트들이 국내의 백인 인구를 탄압하고 이민자를 대거 받아들임으로써 국가의 ‘주류 인종’을 백인에서 유색인종으로 교체하려고 획책하고 있다는 것이다.
뭐 생각해보면 익숙한 향기는 난다. 우리나라에도 “부자들은 노예의 피부색에 무관심하다.”는 냉소적인 반이민 정서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널리 퍼져 있고, 그레이트 리플레이스먼트 이론은 이것을 좀 더 정교하게 가다듬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중산층이 강력한 압력에 직면한 상황에서 네이티브 인구에게서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는 위기의식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서구 보수주의의 중심축이 인식론적 이데올로기에서 ‘땅과 피’ 스타일의 감정적인 낭만주의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구의 보수주의는 본래 굉장히 철학적인 이데올로기였다. 에드먼드 버크의 보수주의는 인간의 인식론적 한계에 대한 통찰에 분권주의적 이상을 접목시킨 정치철학의 정수였다. 정통 보수주의와는 약간 거리가 있지만 하이에크의 자유지상주의 역시 정치학과 경제학을 대담하게 통합시킨 정치철학적 고전이었다.
이러한 전통적인 보수주의나 자유주의는 굉장히 사변적이었고, 혈통과 흙냄새를 중시하는 민족주의적 로망이 자리잡을 구석이 거의 없었다. “노예의 길”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인종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레이트 리플레이스먼트 이론은 서구의 보수주의, 나아가 우파진영 전반이 생득적인 인종에 기반한 민족주의의 중심으로 변한 패러다임 전환에 해당한다. 더 놀라운 것은 많은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이 이러한 급진적 변화에 거의 저항하지 않고 순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레코-로만 문명과 보편주의적 기독교 신학,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신봉하던 자들이 ‘백인’의 위기를 설파하는 그레이트 리플레이스먼트 이론에 이상하리만치 침묵하고 있다. 이것은 거의 좌파 진영이 거대담론을 버리고 “언어로의 전환”을 천명한 포스트모더니즘을 받아들인 수준의 지각변동이다.
이러한 서구 보수우파 진영의 대전환은 한국의 보수진영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간단히 말해 한국 보수주의가 경전처럼 떠받드는 해양문명과 대륙문명의 아마겟돈은 서구 보수우파의 주류 담론과 다소 거리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서구의 보수우파는 인류의 문명이 아닌 ‘서양에 거주하는 백인’들의 그룹이 되었다. 실제로 이것은 미국의 공화당이 놀라우리만치 서양 바깥의 정치에 무관심한 데서 드러난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의 공화당 정권이 국제 부정선거 카르텔을 쳐부수기 위해 비밀리에 전세계적인 공작을 진행중이라고 믿는 모양이다. 한때 한국을 달궜던 “99명의 중국인 해커” 운운하는 음모론은 이러한 믿음 위에 나타난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공화당이 국제적으로 연대하는 것은 서반구 내의 보수주의자들에 한정되어 있다. 미국의 보수 우파가 공공연하게 연대의 의사를 드러내는 것은 영국의 나이젤 패라지,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이탈리아의 조르지아 멜로니, 프랑스의 마린 르펜, 독일의 앨리스 바이델, 폴란드의 카롤 나브로츠키,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르,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밀레이 정도이다. 일본, 한국, 대만 등 서반구 이외 지역의 우익 정당들은 연대의 대상으로 별로 거론되지 않고 있다. 당연히 이런 지역의 부정선거 음모론에 대한 언급도 거의 없다. 물론 서구의 보수적인 인플루언서들이 개별적으로 아시아 지역을 “인종적 순수성” “이민자의 부재”와 같은 이유로 칭찬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 이상의 정치적 연대는 흔치 않다.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이제 서구의 보수우파의 국제 연대는 서구지역의 백인 거주지역을 중심으로 한정되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유색인종이 백인종의 삶의 터전을 침략한다는 그레이트 리플레이스먼트 이론이 주류가 된 이상 당연한 귀결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해양문명과 대륙문명 운운하는 ‘성전’ 이야기는 지금의 미국의 주류 보수 우파의 입장에서 보면 옳고 그름을 떠나 ‘싱크로’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가 멋대로 서구의 보수주의를 차용하기 전에, 그들이 우리를 연대의 동료로서 받아들일 것인지를 따져보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나는 한국의 보수주의가 비참한 짝사랑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